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3년 6월 22일,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 주장을 철회하다.
6월 22일 “갈릴레오, 억압된 양심” 오늘은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 날입니다. 1633년 6월 22일, 교황청의 압력 속에 종교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오는 자신의 과학적 입장인 지동설을 부인했습니다. 이에 갈릴레오에게 언도된 사형은 교황청이 지정하는 주택에서의 연금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그는 연금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일곱 참회시를 외워야 하는 형벌도 받았습니다. 로마 교황청이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이단시한 것은 그의 방법론 때문이었습니다.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방법 대신 관찰에 기반을 둔 논증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는 1632년에 『두개의 주된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를 출판하며, 자신의 논증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교황청은 그를 소환하여 심문했습니다. 당시는 종교개혁의 시대였고, 교황은 전통적 성경해석이 위협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교회는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전1:5)와 같은 구절을 문맥에서 분리시켜 해석하며 천동설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1609년 그는 플랑드르 지방에 멀리 있는 물체를 가까이 보게 하는 쌍안경이란 기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은 갈릴레이는 실물을 보지도 않고 즉시 망원경 제작에 착수했다. 완성된 망원경으로 그는 천체관측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목성의 주위를 네 개의 위성이 돌고 있다는 것, 은하수는 무수한 별들의 모임이라는 것, 금성의 모양이 달처럼 변한다는 것, 달에 있는 산맥, 그리고 태양의 흑점 등을 발견해냈다. 그의 나이 45살 무렵의 일이다. 그는 단박에 유명해졌다. 여러 학자들이 그의 관찰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아직도 천동설을 고수하고 있던 교황청은 그의 주장을 불합리하고 이단적이라고 경고했다.[박은봉, 『세계사 100장면』 (서울: 실천문학사, 1998), 101.] 요한 바오로 2세는 1999년에 갈릴레오에 대한 정죄와 파면을 사죄하고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습니다.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