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년 5월 20일, 니케아 공의회(The First Council of Nicaea) 개최
5월 20일 “니케아 공의회” 오늘은 니케아 공의회(The First Council of Nicaea)가 개최된 날입니다. 325년 5월 20일, 콘스탄티노플 근교의 작은 도시 니케아에서 열린 공의회에는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소집된 318명의 감독들이 참석했습니다. 이전 박해로 인한 흔적을 몸에 지닌 교회 지도자들은 성자에게 시작이 있으며, 성자는 성부에 비해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아리우스주의를 다뤘습니다. 니케아 회의의 결과로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유사 본질이 아닌 동일 본질로, 성자 하나님은 창조되지 않고 낳음을 입으신 하나님임이 재확인되었다. 니케아 회의로 인해 성자의 신성이 확정되었고 동시에 종속론적인 기독론은 교회에서 더 이상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공헌은 알렉산더의 집사장으로 있다가 328년에 알렉산더가 죽자 감독직을 계승한 아타나시우스였다. 296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아타나시우스는 4세기 아리안주의에 대한 반대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샤프(P. Schaff)가 말한 것처럼 ‘세속계의 중심인물은 콘스탄틴이었고, 기독교계에 있어서 중심인물은 아타나시우스’로,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구원론적인 동기에 입각하여 로고스(Logos)로서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영원성)을 부정하며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구원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배격하였다.[정상운, 『교회사의 사람들』 (서울: 이레서원, 2001), 72-73.] 동서방교회의 지도자가 연합한 기독교 최초의 종교회의를 통해 선포된 니케아 신경은 사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과 함께 3대 공교회 신조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저는 주일에 성도들과 함께 니케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곤 합니다. 영지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보편교회의 신앙고백을 소중히 여깁시다. 니케아 신경을 공부하고, 자녀들에게 가르쳐 줍시다.. 우리는 한분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만드신 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