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년 10월 13일,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 별세
10월 13일 “테오도르 베자, 제네바에서 자신이 감당했던 역할을 위해 잘 준비된 사람” 오늘은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가 별세한 날입니다. 1605년 10월 13일 오전 8시, 베자는 제네바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오를레앙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라틴어 시집을 출판하며 다소 방탕한 삶을 영위했습니다. 심각한 질병을 앓은 후 종교개혁사상을 받아들인 베자는 성직록을 포기하고 제네바로 떠났으며, 그때까지 동거 중이던 끌로딘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는 1550년에 로잔에서 헬라어 교수로 임명되었고, 1559년부터는 제네바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일했습니다. 베자는 『아브라함의 희생』이라는 희곡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성 바돌로메 축일 대학살이 있고 난 후, 그는 폭군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 권리를 옹호하는 글을 출판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선출한 지도자를 통해 저항할 것을 역설했습니다. 베자는 칼빈의 죽음 이후 제네바에서 자신이 감당했던 역할을 위해 잘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는 고전어에 능숙한 훌륭한 학자였으며, 제네바아카데미에서 교사와 주석가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었다. 신약성경 본문에 대한 그의 작품은 동시대인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는 또한 조직을 체계화하여 이끌어가는 데에도 재능이 있었다……베자는 제네바 시의 교회적인 문제를 감독하였고, “목회자 연합”(Company of Pastors)의 대표로 1580년까지 활동했다. 그는 신학적인 교리를 만들어가고 논쟁하는 데 능숙하였으며, 특별히 기독론, 예정론, 성찬론 등에 있어 개혁주의 교리를 변호하고 그것을 교회에 가르치는 일에 탁월하였다.[Richard Muller, “Theodore Beza” in Carter Linberg ed., The Reformation Theologinas, 조영천 역, 『종교개혁과 신학자들』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2), 386.] 법률가요 인문주의자인 베자를 이중예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