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칼빈, 『기독교 강요』2.8.31-33 안식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 안식일 계명에서 아직 적용되는 두 가지 면, 안식일 계명 준수의 올바른 자세
31. 안식일 계명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만일 누가 일곱이라는 수에 대한 이 해석을 너무 미묘하다고 해서 싫어한다면, 나는 더 간단히 생각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예컨대, 주께서는 하루를 정하셔서 백성이 율법의 지도하에 영적 안식을 끊임없이 명상하게 하셨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또 일곱째 날을 제정하신 이유에 대해서도, 혹은 그 날로서 충분하리라고 보셨다고 하며, 혹은 자기가 하신 예를 보여 주심으로 백성을 더욱 잘 분발시키려 하셨다고 하며, 흑은 적어도 그들이 조물주를 본받게 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이 안식일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하셨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주로 제시된 신비를 우리의 수고를 영구히 쉰다는 점을 보존하기만 하면, 어느 해석을 취하든 간에 별로 차이가 없다. 예언자들은 유대인들이 이 점을 회상하게 만들며, 신체적 노동만 하지 않으면 의무를 완전히 다한 줄로 생각하지 않게 만들려고 반복 호소했다. 이미 인용한 구절 이외에 이사야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 58:13 -14). 그러나 주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이 계명의 의식적 부분이 폐지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스도 자신이 실상이시므로 그가 계시는 곳에서는 모든 상징이 사라지며, 그가 본체이시므로, 그가 나타나실 때에 그림자는 버려지기 때문이다. 즉, 그는 안식의 진정한 실현이시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으며, 그와 연합하여 그의 죽음에 참여한 목적은 그의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으로 살려는 것이다(롬 6:4-5). 그렇기 때문에 사도는 다른 곳에서 안식일은(골 2:16 )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