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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죄 - 티모시 크루소(Timothy Cruso, 1656-1697)

청교도와 함께 가장 작은 죄 우리는 가장 작은 죄도 똑같이 피해야 합니다 .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커다란 죄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비난하면서도 작은 죄들은 쉽게 지나칩니다 . 그러나 잠깐이라도 하나님과 떨어져 있으면 보다 악하고 가증스런 범죄로 인도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 작은 죄가 하나님께 대한 비열하고 야비한 경멸이며 신의 없는 행동임을 알 수 있습니다 . “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 눅 16:10). 우리는 언제나 금지된 행동 자체보다도 금지하시는 분의 위대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예를 들어 , 우리는 도적질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물건의 종류의 값이 아니라 “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 하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신지에 주의해야 합니다 . 우리 마음이 합당하게 예민해진다면 주의할 것입니다 . 그런 사람의 눈에는 가장 작은 죄도 크게 보일 것입니다 . 오히려 부정함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에게 정죄 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 우리는 아브라함이 소돔 왕한테서 실 한 오라기 , 들메끈 하나도 취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압니다 . 또한 바로가 항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러 가고 가축들은 남기라고 했을 때 , 모세는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사도들이 교회를 이스라엘의 폐지된 절기들을 지키는 일에서 멀리 떼어놓았기 때문에 ,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아무에게라도 판단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 한 역사가는 아레투사의 주교인 마르쿠스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 마르쿠스는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우상숭배지를 파괴하고는 후에 율리아누스의 통치 때 그 일 때문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 마르쿠스는 파괴한 것의 아주 일부만이라도 고치고 꾸미라는 요구를 오랫동안 받았지만 , 마르쿠스는 다시 고치는 일을 위해 한 푼이라도 바치는 것은 필요한 전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나 똑같이 악한 일이라고 말하며 거부했습니다 . - 티모시 크루소 (Timothy Crus...

청교도와 함께 :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티모시 크루소(Timothy Cruso, 1656-1697)

청교도와 함께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 ( 빌립보서 2:15)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올바른 마음을 품고 그 안에 거하도록 하기 위해 때로는 예리한 수단을 사용해야 함을 아십니다 . 하지만 여기에 대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경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 자연의 사물에도 분명히 강도의 차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 선잠과 깊은 잠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일상적인 것보다 더 큰 소음이 아니고는 기면 상태의 사람을 깨우지 못하는 것처럼 악인은 놀라운 일격 , 또는 하나님의 권능의 천둥이 아니고는 깨어나기 힘듭니다 . 반면에 선한 사람은 더 부드러운 수단으로도 깨어납니다 . 어떤 의미에서든 악인을 깨우기 위해서는 전갈의 무섭고 고통스러운 가시가 있어야 하지만 , 선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통한 회초리의 아픔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 많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 이들은 적절하고 필요한 정도로 주어집니다 . 하나님은 경우에 따라 적은 매를 때리시기도 하고 많이 때리시기도 합니다 . 우리가 녹아져야 할 정도에 따라 더 뜨겁거나 더 차가운 풀무에 던지십니다 .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불 가운데 지나는 것 ( 야만적인 우상 숭배자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 을 즐거워하지 않으십니다 .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자녀에게 당신의 일을 행하십니다 .   - 티모시 크루소 (Timothy Cruso, 1656-1697)

양심의 가책 - 티모시 크루소(Timothy Cruso, 1656-1697)

청교도와 함께 양심의 가책   양심이 민감하다는 것은 경솔하고 근거 없는 양심의 가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고통 주는 것이 아니며 , 온중일 우울함 가운데 묶여 사는 것도 아닙니다 . 이것은 은혜의 표지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레아의 연약한 시력과 같이 질병이며 , 영혼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위로와 만족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 이런 상태에서는 양심은 결코 평화를 누릴 수 없고 , 온갖 사소한 일들 , 모든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의해서도 최고로 두려운 현실이 불어일으키는 것과 같은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때에 두려워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연약함의 사례로 설명해야 합니다 . 베드로는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부정하다 말한 것에 대해 책망을 받았습니다 . 단순한 문제를 스스로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이 그것 때문에 칭찬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 이것이 웅덩이에 굴러 떨어지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며 , 신발 속에 돌이 있는데 자리에 앉아 꺼내려 시도하지 않고 고통 속에 여행을 계속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흔들어 쫓지 않으시며 , 평범한 일들을 고통스러운 가시와 찌르는 칼로 만들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어리석음으로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일 뿐입니다 .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두운 망상에 탐닉하는 사람은 비참함 속에 세월을 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 ( 고전 10:25) 고 한 사도의 규칙은 당시 사건에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범위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 - 티모시 크루소 (Timothy Cruso, 1656-1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