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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년 3월 20일, 사무엘 루더포드(Samuel Rutherford)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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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사무엘 루더포드(Samuel Rutherford)” 오늘은 사무엘 루더포드(루터포드, 러더퍼드, Samuel Rutherford)가 별세한 날입니다. 1661년 3월 20일(3월 30일이라는 기록도 있음), 루더포드는 임마누엘의 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자기를 찾아온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해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위 해 설교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목자장이 곧 나타나실 것입니다.” 루더포드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때 스코틀랜드 대표 6명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하면서 『법이 왕이다』(Lex Rex)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모든 시민 권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루터포드는 백성은 폭군에게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저항이 단독 행동으로 나타나건 그렇지 않으면 불법적인 통치에 대한 저항으로 표현되건 간에, 루터포드가 저항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소극적 불순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적극적인 저항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사도들의 경우처럼(행 4:19; 5:19) 계속해서 외치는 것뿐만 아니라, 악을 막거나 멈추기 위한 노력까지 의미한다. 첫 번째 단계는 저항과 “탄원과 변론”이다. 소극적인 불순종은 그 다음 단계이다. 그는 왕은 법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터포드의 판단으로, 왕의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습 왕보다는 선출된 왕을 선포했다. 의회는 법을 만들지만 왕은 단지 이를 집행할 수 있을 뿐이다. 왕의 주권은 법 위에 있지 않다. 그리고 왕만이 법의 유일한 해석자도 아니다.[서요한, 『언약사상사』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281.] 루더포드는 첫 사역지에서 아내와 두 자녀를 잃었습니다. 그는 고통 중에도 연구하고, 성도들을 돌본 목회자였습니다. 위대한 스코틀랜드의 신학자는 목자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