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12월 14일, 서경조(徐景祚, 1852-1938) 출생,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
12월 14일 “서경조, 한국인 최초의 축도목사” 오늘은 서경조(徐景祚, 1852-1938)가 태어난 날입니다. 1852년 12월 14일, 서경조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했습니다. 형 서상륜을 따라 만주에 왕래하면서 기독교를 접한 그는 형과 함께 이주한 소래에서 성경을 읽던 중 신앙을 갖게 됩니다. 서경조는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고 1888년부터 소래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904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에 편입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회 목사 7인 중 한 사람으로 안수를 받았으며, 제일 연장자였기 때문에 안수식 때 축도를 담당했습니다(한국인 최초의 축도목사). 서경조는 장연과 옹진, 송화와 은율, 재령 지방 교회를 잘 돌본 후 언더우드 목사와 동사목회를 하였습니다. 1913년에 은퇴한 그는 독립운동을 하는 아들을 기도로 돕기 위해 상하이로 건너가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는 1893년 4월에 약 1개월간 베어드 선교사의 조사로 그와 함 께 경상도 대구지역을 비롯해서 양산, 안동, 경주, 울산, 부산, 상주 등지를 순회하면서 전도한 일이 있었다. 그 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던 마펫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레이놀즈를 안내하여 충청도 공주와 청주 지방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기도 하였다. 그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고 외칠 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서경조 조사는 다시 고향 황해도로 돌아왔다……서경조 조사의 선교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여기저기 교회가 새로 설립되었다. 3년 사이에 45개나 설립했던 것이다.[김수진, 『한국 기독교 선구자 서상륜』 (서울: 진흥, 2009), 199-200.] 서경조는 인기 있는 조사(助事)였습니다. 지방 순회 전도 기간에 그의 열정과 인내를 본 선교사들은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으나 서경조의 마음은 소래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는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한 황해도 지역 전도에 힘을 쏟았고, 목사로 안수 받은 이후에도 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