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8년 2월 13일, 코튼 매더(Cotton Mather) 별세, “내가 책임지고 있는 이 양떼의 유익을 위해 이 교회의 목사로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2월 13일 “코튼 매더” 오늘은 존 코튼과 리처드 매더의 손자인 코튼 매더(Cotton Mather)가 별세한 날입니다. 1728년 2월 13일, 65세의 코튼 매더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12세에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여 18세에 문학석사학위를 받았고, 평생 동안 469편의 작품을 저술했습니다. 보스턴의 회중교회의 목사였던 그는 한때 의사가 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었습니다. 말을 더듬는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숙고한 후에 말하라는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인 후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코튼 매더는 과학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천연두 예방 접종 옹호는 많은 반발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침실 창문에 폭탄이 투척되기도 하였습니다. 1718년에 매더는 회중교회 목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침례교 목사 안수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열린 마음을 가졌고, 한 주님 안에서의 일치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코튼 매더는 지역 사회와의 접촉과 보스턴의 개별 가정 방문 그리고 교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복음화하는 데 집중했다. 코튼은 아울러 성경 연구와 영적 교제를 위한 소규모의 평신도 연합회를 조직했다……매더의 일기에 기록된 신비주의적 경향은 당시에는 다소 특이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그는 자신이 천사들과 만남을 가졌었다고 적었고, 한 천사가 자신에게 그리스도께서 1716년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했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런 신비주의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매더는 재능 있는 설교자인 동시에 열정적인 목사였다. 매 주일마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이 양떼의 유익을 위해 이 교회의 목사로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Joel R. Beeke and Randall J. Pederson, Meet the Puritans: With A Guide to Modern Reprints , 이상웅‧이한상 역, 『청교도를 만나다』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459.] 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