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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결심 -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 c. 1620–1686)

청교도와 함께 거룩한 결심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 ( 시편 16:8)   나지안스의 그레고리는 아타나시우스에 대해 말할 때 , 자석이자 금강석이었다고 했습니다 . 아타나시우스의 매력적인 성품은 자석이었고 , 변치 않는 결심은 금강석이었습니다 . 발렌스 황제가 바질에게 만일 그가 아리우스 이단에 서명하면 큰 상을 주겠다고 약속했을 때 , 바질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 폐하 , 이 말들은 어린아이들이나 속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우리는 성경의 한 문구라도 변개하느리 차라리 천 번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 의로운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기꺼이 죽을 각오를 하며 이그나티우스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을 진주 목걸이로 여깁니다 . “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니 ” ( 롬 5:3). 크리소스토무스는 바울이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을 덜그럭거리며 마치 보석을 자랑하는 여인처럼 즐거워했다고 말합니다 . 순교자 고르디우스는 “ 만일 당신이 내 고통 중 일부라도 감소시킨다면 그것은 나의 손해요 .” 하고 말했습니다 . 옛 그리스도인들의 두려움 없는 심령은 높은 자리를 비웃고 , 감옥에서 웃었으며 , 고문을 면류관으로 삼았습니다 . 옛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불보다 더 뜨겁게 타올라서 , 이방인들이 “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한가 !” 하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   - 토머스 왓슨 (Thomas Watson, c. 1620 – 1686)

[가장 나쁜 때]-토머스 왓슨 (Thomas Watson, c. 1620–1686)

  청교도와 함께  [가장 나쁜 때]   버림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슬픈 상황입니다(살비안의 표현에 따르면). 이제 하나님은 천국이 아닌 지옥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욥 6:4). 이 독 묻은 화살이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버림받는 것은 저주받은 자의 고통을 맛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사 54:8). 여기에 버나드의 해설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주여, 당신의 얼굴을 가리시는 것을 적은 진노라 말씀하신단 말입니까?”(‘넘치는 진노’를 KJV는 ‘a little wrath'로 번역했다) 성경은 하나님을 빛과 불로 부릅니다. 버림받은 영혼은 빛은 보지 못하고 불만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양자 된 여러분은 여기서도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곤봉은 올리브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올리브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곤봉이 버림받은 영혼을 칠 때도 그 안에는 올리브 나무가 담겨 있습니다. 그 안에는 평화와 자비가 있습니다. 버림의 시간에 있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위로의 씨를 남겨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요일 3:9). 이 하나님의 씨는 위로의 씨입니다. 버림의 시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을 원하지만 그들에게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태양을 원하지만 마음속에는 낮의 별이 있습니다. 나무가 겨울에는 잎과 열매를 잃지만 뿌리에는 여전히 수액이 남아 있는 것처럼, 버림받은 겨울에도 마음의 뿌리에는 은혜의 수액이 남아 있습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땅 위에 빛을 보내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십시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가 하나님의 얼굴빛을 잃는다 하더라도, 자녀는 하나님 은혜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토머스 왓슨 (Thomas Watson, c. 1620–1686)

귀한 말들 -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 c. 1620–1686)

청교도와 함께 귀한 말들 죄인들은 일상의 대화에서 블레셋인들이 삼손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을 대합니다 . 성경이 마치 함께 즐길 최고의 음유시인인 것처럼 , 농담이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으려면 가장 거룩한 것으로 맛을 내야 하는 양 행동합니다 . 루터가 말했습니다 . “ 하나님은 파멸시키고자 하는 자들을 성경을 가지고 놀게 하신다 .”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는 의인이 더 뛰어납니다 . “ 의인의 혀는 순은 같거니와 ” ( 잠 10:20) . 은혜로운 말들이 의인에게서 은처럼 떨어져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부요하게 합니다 . “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 ( 전 10:12) . 히브리어로는 “ 말들은 은혜다 .” 라고 되어 있습니다 . 의인의 말들은 부식시키는 초와 같지 않고 다른 이들의 맛을 내는 소금과 같습니다 ( 골 4:6) . 입천장은 천국이라 불립니다 . 경건한 사람의 입은 천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경건한 사람은 마치 이미 천국에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거룩한 대화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두 제자 가운데 끼어드시게끔 만들었습니다 . “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 ( 눅 24:15) . 두 제자의 입술에서 나온 말들이 너무나 향기로웠기에 하나님은 그것들을 받아 적으셨습니다 . “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 ( 말 3:16) . 몽골의 정복자인 타머레인은 자기 군인들의 이름과 선행들의 기록부를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말을 기록하셔서 그 말들이 잊혀지지 않게 하십니다 . - 토머스 왓슨 (Thomas Watson, c. 1620 – 1686)

영원의 관문 -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 c. 1620–1686)

청교도와 함께 영원의 관문 인생은 신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 다시 말해 하나님 자녀의 인생은 천국의 유익입니다 . 인생은 더 나은 삶을 예비하기 위해 주어집니다 . 이생은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 이곳에서 신자는 신랑과 함께 들어가기에 합당한 옷을 입습니다 . 악한 자의 인생이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악한 자도 살아가긴 하지만 인생은 그의 것이 아닙니다 . 살면서도 죽은 것입니다 . 악한 자는 은혜의 삶을 얻기 위해 자연적으로 주어진 삶을 개선하지 않습니다 . 마치 농장을 빌리고도 아무것도 산출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 세네카가 말하듯이 , 악한 자는 이 세상에 그토록 오래 살았지만 전혀 살지 않은 것입니다 . 훌륭한 왕의 치세 가운데 ,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 오래 살고는 죽었습니다 . 그것이 악한 자의 마지막입니다 . 악한 자의 삶은 기도할 가치도 없고 , 악한 자의 죽음은 눈물을 흘릴 가치도 없습니다 . 하지만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 이것이 신자의 특권입니다 . 신자에게는 자연적 삶뿐 아니라 영원한 삶도 있습니다 . 구원을 이루기 위해 신자가 어떻게 합니까 ? 그 약속에 인치기 위해 얼마나 야단법석을 합니까 ? 얼마나 울고 얼마나 수고합니까 ? 심지어 천국을 침노하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 이처럼 인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 하나님 자녀의 인생은 은혜의 시기며 영원을 위한 씨앗입니다 . 오래 살수록 천국에 더 합당한 자가 됩니다 . 신자의 인생은 등불과 같아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칩니다 . 죄인의 인생은 모래와 같이 지나가 아무런 유익도 끼치지 않습니다 . 신자의 인생은 대리석에 새겨진 그림과 같지만 , 죄인의 인생은 모래 위에 쓰인 글씨와 같습니다 . 토머스 왓슨 (Thomas Watson, c. 1620 – 1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