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스펄전 저녁 묵상 "어린 양이 섰는데" (계 5:6)
4월 23일 (저녁의 묵상) ○ 제목: 어린 양이 섰는데 ○ 요절: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 5:6) (부활 승천하사) 높아지신 우리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서 왜 그의 상처를 갖고 나타나셔야 했습니까? 예수님의 상처들은 그분의 영광이고, 그분의 보석이시고, 그분의 거룩한 장신구입니다. 믿는 자의 눈에, 예수님은 "희고도 붉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습니다(즉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아름다움 이상입니다).(아 5:10) 예수님은 그 자신의 순결(무죄)로 희고, 그 자신의 피로 붉습니다(즉 흰 것은 그분의 무죄하심을, 붉은 것은 그분의 피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비길바 없는 순결한 백합꽃으로 보고, 그 자신의 핏덩어리로 붉게 된 장미꽃처럼 봅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감람산 위에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가르치실 때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만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리스도는 없었습니다[즉 예수님의 일생의 생애가 다 사랑스럽고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십자가 위에서 고난받으시는 모습이 하이라이트(high-light)입니다]. 거기서(십자가 위에서) 우리는 그분의 완전한 아름다움들, 밝혀진 모든 속성들, 흘러나온 그분의 모든 사랑, 그리고 표현된 그분의 모든 품성(인격)을 봅니다. 예수님의 상처는 왕들의 광채와 장관(壯觀)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그 가시관은 황제의 왕관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분의 왕홀은 더 이상 갈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안에는 그 어떤 금홀에서도 결코 번쩍이지 않는 영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들을 구하셨고, 그의 완전한 속죄에 의하여 그들을 구속(대속)하셨던 분으로서, 본문(계 5:6)에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나타나시고 있습니다. 그분의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