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2022년 1월 23일 주일] 그러나 신앙이 핍박받지 않는 상황에서는 선량하고 유용하며 충실한 시민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권위자의 덕과 자질 때문이 아닌,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고 명령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11-12)
육체의 정욕은 성령님의 다스리심을 거부하는 모든 죄된 욕심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죄악된 욕심을 통제하면 성령충만한 삶에 큰 유익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절제가 복음 전도가 되며,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일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벧전2:9).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그런데 사도는 특별히 제어해야 할 정욕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권위에 대한 저항입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2:13-15)
복음은 믿는 모든 자를 자유롭게 합니다. 신자는 이제 하나님을 최고의 권위자로 섬깁니다. 이 지점에서 유혹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자에게 반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님만이 주님이시라고 핑계를 대며 통치자를 무시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무너뜨립니다. 바울 역시 베드로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내 종”(렘25:9)이라고 부르신 하나님은 통치자를 자신의 사역자 삼아 일하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1-2)
요한의 논리가 여기에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귀 기울여 봅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권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임명하신 눈에 보이는 권세자에게 순종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물론 거룩한 불복종은 가능합니다. 통치자가 신앙을 억압할 때에는 히브리 산파처럼(출1:17), 베드로처럼(행4:19, 5:29),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단3:18, 6:13) 권위에 불순종하고, 주님 편에 서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핍박받지 않는 상황에서는 선량하고 유용하며 충실한 시민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권위자의 덕과 자질 때문이 아닌,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의 뜻이요, 예수님의 모범입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주를 위하여” 순종할 차례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기에, 순복이 무엇이 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의 힘을 주실 것입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디모데전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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