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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7월 29일,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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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헤르만 바빙크,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 자체가 새롭고 영원하며 복된 삶이다.” 오늘은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가 별세한 날입니다. 1921년 7월 29일, 바빙크는 암스테르담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캄펀(Kampen)신학교에 입학한지 일 년 만에 레이든(Leiden)대학교로 옮긴 바빙크는 신학적 자유주의 속에서 믿음을 지켰고, 1880년에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분리측 기독 개혁교회의 첫 신학박사가 된 바빙크는 2년 정도의 목회사역을 감당하였고, 이후 20여 년간 캄펀신학교에서 교의학를 가르쳤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대표작『개혁교의학』을 저술합니다. 1895년 4월에 작성된『개혁교의학』 초판 서문을 살펴봅시다. 이 교의학의 입장은 간략히 밝혀질 수 있다. 단지 신자만 아니라 교의학자 역시 성도의 교제에 대한 고백과 연관된다. 교의학자는 오로지 모든 성도와 함께할 때, 지각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넓이와 길이, 깊이와 높이를 깨달을 수 있으며 고백할 수 있다. 오직 그들과의 교제 안에서 그리고 그 교제를 통하여 기독교 신앙이 선언하는 ‘교리’(dogma)를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교의학은 존중되지 못하고, 기독교 교리는 시대의 호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이 교의학은 교부 신학과 스콜라 신학에 보다 더 주목했다. 이레나이우스(Irenaeus),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토마스(Thomas)와 같은 신학자들은 로마교회에만 독점적으로 속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든 기독교회가 은혜를 입은 교부들과 교사들이다.[Herman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박태현 역, 『개혁교의학1』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1), 17.] 바빙크는 벤자민 워필드, 아브라함 카이퍼와 함께 3대 칼빈주의 학자로 불리곤 합니다. 그의『개혁교의학』은 캄펀신학교에서의 강의에 기반한 것입니다. 바빙크가 결코 크지 않은 신학교의 작은 교실에서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보편교회를 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