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they had heard the king, they went on their way, and the star they had seen in the east went ahead of them until it stopped over the place where the child was. When they saw the star, they were overjoyed.

마태복음2:9-12

[새번역]
9.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그런데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해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그 위에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11.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리고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NIV]
9. After they had heard the king, they went on their way, and the star they had seen in the east went ahead of them until it stopped over the place where the child was.
10. When they saw the star, they were overjoyed.
11. On coming to the house, they saw the child with his mother Mary, and they bowed down and worshiped him. Then they opened their treasures and presented him with gifts of gold and of incense and of myrrh.
12. And having been warned in a dream not to go back to Herod, they returned to their country by another route.

박사들의 경배 (마태복음 2:9-12)

여기에는 박사들이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을 겸손하게 경배한 사실과 그에게 바친 존경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박사들은 "아기를 만날 때까지 계속 찾기를" 결심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박사들만이 그곳으로 갔으며 왕궁이나 교회 또는 예루살렘 성에서 그 누구도 마음으로 원해서가 아니라 박사들에 대한 외모로나 어린 왕을 보려는 호기심으로도 박사들과 함께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방의 여왕"과 같이 "동방의 박사들"도 심판 때에 일어나 그 세대와 이 세대의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먼 나라"에서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 왔기 때문이며, 한편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은 그를 환영하기 위하여 바로 옆 고을인 베들레헴에 조차 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사들은 그들이 애써 찾았던 그리스도가 이와 같이 자기 나라에서 무시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박사들은 실망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먼길을 찾아온 것이 자기 백성조차 무시하고 천대하는 유대인의 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결심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밀고 나간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는 단지 혼자만 남게 될지라도 계속적으로 그리스도를 경배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우리는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천국에 함께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과 함께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

Ⅰ. 박사들은 그들의 고향에서 보았던 바로 그 별에 의해 그리스도를 찾게 되었다(9, 10절).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은혜스럽게 인도하셨다. 그 별은 최초에 날아서 박사들로 하여금 이 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해 주었으며, 그 후에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왕을 찾기 위하여 평범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유의할 것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일에 있어서 특별한 도움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박사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찾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많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고을이었다. 베들레헴에 도착하면 어디에 가서 그를 찾을 것인가? 여기에서 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여기에서 끝나버린 것은 아니었다. 박사들은 말씀으로 이곳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 그들을 거기에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두지는 않으셨다. 그것은 "홀연히 동방에서 그들이 보았던 그 별이 바로 그 때에 그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할 바를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일어나서 행하라, 그러면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리라". Vigilantibus, non dormientibus, succurrit lex-즉 법은 게으른 자에게가 아니라 부지런한 자에게 도움을 준다.

오랫동안 그들에게서 사라졌던 그 별은 이제 다시 나타났다. 흑암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빛이 그들을 위해 비춰지며, 보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된 땅"에 이르기까지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으나 박사들은 그 자신이 "광명한 새벽별"이신 "약속된 씨(후손)"에게 별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았다(계 22:16). 하나님은 부지런히 충실하게 그를 찾는 자를 혼란 속에 내버려두시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것"을 창조하신다. 이 별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일종의 표식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빛이시며 그의 백성을 앞장서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가 신앙으로 우리의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 자신이 그의 인도하심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눈으로 지켜보시고 인도하시며"(시 32:8), 또한 "이것이 그 길이니 이리로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의 마음속에는 한 샛별이 떠 있어 그들을 인도한다(벧후 1:19).

2. 박사들은 기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순종하여 따랐다(10절). "저희들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 이제 박사들은 그들의 기대한 바가 어긋나지 않았음과 이렇게 먼길을 여행한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박사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확신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의 표식은 그 가치를 아는 자의 영혼을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반드시 채워 준다. 이제 박사들은 그들이 공연한 헛수고를 한다고 비웃었을지도 모르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오히려 비웃을 수가 있었다. 이것은 마치 "성 중에 순행하는 자"가 술랍미 여자에게 그 사랑하는 자의 소식을 말해 줄 수 없었으나, 그녀가 "그들을 떠나자마자 그 사랑하는 자를 만나게 된 것"과 같다(아 3:3, 4). 우리가 사람에게 기대할 것은 너무도 적지만, 하나님에게 기대할 것은 너무도 많다.
이 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 얼마나 큰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던가! 이러한 기쁨은 누구보다도 "속박의 영"인 마귀의 세력 아래에서 지루하고 우울한 유혹과 추방의 밤을 지낸 후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거 하시는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만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비취는 빛과 같으며, 죽음 가운데서 얻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이제 박사들은 "의의 태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곧 뵙게 되리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샛별"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모든 것에 대해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별은 박사들을 맞아 왕을 뵙게 될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이 예전(禮典) 장관의 안내로 박사들은 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기뻐하고 행하려고"하는 자들에 대해 그가 만나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사 64:5).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한다.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만음이 즐거울지로다"(시 105:3).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초신자들에게 놀라운 그의 사랑을 즐겨 베푸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삶을 시작할 때 당하는 어려움에 대해 그들을 격려하신다는 사실이다.

Ⅱ.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았을 때 정중하게 경배를 드렸다(11절). 박사들은 그 아기 왕이 비록 국가에 의해서는 무시를 당하였을지라도 가정에서는 존귀하게 섬김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고 추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박사들이 아기 왕의 궁전이 마굿간이며, 그를 수종드는 자는 초라한 그의 어머니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이 아기가 "세상을 구원할 구주"이신가? 이 아기가 유대인의 왕, 아니 "세상의 왕 중 왕이신가? 그렇다. 참으로 이 아기야말로 "본래 부요하셨으나 우리를 위해 이렇게 가난하게 되신" 왕 중 왕이셨다. 박사들은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이 멸시받은 아기에게서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로서 지닌 영광"을 분별해 볼 수 있을 만큼 현명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탐문이 실패였다거나 헛된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찾던 왕을 발견하였을 때 먼저 그들 자신을 그에게 바친 다음, 그들의 예물을 드렸다.

1. 박사들은 그들 자신을 그에게 드렸다. "그들은 엎드려 경배하였다" 성경에는 박사들이 최고의 왕적인 화려함을 갖춘 헤롯에게 이러한 경의를 표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아기 예수에게 이러한 경의를 표했는데, 이것은 왕으로서만의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것이 아니라(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헤롯에게도 같은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그리스도를 발견한 자들은 누구든지 그 앞에 엎드려, 그를 찬미하고 그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네 하나님이니 그에게 경배하라." 주 예수를 겸손하고 신실하게 경배하는 것은 가장 현명한 지혜이며, 이로써 그리스도를 알고 자신의 참된 유익을 이해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2. 박사들은 아기 예수에게 그들의 예물을 드렸다. 동방에서는 왕에게 경의를 표할 때 예물을 바쳤다. 시편에서도 스바의 왕들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된 것을 "그들이 예물을 가져와서 드리리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시 72:10). 이사야 60장 6절을 보라.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 자신을 그에게 드리는 것이 진정한 것이라면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 버리거나 그에게 바쳐야 한다. 또한 먼저 우리 자신을 산제사로 그에게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예물은 열납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먼저 아벨을 열납하시고, 그 후 그의 제물을 열납하셨다." 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다. 말하자면 돈이거나 돈의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를 통하여 요셉과 마리아로 하여금 그들의 가난한 처지에서 벗어나도록 때마침 이 예물을 보내 주셨다. 이 예물들은 박사들의 본 고장에서 나는 토산물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으로서 그를 공경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바친 예물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황금"을 바친 것은 왕이신 그리스도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이다. "기이사의 것은 기이사에게"라는 말씀은 바로 왕에게 공물을 바칠 것을 이르시는 말씀이다. "유향"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게 바쳐졌는데, 이것은 유향을 피워 그 향기로서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몰약"은 장차 죽으신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 바쳐졌는데, 몰약은 시체를 썩지 않도록 보존하는데 사용되었다.

Ⅲ. 박사들은 아기 왕을 찾아 뵙고 난 후에 그를 떠나 돌아갔다(12절). 헤롯은 이전에 박사들에게 그들이 아기를 찾거든 "그 소식을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명령했었다. 박사들이 만일 반대 명령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헤롯의 악한 계획을 위한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정직하고 좋은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은 남들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쉽사리 믿어버리며, 실제로 세상이 그만큼 악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를 어떻게 시험에서 건져내실 것인가"을 알고 계신다.

박사들이 헤롯에게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비록 그들이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그 약속에 흔히 그러하듯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단서를 반드시 붙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박사들이 헤롯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으며, 이로써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계획한 음모를 막으셨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이 그 계획에 본의 아니게 공모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당하게 될뻔한 괴로움도 막아 주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 Crhmatisqegtej 신탁적인 암시-oraculovel responsl accepto)를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이 박사들이 하나님께 지시를 구한 후 받은 응답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죄를 두려워하고 올무에 빠지게 될까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께 지시하심을 구하면 옳은 길로 인도함을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박사들은 "헤롯이나 예루살렘에로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보고를 들려 그들 자신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보게 할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으며, 비록 알려 주었다 하더라도 가서 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사들은 고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들에 대한 그 후의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으며, 그들이나 그들의 고국 사람들이 그들이 요람 속에 있었을 때 경배했던 그리스도를 그후 성전에서 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는 길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시는 그들이 아기 예수를 "하늘에서 내려오신 주"로 신앙한 사실에 대한 확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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