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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2월 20일, 편하설(Charles Francis Bernheisel, 片夏薛, 1874-1958)의 일기,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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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신다.” 1902년 2월 20일에 편하설(Charles Francis Bernheisel, 片夏薛, 1874-1958) 선교사가 남긴 일기를 살펴봅시다. 1900년에 맥코믹신학교(McCormick Seminary)를 졸업한 편하설은 복음전도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한국선교에 헌신한 데에는 학생자원운동(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 n Missions)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무디(D. L. Moody)와 피어선 박사(A. T. Pierson)가 주도한 선교 운동을 통해 89개 대학, 251명의 대학생 대표들이 도전을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해외선교사로 자원했고, 편하설이 바로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의 산 증인이기도 한 그의 일기를 통해 아직 우리말이 서툰 28세 선교사를 반갑게 영접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초기한국교회의 열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달전교회의 12명의 남자 교인을 대동하고 오늘 아침 30리 떨어진 덕천읍으로 왔다. 나를 보자 다가와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신다”고 말한 사람들이 거리에 도열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목사가 올 것이라는 얘기가 널리 퍼졌던 모양이다. 소년과 성인 남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중이 나를 도와 교회까지 왔다. 교회에는 이미 많은 남성이 모여 우리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예배당은 20칸이 넘는 매우 큰(이 도시에서 가장 큰) 건물이고 약 900냥이 되는 건축비용을 교인들이 모두 치렀다. 이곳에는 10여 명의 학습교인만이 있을 뿐이었지만, 그들이 커다란 역사를 이루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 도착하여 약 30분 있으니까, 마을 현감(magistrate)이 하인을 시켜 내게 쪽지를 보내왔는데, 그 쪽지에는 그가 방문하고 싶으나 아파서 참석할 수 없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가 아픈 것은 안됐으나 나의 한국어 실력이 현감을 맞을 정도로 충분하지 않아 그가 올 수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