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2022년 4월 3일 주일] 가룟 유다. 그는 이적을 행하고, 전도하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위선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종에 대한 몸값인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넘겼고(출21:32), 이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11:13). 예수님은 시편 41편 9절을 인용하시며 예수님과 함께 떡그릇에 손을 넣는 사람이 주님을 팔 것을 말씀하십니다. 가룟 유다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예수님은 그가 맞다고 지적해주셨으나 유다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여,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배신과 배반, 위선과 거짓이 바로 내 모습 아닙니까? 에덴동산에서부터 갈보리 언덕에 이르기까지 죄인들은 한곁같이 주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친구여, 추악한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가룟 유다와 같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마태복음 26:1-5)


마땅히 예수님을 알아보았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그분을 죽이려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더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백성들의 동요 없이 예수님을 처리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이들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배반했던 첫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누구보다 성전 제사와 성경에 정통해 있었지만, 이러한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자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처치하려 합니다. 모든 것이 넉넉함에도 불구하고 유혹에 넘어가 버린 첫 사람처럼 말입니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마태복음 26:7-9)


마땅히 예수님의 죽음을 숙고해야 할 제자들은 아직도 무지와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3년간 예수님과 동행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주님께 배운 사도들은 여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고, 주님께 큰 칭찬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화를 냅니다. 예배가 “거룩한 낭비”임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제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나무라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마26:11). 마땅히 기회를 사서 예수님께 집중해야 할 때, 가장 특권을 누린 사도들은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에덴에서 첫 사람이 범죄한 것과 그 본질이 같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마태복음 26:14-16)


가룟 유다. 그는 이적을 행하고, 전도하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위선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종에 대한 몸값인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넘겼고(출21:32), 이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11:13). 예수님은 시편 41편 9절을 인용하시며 예수님과 함께 떡그릇에 손을 넣는 사람이 주님을 팔 것을 말씀하십니다. 가룟 유다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예수님은 그가 맞다고 지적해주셨으나 유다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여,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배신과 배반, 위선과 거짓이 바로 내 모습 아닙니까? 에덴동산에서부터 갈보리 언덕에 이르기까지 죄인들은 한곁같이 주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친구여, 추악한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가룟 유다와 같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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