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년 10월 11일, 보니페이스 8세(Boniface VIII) 사망
오늘은 보니페이스 8세(Boniface VIII)가 죽은 날입니다. 1303년 10월 11일, 보니페이스는 로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습니다. 프랑스 왕 필립 4세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교회에 과세하려하자 보니페이스는 교황의 동의 없이 세속군주에게 세금 내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이 일은 교황이 물러섬으로 일단락되었으나 보니페이스는 1302년에 「유일한 권위」(Unam Sanctam)를 발표하여 영적 권위를 높이려 했습니다. 이 선언문의 핵심은 누가복음 22:38에 대한 해석에 있습니다.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그는 이 말씀을 그릇 해석하여 세속권력이 영적 권위에 굴복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필립 4세의 신복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교황을 사흘간 납치했으며, 보니페이스는 풀려난 지 한 달 후에 사망하였습니다. 보니페이스는……가까운 고문들을 고향 아냐니(Anagni)에 모으고 파문령을 선포할 준비에 들어갔다……윌리엄 노가레는……아냐니에 침입하여 교황을 납치하였으며, 이 때 교황의 가족과 친척들은 폭도들에 의해 강탈당했다……노가레는 보니페이스에게 양위를 강요했다. 그러나 노령의 교황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만일 자기를 죽이고 싶다면 “여기에 나의 목이, 여기에 나의 머리가 있다”고 대답하였다. 노가레는 그를 구타한 후 당나귀 위에 거꾸로 앉히고 온 동네를 돌게 하는 모욕을 가하였다. 아냐니에 있었던 추기경들 가운데 오직 두 사람, 스페인의 피터(Peter of Spain)와 니콜라스 보카시니(Nicholas Boccasini)만이 교황의 편을 들었다. 마침내 보카시니의 지도 아래 일부 촌민들이 교황을 구출하고, 프랑스인들과 그 부역자들을 그 도시로부터 축출하였다……보니페이스는 로마에서 더 이상 이전의 영향력과 권위를 행사할 수 없었다.[Justo L. Gonzalez, The Story of Ch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