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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9월 5일, 순교자 김예진 목사(金禮鎭, 1898-1950)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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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순교자 김예진” 오늘은 순교자 김예진 목사(金禮鎭, 1898-1950)가 태어난 날입니다. 1898년 9월 5일, 김예진은 평안남도 강서군 성태면에서 출생했습니다. 평양숭실중학교를 거쳐 숭실대학에 진학한 김예진은 1916년에 ‘민족의 십자가를 지자’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한 것으로 인해 무기정학처분을 받았고, 삼일만세운동 참가 후 평양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31년에 정암 박윤선과 함께 평양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45년 해방 후 만주에서 귀국하여 총회순회목사로 전국을 돌며 13개의 교회를 세우는 열정을 보였던 김예진은 6.25가 발발하자 공산군에 의해 색출되었고, 공산당에 협조할 것을 거부하자 산 속에서 총살당했습니다. 순교자의 시신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그의 묘비는 국립묘지에 세워져 있습니다. 정부는 김예진에게 건국공로장을 추서했습니다. 어느 가을의 주일이었다. 밭에 조를 베어 펴 놓았는데 비가 내렸다. 동리 사람들은 모두 다 거둬들여서 쌓아 놓았는데, 김예진의 부친 김두연은 그대로 비에 젖게 내버려 두었다……주일에는 예배드리는 날이지 믿는 사람들이 일해서는 안 된다는 신앙……1년 농사를 망치더라도 말씀대로 살겠다는 믿음의 고집이었다……비를 맞게 한 김두연의 조는 얼마 후 다시 내리쬐는 햇빛에 잘 말랐다. 그러나 비가 온다고 거둬 쌓아 들인 마을 사람들의 조는 그대로 싹이 나 자라버렸다.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이듬해 농사를 짓기 위해서 이웃들은 김두연에게 조 종자를 빌리러 올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예배와 1년 농사를 서로 맞바꾸더라도 말씀대로 산다는 그 엄청난 믿음을 여기서 본다. 김예진은 이런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난 것이다.[이민성, 『김예진 그의 생애와 사상』 (서울: 쿰란출판사, 2010), 37-38.] 나라를 사랑했던 김예진은 어렸을 때부터 신앙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철저하게 주일을 성수하며 하나님을 섬겼던 영수(領袖)였습니다. 일생을 통해 일제와 공산당에게 항거했던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