찬양: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하시니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1.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하시니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 됩니다
2.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 서리
힘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으니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3.주 없이 살 수 없네
내 주는 아신다
내 영의 깊은 간구
마음의 소원을
주 밖에 나의 맘을
뉘 알아 주리요
내 맘을 위로하사
평온케 하시네
4.주 없이 살 수 없네
세월이 흐르고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사나운 풍랑일 때
날 지켜 주시고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되시네
아멘
137문: 제7계명이 무엇입니까?
답: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하신 것입니다.
138문: 제7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7계명이 명하는 것은, 몸과 마음과 감정과 말과 행동에서 정조(貞操)를 지키는 것과, 자기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정조를 보존하는 것과, 눈과 모든 감각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과, 절제함, 순결한 사귐을 갖는 것, 단정한 옷차림과, 독신의 은사가 없는 자들의 경우에 혼인하여 부부애로 서로 동거함과, 우리의 소명에서 부지런히 일함과, 모든 부정한 일들을 멀리하고 부정으로 이끄는 유혹에 맞서는 것입니다.
139문: 제7계명이 금하는 죄는 무엇입니까?
답: 제7계명이 금하는 죄는 제7계명이 명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 이외에 간음과 간통과 강간과 근친상간과 동성애와 기타 본성을 거스르는 모든 정욕과, 모든 부정한 상상과 생각과 목적과 감정과, 모든 부패하고 추한 말을 하거나 그런 말을 듣는 것과, 음탕한 눈길과 뻔뻔하고 경박한 행동과 음란한 옷차림과, 합법적 혼인을 금하는 것과 불법한 혼인을 시행하는 것과, 매음(賣淫)을 허용하고 관용하고 행하거나 그런 곳으로 가는 것과, 독신 서약 하는 데에 걸려들거나, 혼인을 부당하게 미루거나, 아내나 남편을 동시에 여럿 두는 것과, 부당한 이혼이나 유기(遺棄)와, 게으름과 탐식과 술 취함과 부정한 교제와, 음탕한 노래와 책과 그림과 춤과 연극과,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온갖 음란한 자극이나 행동을 행하는 것입니다.
살전4:4-5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욥31: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마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잠2:16-20
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17.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18.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20.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잠5:18-20
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창39:8-10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딤전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엡5:3-4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마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딤전4: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막6: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말2:11-12
11.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말2:14-15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마19: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말2: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마5:31-32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롬13:13-14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8월 25일(목) 튀니지 TUNISIA
튀니지에는 많은 정치적 불안이 있습니다. 나라의 안정과 교회가 보존 될 뿐 아니라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아말(Amal) 자매가 사는 지역의 사람들은 그녀의 개종에 매우 화가 나 있습니다. 그녀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알리(Ali) 형제는 가족들 중 유일하게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가 주변의 다른 크리스천을 만나 교제하며 신앙의 유익함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이란- 꿈과 환상을 본 이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갖도록
(1) 제7계명은 제6계명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제6계명은 거룩한 삶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제7계명은 인류가 세상에서 계속 존재하기 위하여 성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2) 제7계명의 일반적 범위는 어떤가?
제7계명은 마음과 언어와 행동에 있어서 우리 자신과 이웃의 정절을 보존할 것을 요구한다(소요리문답 제71문).
(3) 제7계명의 위반의 원인은 무엇인가?
제7계명의 위반에 대한 실제적이며 기본적인 원인은 영적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부패하고 죄악적인 상태를 뜻한다(마15:19).
(4) 현대인들의 생활의 어떤 영향이 제7계명을 위반하는 일에 공헌하였는가?
제7계명의 위반은 ‘자기표현’을 강조하는 심리적 전형의 수용으로 인해 엄청나게 증가했다. 말하자면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금한 것이나 결혼의 규례가 금한 것과 관계없이 자연적 충동의 절제 없는 방종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원래 이것을 의도했던 학자들보다 더 이런 심리적 전형을 암암리에 수행하고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심리적 ‘자기표현’을 분순한 정욕을 탐닉하는 핑계로 사용한다. 그 결과 간통과 간음 그리고 비 성경적인 이혼과 결혼에 대한 반대가 현저히 감소되었다. 이러한 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다소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창34; 38:15-26). 그러나 ‘존경할 만한’ 많은 사람들 심지어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러한 행사와 규례가 변호되고 죄가 아닌 것으로 선포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러한 죄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반역이자 폭동이다. 오늘날 우리는 많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존경받는 사람들이 성의 본능의 표현을 하나님의 계명에 종속적인 도덕적 문제가 아닌 개인적 기호의 차이로 간주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떠난 성적 관계를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결혼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이렇게 유행하는 성적 부도덕은 과거에 기독교 신앙의 빛 아래 살았던 저명한 사람들에게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에 다섯 명의 남편과 살았었고 현재 합법적인 결혼을 통하지 않은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요4:17-18) 역시 그 당시에 부도덕한 여인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자기 인생의 치명적인 오점이 아니라 단수한 하나의 ‘문제’ 또는 하나의 ‘불행’이라고 생각하며 비 성경적인 근거에 의한 이혼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이혼한 사람이라고 알려지는 것이 전혀 사회적 오점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대중의 여론이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의 도덕적 표준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의 계명을 평가절하 시키는 일에 사용되는 가장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텔레비전의 남용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는 텔레비전이 그 자체로 악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텔레비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만연되어 있는 텔레비전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의 도덕적 수준이 낮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텔레비전 사용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GIW).
(5) 오늘날 미국에서 이혼이라는 악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의 이혼은 매우 심각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 주제는 여기서 다루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주제이다. 그러나 개선을 위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가능성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이혼에 관한 시민법은 하나님의 계명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성경의 불일치’와 ‘정신적 학대’와 같은 이혼을 합리화하는 수많은 비 성경적인 이유들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그것 중의 일부는 사법적인 분리의 근거로서 정당할 수 있지만 재혼의 권리를 위한 완전한 이혼을 합리화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주제에 대해 하나님의 계명의 요구와 조화를 이루는 민법과 사법을 추구해야 한다.
② 교회는 반드시 이 주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명백하고도 분명하게 선포해야 한다. 오늘날 만연해 있는 불법한 결혼과 이혼은 성경에 대한 무지에 근거하며 심지어 교회의 성도들조차도 결혼과 이혼에 대해 성경이 무엇을 교훈하는지에 대해 무지한 실정이다.
③ 교회는 성경적 근거 없이 이혼한 성도들을 반드시 신실하게 징계하고 훈육해야 한다. 특별히 재혼의 경우에는 각각의 배우자가 이혼에 있어서 성경적 근거에 합당한지를 살펴야만 한다. 방종스럽고 무절제한 시민법을 통해 하나님의 계명을 극악무도하게 위반하는 자들은 만족할만한 회개와 삶의 개선에 관한 증거를 나타내기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성도로서의 특권을 향유할 권리가 없다.
④ 교회는 교회의 감독관 된 자들이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의 요구에 따라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확신하고 보장하기 위하여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6) 음탕한 서적들과 잡지들은 이전시대보다 오늘날 더 유행하는가?
적어도 미국에서 이러한 일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더 유행하고 있는 일이다. 음탕한 서적과 잡지들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으며, 특별히 제1차 세계대전이후 이런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오늘날 수많은 외설적이고 음흉한 동시대의 서적과 잡지들은 극단적으로 저속하고 음란하다. 어떤 유명한 서적과 잡지들은 기독교 가정이 구독할 목록에 합당하지 않다. 적어도 범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한 가지 유명한 여성 잡지는 기독교의 성적 도덕적 표준을 파괴할 만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잘 알려진 회사나 출판사들이 유명한 서적이나 잡지를 발간하고 그것들이 유명인사의 서명으로 출판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품위가 있고 무해 하지는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지한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이 읽는 서적이나 잡지의 내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7) 현대적 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춤추는 일에 참여해도 되는가?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대요리문답은 제7계명은 ‘음탕한 춤’을 금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의 춤은 바로 이런 범주에 속한다.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난잡한 춤이 부도덕으로 인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난잡한 춤을 반대해 왔다. 오늘날 많은 춤들은 그 결과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로 부도덕하며 악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춤추는 행위 그 자체가 성적 충동이라는 죄악 된 방종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런 행사와 규례를 양심적으로 떠나고 거절해야 한다(독자들은 이 주제에 대한 훌륭한 책 To Dance or Not to Dance, by G. Mahler, published by Concordia House, St. Louis 13, Mo.를 참조하라)
(8) 그리스도인은 연극이나 영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물론 그리스도인은 다른 모든 윤리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영화에 대해서도 진지하고 양심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상업적 영화는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항상 어떤 상황에서든지 간에 극장에 가는 것을 완전히 금해야 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결정이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의무와 헌신에 따라 양심적으로 신실하게 이루어진다면 이 문제에 완전히 동의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결정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반면에 영화에 대해 전혀 양심적인 가책이나 망설임 없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으며, 원할 때는 언제나 어떤 종류의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부합되지 않으며 정당화될 수도 없다. ‘쇼’는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합당한 것이라고 간주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영화관에 대해 이러한 부주의와 자기만족의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 이러한 두 가지 태도 이외에 현대적 영화의 일반적 성격을 잘 알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거의 극장에 가지 않는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에 가는 것 자체가 죄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영화가 필연적으로 악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영화 중에 건전하고 유익한 것들도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그 영화의 성격과 특징을 분명히 파악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수행될 수 있으며,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의무이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종류의 질문에 있어서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거치는 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롬14:4-7, 14-23; 고전8:9-13). 우리는 형제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반드시 어떤 종류의 쾌락과 즐거움을 기꺼이 부정하는 태도를 견지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보스 박사가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GIW).
(9) 대요리문답이 말하는 ‘무례한 옷차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요리문답은 제7계명에 기록된 ‘무례한 옷차림’을 죄악적인 것으로 금해야 한다고 진술한다. 무례한 옷차림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양심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옷이 몸을 적절하게 가리지 않아서 그것이 교회 내의 이성에게 불결하고 부정한 생각을 떠오르게 만들도록 몸을 노출시킨다면, 그러한 옷차림은 무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이 적절하고 정숙한 옷차림의 결핍을 단호하게 정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딤전2:9; 잠7:10,13). 또한 성경은 과도하게 비싸고 사치스럽고 호사스러우며 노출이 심한 옷 역시 정죄하고 있다(사3:16-26; 벧전3:1-4). 신앙은 외적인 의복에 있지 않고 마음의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력 있는 강력한 기독교는 외적인 옷차림에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의 옷차림새를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키게 만들 것이다.
(10) 독신 생활의 서약은 왜 그릇된 것인가?
대요리문답이 ‘독신 생활의 서약에 떠밀려’ 라고 부르는 이러한 서약은 오늘날 많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인들에게서 나타난다. 이러한 서약들은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명령되어 있지 않은 일들 하도록 서약케 하는 것이며, 둘째로 하나님의 도움의 약속이 없는 일을 행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악적인 것이다. 독신은 결혼보다 더 거룩한 형태의 삶이 아니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어떤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독신으로 살겠다고 서약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성인에게 있어서 결혼은 정상적인 삶이며(창2:18, 24), 따라서 독신은 규칙이 아니라 예외이다. 중세시대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로마 제국의 극단적인 방종에 대한 반작용으로 금욕주의와 독신을 그리스도인의 이상형으로 간주함으로 또 다른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런 그릇된 이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처녀성’이나 독신을 결혼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거룩한 삶의 형태로 간주해 왔다.
(11) 대요리문답이 로마서 1:24-26과 레위기 20:15-16을 증거 구절로 인용하는 ‘남색과 마음의 정욕’을 언급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가?
확실히 그렇다. 보스 박사가 특별히 1940년대와 50년대 초반에 이 주제에 대해 언급했을 때 이것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들이 심지어 이 불쾌한 주제에 대해 언급함에 있어서 성경에 충실한 교훈을 제시한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초창기에, 적어도 내 인생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성적 타락은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왜 그랬는가? 왜냐하면 당시 우리 문화적 개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그 자체로 분명한 악이라고 생각했고 동의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본성적이며 생리적인 구조 자체가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여자가 여자와 더불어 성교를 나누는 것은 변태적인 것임을 교훈한다고 모두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롬1:26-27). 그러나 오늘날 심지어 네들란드의 개혁주의 교회들과 같이 한 때 대단한 개혁주의 교단이었던 단체들이 이러한 악을 허용했고 심지어 그들의 교회의 감독들과 목사들이 이러한 타락을 실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제7계명을 설명하면서 특별히 이러한 저속한 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는 바이다(G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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