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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2월 17일, 왈도파 예배와 양심의 자유를 허락받다. " 종교개혁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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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마음이 가난한 자” 오늘은 종교개혁의 선구자 왈도파(Waldensian)가 자유를 얻게 된 날입니다. 1848년 2월 17일, 사보이 가문의 국왕 찰스 알버트(Charles Albert)가 해방칙령(The Edict of Emancipation)에 서명함으로써 왈도파는 예배와 양심의 자유를 허락받게 되었습니다. 왈도파는 800년간의 세월 동안 알프스 산맥을 떠돌며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변질되어 가는 로 마교회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성경에 근거한 신앙을 추구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칠성례를 거부하고 세례와 성찬만을 수용했습니다. 성자 및 마리아 숭배를 거절하고,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읽었습니다. 연옥과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거부한 그들은 모국어로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리용(Lyons)의 부유한 상인……발도(Waldo)는……성 알렉시스(Alexis)의 희생을 읊어주는 노래에 감동되어 한 신학 선생에게 “하나님을 찾는 최선의 길”을 물었다……“네가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하면 보화를 하늘에 쌓을 것이요. 또 와서 나를 따르라.”……아내와 딸들을 위하여 적당히 남긴 그는 남은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을 절대적으로 이루기로 결심했다……그의 의무를 좀 더 잘 알기 위하여 번역된 신약성서를 얻었다. 그의 행동은 친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여기 진정한 “사도적 청빈”이 있다고 생각했고, 남자 여자들이 그를 따랐다. 이 작은 무리들은 회개를 설교하면서 그리스도의 명령을 더 실천에 옮겼다. 그들은 스스로를 “마음이 가난한 자”라 불렀다. 이제 그들은 1179년의 제3라테란(Lateran) 회의에 설교 허가를 호소했다. 회의는 그들을 이단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을 무식한 평신도로 보고 교황 알렉산더 Ⅲ세는 이를 거절했다……1184년 그들은 교황 루키우스(Lucius) Ⅲ세에게 파문당했다.[Williston Wal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