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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12월 17일, 조지 길레스피(George Gillespie, 1613-1648) 별세, "교회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일은 교회 정치를 올바르게 개혁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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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조지 길레스피, 교회의 감독제는 개혁될 대상이 아니라, 폐지되어야 마땅합니다.” 오늘은 조지 길레스피(George Gillespie, 1613-1648)가 별세한 날입니다. 1648년 12월 17일, 길레스피는 커크칼디(Kirkcaldy)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16살에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목사 안수를 1638년까지 미루었습니다. 주교에 의해 안수 받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길레스피는 가정교사 및 가정목사로서 지내는 동안 사무엘 러더퍼드와 긴밀한 우정을 쌓았습니다. 또한 찰스 1세가 스코틀랜드 교회에 강요한 미신적인 의식들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출판했습니다. 그는 공적 예배에 인간적인 고안물들이 쓰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길레스피는 그의 첫 주저인 『영국 로마교 의식 논박』(Dispute Against the English Popish Ceremonies)』을 네덜란드에서 익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감독  제도와 영국 국교 의식들을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 책은 “스코틀랜드에서 마침 새로운 공동기도서의 도입 때문에 왕국 전체가 소란 가운데 있을 때인 1637년 여름에 발행되었다. 논박은 같은 해 10월 스코틀랜드 추밀원이 그 책의 모든 사본들을 수집해서 보통의 교수형 집행인에 의해 태워 버리도록 명령할 만큼 큰 물의를 일으켰다.” 길레스피가 저자라는 말이 곧 퍼져 나갔다. 로버트 베일리는 길레스피의 말의 많은 부분에 동의하지 않았을지라도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은 24세의 젊은이가 이런 책을 저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기록했다. “나는 그가 이 섬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 가운데 속한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Joel R. Beeke and Randall J. Pederson, Meet the Puritans, 이상웅‧이한상 역, 『청교도를 만나다』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645-46.] 조지 길레스피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파견된 스코틀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