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듦에 관하여-인생 황혼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잘 누리는 법(Growing Old in Christ)스탠리 하우어워스

 

《한나의 아이》의 저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뛰어난 기독교 사상가들의 기독교적인 고찰과 해법


잊힌 노년의 가치와 영광을
성경적, 신학적, 윤리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잘 늙고 싶은 이들을 위한 책



덕과 지혜의 표상인 노년의 가치와 의미,
우리 시대에 추락하고 왜곡되다
우리 사회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고립되어 가는 것이다. 유약하고, 사회적으로 쓸모없고, 가정과 소유로부터의 소외, 강요당하는 의존, 향수 등과 맞물려 여러 측면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이자 사랑을 주기 어려운 존재로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체감하는 노인은 비참한 존재이다. 몸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 붕괴될 뿐 아니라(치아가 썩고, 눈은 흐려지고, 귀먹게 되고, 심장은 약해지는 등등), 도덕적 성향도 상응하여 퇴보한다. 노인은 쉽게 발끈하고, 잘 용서하지 않으며, 욕심이 많고, 탐욕스럽고, 걸핏하면 싸우려 들고, 우울하고, 말이 많고, 잘 들으려 하지 않고, 향수에 젖어 있고, 걱정으로 가득하다.
늙는다는 것은 우리의 친지들과 평생의 친구들을 지역적 거리나 질병, 죽음을 통해 상실해 가는 것을 뜻한다. 친구들이 멀어지고 떠나감에 따라, 우리는 삶의 이야기와 정체성을 상실해 간다. 우리는 늙어감에 따라, 과연 지금까지 나 자신으로서 살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늙어가는 살과 뼈를 보면 과연 이것이 이제까지의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고 인정할 수조차 없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몸을 보면서 ‘내 몸’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다

장수를 하나님의 축복이고, 백발을 영광의 면류관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임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대 문화 속에서 우리는 나이 듦을 지혜의 표시로, 장수를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으로, 백발을 영광의 면류관으로,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이들에 대한 돌봄을 의무로 보는 성경적 가르침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들고 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시므온을 비롯한 성경의 여러 인물들을 보면서,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인생의 완성인 노년의 미덕에 대해 마음이 뜨거워질 것이다.
젊었을 때처럼 노년에도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의 삶과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위한 모델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그리스도인보다 죽음을 마주할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인데, 자기희생과 예수님에 대한 충성스러운 순종을 오래 실천해 온 그들이 덜 연습된 사람들보다 더욱 우아하게 두려움을 거부하고 희망을 껴안을 수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고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가 그분의 것과 같이 부활의 삶 속에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죽음을 직시한다.
그러나 그들의 확신은 나이 자체의 자연스러운 열매나 보상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실천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나이 듦에 관한 기독교적 실천은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시는 동안,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습관을 평생 동안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나이 들어도 귀하지 않은 존재가 없는 것이다.


다시 노년의 의미를 회복하며
나이 듦을 환대하기 위한
기독교적인 실천은 무엇일까
예수 공동체들의 기독교적인 실천만이 왜곡된 나이 듦의 가치와 미덕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쌓으며, 예배의 실천을 통하여 나이든 이들에게 자신들이 바로 누구에게 속한 자인지를 마음에 새겨주며, 소명을 발견하게 하며, 죽음의 압박에 눌리지 않게 곁에 있어 주며, 현대에서 잊혀진 존재들이고 쓸모없는 존재들이 아닌, 하나님과 공동체에 기억되는 존재임을 자각시켜 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예수 공동체가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할 몫일 것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 안에서 잘 늙고 싶다’고
마음속에 간절히 바라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이 시대가 이전 시대와 특히 다른 점 중 하나는 나이 듦과 노년층에 대한 태도의 차이다. 요즘 시대는 젊음과 생산성만 찬양하고 나이 듦이나 노인들은 점점 꺼리고 피한다. 이는 비단 노인들에게만 힘든 상황이 아니라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과 중장년들에게도 큰 손해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를 먹는(그리고 죽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할 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이 책은 크리스천으로서 늙어 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찰한 책이다. 열여덟 명의 뛰어난 기독교 사상가들이 이 주제를 철저하게 탐구했다. 나이 듦에 관한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시각들을 조사하고 현대 사회에서 늙어 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고민하며 ‘크리스천답게 늙어 가는 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 외에 노인을 위한 의료 기술, 안락사에 관한 논쟁, 노인 간 또는 노인과 젊은이들 사이의 우정과 같은 현대 사회의 많은 이슈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신학자, 윤리학자, 전문 간병인들이 활용해도 될 만큼 깊이가 있으면서도 목사와 일반 독자들까지 나이 듦에 관한 성경적인 시각을 찾는 모든 이가 쉽게 읽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나이를 먹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삶이 아주 많은 부분에서 엉망이 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의 몸과 마음은 깜짝 놀랄 만큼 실패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이전의 능수능란함은 사라지고 젊어 보였던 모습도 사라져 버린다. 정체성이 변질되고 그들의 이전 삶을 이끄는 핵심적 능력들은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문자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그들의 공동체는 자신들과 오랫동안 함께 해 왔고 삶에 뒤엉켜 있었던 사람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으로 해체된다. 그렇게 부모와 형제자매, 배우자, 자녀, 멘토들, 친구들과 사별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나이가 들면서 아주 자기 자신이 해체되는 것 같다.
이러한 역학관계가 우리 시대의 나이 듦을 구성하는 뿌리에 놓여 있다. 사턴이 늙어간다는 것의 보상은 진정한 ‘자아’가 만개하는 것이라 말했던 것과는 별개로 노화의 골칫거리는 자아의 해체이다. 자아를 모든 의미의 원천이자 목적으로 상정하는 현대적 관점에서, 자아를 위협하는 모든 것은 두려움의 대상일 것이다. 사실 나이 듦에 관한 우리 시대의 글들은 피상적인 검토에서조차 두려움이 지배적인 모티브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두려움의 특성은 문화적으로 결정된다. 루시앙 리차드(Lucien Richard)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화에 대한 두려움은 삶의 목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상실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자기 존중감과 인격성의 근본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따라서 후기 자본주의적이고 기술주도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서구 문화가 제기하는 노화의 문제 이면에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일련의 인류학적 전제와 신념이 깔려 있다.


***
우리가 ‘인생의 정오’에 다다랐을 때, 그것은 ‘황혼’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거기에서 내적 전환이 일어난다. 우리의 의식은 본성적으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성찰한다. 그리고 되어야만 하는 것에 대한 비전을 추구하며 산다. 우리들 대부분은 옛날이야기를 하는 노인들의 성향에 익숙해져 있으며…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들어 주는 일을 ‘시간낭비’라 생각하고 꺼려한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기억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 준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가진 시간(또는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은 줄어들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더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 이상 수년 전의 기준으로 시간을 잴 수 없게 되지만, 우리의 내적 세계라는 공간을 탐험할 자유를 더 많이 얻는다.


***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를 알 뿐 아니라 죽음에 다가서는 길을 아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같은 질병이라도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이를 수 있는 많은 길이 있고, 많은 선택지가 있으며, 우리가 쉬거나 계속할, 또는 여행을 완전히 끝낼 수 있는 많은 관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줄 안내자말이다. 그 여행의 끝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사랑할 동료가 필요하며 우리의 길을 홀로 선택하게 할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결정에 들어오게 마련인 진료라고 하는 외적 요소는 우리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며 우리의 삶의 방식을 잘 알고 있는 의사로부터 주어져야 한다. 우리가 앞에서 다루었던 극히 전문적인 의료기술을 지닌 낯선 사람이 결정을 내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 결정의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낯선 자의 친절이 아니라 오랜 기간 함께한 친구의 이해심이다. 우리의 건강 돌봄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새롭게 갖춰지든 간에, 좋은 판단은 이처럼 단순한 진리를 귀하게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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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세월이라는 선물을 칭송하기보다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거치적거릴까 봐 두려워서? 실제로 세월이 흐를수록 주름이 늘고 피부는 처지며, 흰 머리도 늘어나면서, 우리의 복잡한 인생사, 곧 각자의 독특하고 다른 복잡한 인생사가 그 위에 기록된다. 불현듯 거울은 우리에게 지난 세월과 유한성, 종착을 향해 가고 있는 인생사라는 모호한 선물을 비춰 준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완성하려는, 독특한 현대적 환상 속에서 우리 자신의 지혜로 삶의 수수께끼들을 풀어보려 했다. 한때 자유와 운명을 즐기는 노마드였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세월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헛된 전투에 참가하는 운명이 되고 만 것이다. 어느 현대 시인이 쓴 대로, 세월이란 ‘폭력배’와 같다. 세월은 “시간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달아나 버린다.”3 우리가 저마다 경험한 세월들은 문자 그대로 우리 인생과 우리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측정한 것으로서, 만족 없이 명백히 모순된 굶주림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주의에 의해서 제기된 자유를 갖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비역사적 과거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델리아가 경험한 이야기다.


***
하지만 노인과의 우정이 없다면, 젊은이들이 어떻게 늙어가고 죽을지 배울 수 있을까? 과연 노인과 다른 세대들 사이의 우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예를 들어 지금 이 글을 노인(하우어워스)과 젊은이(요디)가 더불어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젊은이는 에너지와 열정을 지니고 있다. 노인의 경우에도 그럴 수 있기는 하다. 두 사람의 필자들 중에서 노인 하우어워스는 최근에 와서야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 죽음의 가능성이 아직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노인 하우어워스는 죽음이 삶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젊은이 요디에게 설명해 줄 적임자이다. 이것이야말로 늙음이 본질적으로 알려 주는 통찰인 셈이다.

추천의 글 / 곽요셉 목사
프롤로그 / 우리 모두가 늙는다 누구도 예외 없이


P a r t 1 나이 듦에 대한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관점
나이 듦은 영광이었으며 특별한 선물이었다

1. 성경의 관점
장수는 축복이었다

2. 초대교회의 관점
인생의 늦은 오후에 허락된 특별한 삶

3. 중세의 관점
나이 듦의 영광이 추락하고 왜곡되다

P a r t 2 근현대 고령화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들
우리 시대 잊혀진 노년의 가치와 영광

4. 근대 사회가 만든 노년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비참함과 긴박감에 놓이다

5. 치료주의 문화
의술과 치료에 의지하며 나이 듦을 정복하려 하다

6. 노인들 간의 차이
자신만의 늙어가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7. 신학과 경제학의 갈등
안락한 은퇴와 거룩한 제자도 사이에 갈등하다

8. 노인과 교회
‘충만하고 거룩하고 신실하게’ 늙을 수 있다

P a r t 3 나이 듦에 대한 기독교적 실천
공동체, 나이 듦을 환대하라

9. 우정의 실천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쌓으라

10. 예배의 실천
자신이 누구에게 속한 자인지를 마음에 새기다

11. 소명의 실천
삶에 은퇴는 있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은퇴는 없다

12. 변화와 연속성의 실천
노년의 지혜와 덕이 공동체에 변화와 생기를 주다

13. 안락사의 문제
죽음의 압박 앞에서 공동체가 함께해 주라

14. 기억의 실천
잊혀진 존재, 하나님께 기억되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해주라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노년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노년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 성찰이자 복음적 해석입니다. 이 책은 나이 듦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함께복음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 곽요셉 / 예수소망교회 담임목사, 재단법인 에덴낙원 이사장

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타임〉지에서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선정된 그는 현재 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 신학대학원 길버트 로우 신학적 윤리 석좌교수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40년 미국 텍사스에서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사우스웨스턴대학교(Southwestern University)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이후 오거스태나컬리지(Augustana College), 노터데임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를 거쳐 2013년 은퇴할 때까지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다.
특히 그는 신학과 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바라보며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하였으며, 이런 고민들은 정치 철학, 사회 과학 철학, 법학, 교육, 생명 윤리, 의료 윤리에 관한 다양한 집필 활동과 강연으로 이어졌다. 2001년에는 인문학 분야에서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기포드 강좌 강연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신 질환을 앓는 아내와 24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치열한 현실과 난제 앞에서 평생 고민하는 신학자로 살아온 점이 많은 이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국내에 소개된 다른 저서로는 《한나의 아이》(IVP),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복있는사람), 《교회됨》(북코리아) 등이 있다.

캐롤 베일리 스톤킹(Carole Bailey Stoneking)
노스캐롤라이나 주 하이포인트컬리지(High Point Colleage)의 종교학과 학과장이다.

키스 메도어(Keith G. Meador)
듀크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의 정신의학 및 행동 과학 임상교수이고, 듀크대학교 노화센터 선임연구원이며,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 신학 및 의학 실습 교수이다.

데이비드 클라우티어(David Cloutier)
미네소타 주 컬리지빌의 세인트베네딕트컬리지(St. Benedict’s Colleage)와 세인트존스대학교(St.John’s University)의 신학부 조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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