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9년 6월 5일, 제네바 아카데미 설립기념식
6월 5일 “제네바 아카데미, 도시 전체의 참여” 오늘은 제네바 아카데미가 개교식을 한 날입니다. 1559년 6월 5일, 성 베드로(쌩 삐에르) 교회에서 열린 아카데미의 설립기념식에서 40세의 베자(Theodore Beza)는 라틴어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는 신설된 아카데미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베자를 비롯한 교수들을 물색하고, 학교 설립 기금을 모금하는 책임은 칼빈의 것이었습니다. 개혁파 신앙고백에 충실할 것을 서 약한 학생들 중 다수가 공부를 마친 후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학생들은 칼빈과 베자와 같은 탁월한 교사들의 명성을 듣고 유럽 전역에서 찾아온 이들이었는데, 대다수가 프랑스 사람이었습니다. 도시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학교에 자금을 대 줄 군주도, 추기경도 없었다. 제네바는 인구 2만의 도시로 성장했지만, 그중 1/3은 무일푼으로 들어온 피난민들이었다……가난한 빵집 부인은 동전 다섯 개를 내놓을 수 있을 뿐이었지만, 부유한 출판업자가 나머지를 보충해서 새 학교에 거액의 재산을 내놓았다……유언장을 작성하는 법률가들은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대학 설립을 상기시켜 유산을 기부하도록 청했다……결국 성 베드로 교회에서 멀지 않은, “남동풍이 강하게 부는” 작은 언덕에 학교가 세워졌다. 칼빈은 종종 아픈 몸을 이끌고 가서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도시를 두른 해자의 습지에서 생긴 모기로 인해 일종의 말라리아에 걸려 여러 달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열병은 다른 질병과 함께 그를 괴롭혔다……현관의 둥근 지붕에 성경 세 구절을 세 가지 언어로 적어 놓은 것은 아마도 칼빈의 착상일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이 구절은 히브리어로 적혀 있었다.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으니”, 이것은 그리스어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라틴어로 세 번째 구절이 적혀 있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Thea B. Van Halsema, This was John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