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10월 24일, 앤 하셀타인(Ann Hasseltine Judson, 1789-1826) 별세
10월 24일 “앤 하셀타인, 내 주위에는 의사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남편만 옆에 있었다.” 오늘은 앤 하셀타인(Ann Hasseltine Judson, 1789-1826)이 별세한 날입니다. 1826년 10월 24일, 앤은 버마(지금의 미얀마)의 암허스트에서 열병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매사추세츠 브래드포드(Bradford)에서 하셀타인 집사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보통 ‘낸시’로 불림)는 춤을 즐기던 쾌활한 십대 시절에 회심했습니다. 낸시는 마을의 신앙부흥과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읽는 것으로 진지한 기도를 시작했고, 고통스러운 구도(求道)의 시간을 거친 후 체험적 신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806년에 세례를 받은 그녀는 1810년 6월에 자신의 집을 방문한 아도니람 저드슨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낸시는 아도니람과 함께 이국땅에서 복음을 전할 것을 결심하고, 1812년에 그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들은 선교지로 가는 항해를 신혼여행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도니람 부부를 인도와 동부 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프랑스령 섬 모리셔스를 거쳐 버마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인도에서 버마로 가는 배에 탄 낸시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어쩌면 아기는 배 위에서 태어나게 될 것 같았다. 낸시는 하녀 겸 간호사로 키가 크고 건장해 보이는 유럽인 여자를 채용했다. 그러나 아도니람과 낸시가 탄 배가 출발하자마자 그 여자는 선실 바닥에 쓰러져서 발작 증세를 보였다. 그녀를 살려보려고 모든 노력을 다 동원했지만 그녀는 숨을 몇 번 헐떡거리다가 죽었다. 다른 하녀를 찾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배는 벵갈 만에 들어섰고, 낸시는 하녀의 생명을 구하려고 애쓰다가 얻은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배는 작고 더러웠다. 바람은 거칠었고 풍랑도 거셌다. 선실 안에 누워 있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바다 위에서 이렇게 생활한 지 며칠이 못돼 낸시는 출산을 했다. 해리엣처럼 “내 주위에는 의사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단지 남편만 옆에 있었다.” 아기는 죽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