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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6년 3월 12일, 제2스위스 신앙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이 공포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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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2일 “교사들에게 복을 주소서.” 오늘은 제2스위스 신앙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이 공포된 날입니다. 1566년 3월 12일에 공표된 신앙고백서는 30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혁파 신앙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출판 당시 이 신앙고백서의 제목은 “참된 기독교를 위한 바른 신앙과 보편타당한 교리(Confessio et expositio simplex orthodoxae fidei   et dogmatum Catholicorum syncerae religionis Christianae)”이었으나 이후에는 “제2스위스 신앙고백(Confessio Helvetica posterior)”으로 불렸습니다. 신앙고백서의 대부분은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하인리히 불링거가 저술한 것이었습니다. 불링거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반포한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요청을 받고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정리한 신앙고백서를 전달하였습니다. 당시 황제 막시밀리안 2세는 팔츠 지방에서 개혁파적 요소를 뿌리 뽑으려 하였고, 위기의식을 느낀 프리드리히는 불링거의 도움을 받아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신앙을 변호할 수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독일에서는 이제 개혁교회를 ‘이상한 종파(Sekt)’로 몰아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신앙고백서를, 바젤을 제외하고, 스위스의 모든 개혁교회들이 받아들였다. 바젤은 이 당시에 루터교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그러다 1644년에 바젤도 이 신앙고백서를 받아들였다. 하여간에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는 제1스위스 신앙고백서(1536)와 취리히협약(1549)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성사시켰는데, 모든 스위스 개혁교회들이 이 신앙고백서를 통하여 신학적인 일치를 보고 하나의 공동신앙고백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신앙고백서를 다른 나라의 개혁교회들도 받아들였는데, 프랑스, 헝가리, 폴란드, 체코의 보헤미아형제단, 네덜란드의 개혁교회가 이 신앙고백서를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