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8월 12일, 최용신(崔容信, 1909-1935) 별세
8월 12일 “최용신,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오늘은 최용신(崔容信, 1909-1935)이 태어난 날입니다. 1909년 8월 12일, 최용신은 함경남도 덕원군 현면 두남리(斗南里)에서 출생했습니다. 원산 루씨여자보통학교 시절, 최용신은 10리길을 통학하고 밥을 굶기도 하는 등 고학의 어려움 속에서 최우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이어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 최용신은 성경 과목에서 매번 만점을 받는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1929년에 그녀는 여자협성신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26살의 나이로 요절(夭折)할 때까지 농촌운동에 헌신했습니다. 얼굴에 얽은 자국을 지닌 신여성의 열정은 샘골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부모들은 교육에 냉소적이었고, 미혼 여성 용신의 뜻을 비웃기도 했으나 최용신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방학 없이 운영되었고, 그녀는 정규수업, 순회지도, 야학 등에 힘쓰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인물입니다. 1931년 10월 YMCA에서는 개성(開城) 호수돈여학교 출신 최용신을 수원 부근의 샘골에 파송하여 농촌사업에 임하게 하였다. “내가 절실히 느끼는 바로는 농촌의 발전도 필경은 여성의 분투에 있다는 점입니다……문화의 눈이 구여성만 모인 농촌으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게 못한다면 이 사회는 어느 때까지든지 완전한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농촌여성의 향상은 우리들의 책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거듭 말하노니 우리는 손을 잡고 농촌으로 달려가자.” “한국 농촌여성운동의 선구자요 모델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던 최용신은 이렇게 해서 샘골에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한글, 한수, 초보의 재봉, 수예, 가사, 노래공부들을 가르치는 데 헌신하였다. 그는 1933년에는 샘골학원을 설립하고 건물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민경배, 『한국교회의 사회사』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8), 350.] 상록수를 다시 읽다 울고 말았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