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년 9월 14일,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Ιωάννης ο Χρυσόστομος, c. 347–407) 별세
9월 14일 “크리소스토무스. 3천 명의 과부 구제, 병원과 여행자들의 휴식소 설립” 오늘은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Ιωάννης ο Χρυσόστομος, c. 347–407)이 별세한 날입니다. 407년 9월 14일, 크리소스토무스는 폰투스의 코마나(Comana in Pontus)라는 소아시아의 외딴 유배지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교회개혁은 아카디우스 황제와 에우독시아(Eudoxia) 황후의 원성을 사고 말았습니다. 지도층의 도덕적 개혁을 부르짖었던 크리소스토무스의 노구(老軀)는 험한 귀양길에서 쓰러졌고, 사람들은 그를 “황금의 입”이라고 불렀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당시에 유행하던 성경의 풍유적 해석을 지양하고 문법적·역사적·상식적으로 성경을 해석했습니다. 안디옥에서 사제로,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대주교로 섬겼던 그는 헌신된 설교자였습니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들은 그의 성경에 대한 부끄러움 없는 헌신으로 인증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렇게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그는……청중들에게 같은 열심을 가질 수 있는 감동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므로 그는 성경을 무시하거나 성경의 깨달음에 깊이 전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격노했다. 때때로 그의 좌절감은 심한 비난으로 폭발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경마나 춤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으면서 “바울 서신이 몇 편인지조차도 알지 못하며, 설사 몇 편인지 설명할 줄 안다 해도 그 서신들을 받은 도시의 이름을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한다”라고 한탄했다. 성경에 대한 크리스소톰의 애정은 성경의 저자들과 주요 인물들에게까지 확대된다……크리소스톰은 특별히 사도 바울에게 특별한 애정을 나타냈고 이 애정을 회중들도 함께 가지라고 권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리소스톰을 성경 해석가로서만이 아니라……성경을 정확하게 읽고 사용하는데 필요한 덕목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목사로서 이해한다.[Donald K. McKim, ed., Historical Handbook of Major Bi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