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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년 1월 11일, 프란시스 고마루스(Franciscus Gomarus) 소천, “하나님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도록 작정하셨기에 그는 사람이 죽음의 유일한 방편인 죄를 짓도록 예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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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프란시스 고마루스” 오늘은 17세기 칼빈주의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프란시스 고마루스(Franciscus Gomarus[François Gomaer], 1563-1641)가 소천한 날입니다. 1641년 1월 11일, 고마루스는 78년간의 인생여정을 마쳤습니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한 그는 1593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1594년부터 레이덴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고마루스는 자신 보다 나이가 많은 알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습니다. 1604년부터 두 사람은 예정론 문제로 논쟁하였습니다. 오떼르스피어(Otterspeer)가 잘 비유한 것처럼 이 논쟁에 있어 고마루스는 망치요, 알미니우스는 모루였습니다. 고마루스는……“하나님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도록 작정하셨기에 그는 사람이 죽음의 유일한 방편인 죄를 짓도록 예정하셨다”고 했다. 고마루스는 영원한 형벌의 작정은 창조의 작정보다 앞선다고 보았다. 고마루스의 예정론이 일견 과격한 형태를 보인 것을 알미니안들의 반격에 대한 저항에서 발전된 측면이 있다. 고마루스는 베자에 의해서 형성된 17세기 칼빈주의 전통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대변자였다. 반면에 아르미니우스는 타락전 예정론자도 타락후 예정론자도 아니었다. 아르미니우스가 볼 때 전자는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간주하게 된다고 보았고, 두 가지 주장은 다 같이 확인할 수 없는 사안이자 스콜라주의적 접근으로 이해했다.[이상규, “고마루스와 예정론 논쟁”, 『칼빈 이후의 개혁신학자들』 (부산: 개혁주의학술원, 2013), 122-23.] 고마루스와 알미니우스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은혜의 필요성과 예정 자체에 대해서는 같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예지(豫知)에 근거한 예정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 제공을 거절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609년에 알미니우스가 죽고 난 후 그의 후계자들인 항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