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철 목사(1897-1944) 순교 일대기
주기철 목사 (朱基徹 1897~1944) 주기철 목사님은 1897년 11월 5일,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에 있는 농가에서 주현성 씨와 조재선 여사 사이에 4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기복이였다. 기복은 8세 때 개통학교에 입학했다. 나이도 어리고 몸도 허약하였지만 성적은 월등하게 뛰어나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으며 신동이라 불리기도 했다. 주기철 목사의 생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한일합방이 되었을 때 어른들은 모여 통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더러는 무능한 조정을 원망했다. “이렇게 어이없이 일본한테 목이 메어 끌려가야 하는가?” 나라 잃은 사람들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기복이의 집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큰 형 기원이었다. 기원은 웅천읍에다 조그마한 교회당을 세웠다. 그래서 기복은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주일학교에 다녔다. 기복이 개통학교에 다닐 때 아직 20세인 춘원 이광수가 부산 지구로 순회강연을 나왔다가 개통학교에 들러 “학문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으니 젊은이들이 열심히 배우고 나라를 다시 찾아야 우리들의 미래도 열린다.”고 열변을 토하면서 오산학교를 소개했다. ‘가자, 오산으로!’ 기복은 뜨거운 마음으로 결심했다. 그곳은 1,500리 길이나 되는 먼 길이어서 가족들이 반대하였으나 기복은 굽히지 않고 사촌형인 주기용과 함께 오산학교에 입학했다. 고향을 떠나기 전에 이름을 기철로 바꾸었다. 오산학교. 설립자 남강 이승훈은 105인 사건으로 감옥생활을 하고 계셨다. 그는 가난한 시골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나 자수성가하여 우리나라에서 첫손 꼽힐만한 대 실업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으로 많은 돈을 잃어버리면서 모든 것이 헛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40세의 늦깎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였다. 오산학교와 남강 이승훈 얼마 후 평양에서 열린 안창호 선생님의 교육진흥론을 듣고 그 자리에서 상투를 자르고 금주와 금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