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iel 12 preaching/Those who are wise will shine like the brightness of the heavens, and those who lead many to righteousness, like the stars for ever and ever.

다니엘12:1-13

[새번역]
1. "그 때에 너의 백성을 지키는 위대한 천사장 미가엘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나라가 생긴 뒤로 그 때까지 없던 어려운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그 책에 기록된 너의 백성은 모두 피하게 될 것이다.
2. 그리고 땅 속 티끌 가운데서 잠자는 사람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깨어날 것이다. 그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수치와 함께 영원히 모욕을 받을 것이다.
3.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4. 그러나 너 다니엘아, 너는 마지막 때까지 이 말씀을 은밀히 간직하고, 이 책을 봉하여 두어라. 많은 사람이 이러한 지식을 얻으려고 왔다갔다 할 것이다."
5. 그 때에 나 다니엘이 보니, 다른 두 사람이 서 있는데, 한 사람은 강 이쪽 언덕에 서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강 저쪽 언덕에 서 있었다.
6. 한 사람이, 모시 옷을 입은 사람 곧 강물 위쪽에 서 있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끝나기까지, 얼마나 더 오래 있어야 합니까?"
7. 내가 들으니, 모시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사람이, 그의 오른손과 왼손을 하늘로 쳐들고, 영원히 살아 계신 분에게 맹세하면서 말하였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나야 한다. 거룩한 백성이 받는 핍박이 끝날 때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8. 나는, 듣기는 하였으나,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물었다. "천사님, 이 모든 일의 결과가 어떠하겠습니까?"
9. 그가 말하였다. "다니엘아, 가거라. 이 말씀은 마지막이 올 때까지 은밀하게 간직되고 감추어질 것이다.
10. 많은 사람이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악해질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것이다.
11. 날마다 드리는 제사가 없어지고, 혐오감을 주는 흉측한 것이 세워질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이 지나갈 것이다.
12. 천삼백삼십오 일이 지나가기까지, 기다리면서 참는 사람은 복이 있을 것이다.
13. 너, 다니엘아, 너는 끝까지 신실하여라. 너는 죽겠지만, 끝 날에는 네가 일어나서, 네게 돌아올 보상을 받을 것이다."

[NIV]
1. "At that time Michael, the great prince who protects your people, will arise. There will be a time of distress such as has not happened from the beginning of nations until then. But at that time your people--everyone whose name is found written in the book--will be delivered.
2. Multitudes who sleep in the dust of the earth will awake: some to everlasting life, others to shame and everlasting contempt.
3. Those who are wise will shine like the brightness of the heavens, and those who lead many to righteousness, like the stars for ever and ever.
4. But you, Daniel, close up and seal the words of the scroll until the time of the end. Many will go here and there to increase knowledge."
5. Then I, Daniel, looked, and there before me stood two others, one on this bank of the river and one on the opposite bank.
6. One of them said to the man clothed in linen, who was above the waters of the river, "How long will it be before these astonishing things are fulfilled?"
7. The man clothed in linen, who was above the waters of the river, lifted his right hand and his left hand toward heaven, and I heard him swear by him who lives forever, saying, "It will be for a time, times and half a time. When the power of the holy people has been finally broken, all these things will be completed."
8. I heard, but I did not understand. So I asked, "My lord, what will the outcome of all this be?"
9. He replied, "Go your way, Daniel, because the words are closed up and sealed until the time of the end.
10. Many will be purified, made spotless and refined, but the wicked will continue to be wicked. None of the wicked will understand, but those who are wise will understand.
11. "From the time that the daily sacrifice is abolished and the abomination that causes desolation is set up, there will be 1,290 days.
12. Blessed is the one who waits for and reaches the end of the 1,335 days.
13. "As for you, go your way till the end. You will rest, and then at the end of the days you will rise to receive your allotted inheritance."

약속된 미가엘의 현현 (다니엘 12:1-4)

Ⅰ.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교회의 보호자와 후원자로 나타나실 것이다. "그때에 즉 환난이 해가 정점에 달했을 그 때에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다" (1절). 천사는 다니엘에게 미가엘이 얼마나 교회에 대해서 견실한 친구인지 말한 적이 잇다(10:21). 그는 상계에서 줄 곧 이런 우정을 보여 주었다. 천사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가엘이 그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무력함을 보게 될 때(신 32:36)유대인들을 구출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대군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이시기 때문이다(계 1:5). 그리고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 일어나신다면 누가 교회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바로 그 때에 미가엘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수행하기 위해서 일어설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도 성육신을 하실 것이며, 악마의 역사를 파괴하기 위해서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을 위해 죄와 저주가 되시고 우리 대신에 희생물이 되셔서 저주를 대신 떠 맡으셨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 백성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일어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휘장안에서 그들을 위해 일어나사 살게 하는 중보를 통해 그들을 대표하며, 그들의 친구로서,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일어나신다. 그리고 적 그리스도의 멸망 후(안티오커스가 그 한 대표적 인물인데)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이 땅 위에 일어나실 것이며, 그의 모든 백성의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Ⅱ.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그는 자기 백성들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재난으로 보답하실 것이다. 그 때에 모든 사람을 위협하는 재난의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든 앙심 깊은 적들에 대해서는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런 재난은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도 적용될 수 있다.

1. 이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적용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마도 이 예언을 의식하시고서) 이것을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가장 큰 환난" 이라고 말씀하신다(마 24:21). 천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이미 많이 말했었다(9:26, 27).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복음의 왕국을 세우시고 우리의 대군 미가엘이 일어난 것은 동시 발생적인 것이었다.

2. 마지막 날의 심판에 적용될 수 있다. 그 날은 "가마솥처럼" 불탈 것이며 교만한 자와 사악하게 행한 자들을 소멸시킬 것이다. 그 날은 우리의 대군 미카엘이 대적하여 일어섰던 모든 사람들에게 전무후무한 재난의 날이 될 것이다.
Ⅲ. 그는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 "그 때에 네 민족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안티오커스에 의해서 계획된 재난과 고통으로부터 구원밥을 것이다. 생존한 자 중 이름으로 기록되어 보존되기로 정해진 모든 자들은 구원받을 것이다." (사 4:3).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그는 그의 영적 이스라엘을 죄와 사망으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또한 그는 재림시에 그들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며,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사람들의 구원뿐만 아니라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많은 사람의 구원도" 완성하실 것이다(계 20:15) . 그들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책에 기록된 사람들이었으며 그 책이 펼쳐질 세상 마지막에 거기서 그들의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Ⅳ.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의 구별되는 부활이 있을 것이다(2절).

1.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박해 가운데서 구출하실 때, 그것은 일종의 부활이 될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도 환상 가운데서 그와 같이 표현되었고(겔 37). 안티오커스로부터의 유대인들의 구출도 또 교회의 외형적인 변영으로의 회복도 그렇게 표현되었다. 그것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 과 같다(롬 11:15). 오랫동안 불행과 오둠의 티끌 가운데서 잠자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 때에 깨어날 것이며, 영원히 지속될 위로와 영광, 그 그리고 생명에로 인도될 것이다. 그러나 번영하게 될 때, 불경스럽게 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수치와 멸시의 부활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들의 번영은 그들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파멸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2. 우리의 대군 미가엘의 출현으로 그의 복음이 선포될 때, 티끌 가운데서 잠자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깨어나서 신앙 고백을 하게 되며 이교 주의나 유대교로부터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들 사이에는 항상 위선자들이 혼합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생명에로 일으킴을 받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생명으로 쫓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될 것이지만(고후 2:16), 다른 사람들 은 수욕과 부끄러움으로 부활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망으로 쫓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될 것이고 그리스도 자신이 그들의 멸망을 위해서 일어나실 것이다. 복음의 그물은 선한 자나 악한 자, 모두를 포함한다.

3.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 날에 있을 일반적인 부활을 의미함에 틀림없다. "티끌 가운데서 잠자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 것이다. 즉 그 말은 모든 사람, 혹은 대단히 많은 수의 사람임을 나타낸다. 혹은 티끌 가운데서 자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생명으로 부활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또 부끄러움으로 부활할 것임을 나타낸다. 유대인 자신들은 이것을 시간의 마지막에 있을 죽은 자들의 부활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파멸의 부활과 생명의 부활을 말씀하실 때(요 5:29). 이것을 가리키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사도 바율은 유대인에게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기대하도록 말했다(행 24:15). 그리고 여기에서보다 더 적절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안티오커스의 박해 아래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를 비열하게 버렸고, 다른 사람들은 용감하게 그들의 종교를 지켰기 때문이다. 이제 폭풍 일과후 한 편을 보상할 수도 없고 다른 편을 심판할 수도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고통이었다. 그러므로 부활의 때에 그들의 행실에 따라서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은 그들에게 만족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안티오커스의 박해로 순교를 당한 경건한 유대인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사도는 그들이 비록 악형을 받되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구차히 면하지 아니했다고 말한다(히 11:35).
Ⅴ. 재난과 비탄의 날에, 지혜있어 많은 사람들을 가르친 자에게는 영광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것은 박해에 대한 예언에서(11:33) 특별히 논평된 것이었다. 그들은 탁월한 봉사를 하겠지만 칼과 불꽃에 의해서 쇠패하리라는 것이다. 만일 이 세상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없다면 그들은 모든 자 중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이 의인의 부활에서 보상받게 될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3절). "지혜있는 자는(혹자는 선생이라고 읽는다. 왜냐하면 선생들은 지혜를 필요로 하고,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며, 저 세상의 영광, 즉 하늘의 영광으로 빛날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지혜로, 행한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들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점에 지목하자.

1. 미래의 나라에 있는 모든 성도들, 그리고 지혜있는 모든 자 그들의 영혼과 영원성에 대해 지혜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영광이 예비되어 있다.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을 빛나게 만든다(전 8:1). 하물며 지혜의 힘이 완성되고 지혜의 봉사가 보상되는 곳에서이랴!

2. 이 세상에서 많은 선을 행하는 사람, 특별히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선을 많이 행하는 사람은 저 다른 세상에서 그들의 영광과 보상이 더욱 클 것이다. 사람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 잘 못된 길에서 죄인들을 돌이키는 사람들,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도록 돕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늘에 이르도록 도운 사람들의 영광을 함께 나누어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영광은 그들 자신의 영광에 첨가된 커다란 영광이 될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그의 자비를 얻어 신실하게 되고 성공을 거두며 이 세상에서 밝게 빛날 것이며 별과 같이 빛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은혜와 영광의 빛의 원천이며 태양이시다. 지도자들은 마치 별과 같이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하는 빛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빛과 비교해서는 작은 빛으로 빛난다. 그러나 질그릇 같은 그들에게 그것은 그들이 공로를 무한히 초월하는 영광이 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광도를 가진 별처럼, 어떤 자들은 약간 작은 광도로, 그리고 또 다른 자들은 훨씬 큰 광채를 가지고 빛날 것이다. 그러나 별들이 가을 낙엽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날이 오고 있지만 이 별들은 영원히 빛날 것이며 결코 지지 않을 것이고 또 어두워지지도 않을 것이다.
Ⅵ. 지금은 봉함되어 있지만 이 예언은 그 때까지 살아 있을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4절). 다니엘은 이 말을 간수하고 그 책을 봉해야 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야 이런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 민족은 바벨론에서 귀환한 초기에는 약소 민족이었는데 그 때에는 작업에서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강한 힘을 갖게 되기까지는 오래도록 자기 종교 때문에 박해를 받지 않았고 그것은 다소 위로가 되었다. 다니엘은 그 책을 봉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책은 이해되지도 않을 것이며 그러므로 그 책에 기록된 일들이 성취되기까지는 존중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책을 큰 가치가 있는 보물처럼 안전하게 지켜야만 했고 장차 올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 간수해야만 했다. 그들 미래의 세대에게 올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 간수해야만 했다. 그들 미래의 세대에게 그 책은 큰 봉사를 할 것이다. 또한 그때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할 것이며 지식이 증가할 것이다. 그 때에는 이 감추인 보물이 열려질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찾을 것이며 마치 은을 찾듯 그 책의 지식을 팔 것이다. 그들은 그 책의 사본을 찾아내기 위해서 빨리 왕래할 것이며, 그 책들을 대조해 볼 것이며, 그것이 진실하며 권위있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책을 몇 번이고 읽을 서이며, 그것을 묵상할 것이며,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궁구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논술할 것이고, 서로 의논할 것이며, 만일 그들이 어떤 수단으로든 그 의미를 체질해서 걸려낸다면 그것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식들이 증가할 것이다. 이 경우에 대한 예언을 논구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성서를 찾게 될 것인데, 그 성서는 그들이 유익한 지식을 증진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를 알기 위해 추구한다면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호 6:3). 지식을 증가시키려고 하는 자는 수고해야만 하며 나태와 헛 바램 가운데 가만히 앉아 있어서도 안 되고 빨리 움직여야 하며 지식의 모든 수단을 이용해야 하며 그들의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의심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일에 익숙하기 위한 기회도 늘려야만 한다. 또한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더 깊이 그리고 더 훌륭하게 알기 위해서 모든 기 기회를 증가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희망하는 이유를 더 살펴보자.

1. 지금은 어둡고 모호한 하나님의 일들이 장차 분명해질 것이며 이해하기 쉽게 될 것이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다" 성서의 예언의 성취에 의해서 해석될 것이다. 그러기에 그 예언들은 미리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이는 그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가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예언들은 그것이 성취되기 전에 우리에게 말씀되어진 것이다.

2. 무용지물로 경멸받고 버림받는 하나님의 일들은 명성을 얻게 될 것이며, 커다란 도움으로써 발견될 것이며, 또 요청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는 아무리 잠간 동안 반짝일지라도 찬미를 받게 될 것이며 영광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 큰 날의 심판 때에, 즉 그 책이 열리게 될 때, 더욱 그럴 것이다.
 
때를 알려는 다니엘 (다니엘 12:5-13)

다니엘은 이스라엘 나라가 관련된 범위 내에서 국가와 왕국의 놀라운 혁명들을 미리 보게 되었다. 그 혁명들 속에서 다니엘은 교회에 재난의 때가 임하는 것을 보았고, 괴로운 시련의 때를 보았으며 그는 그런 전망으로 근심과 경악에 사로잡혔다. 이제 이런 위기에 대해서 두 개의 질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즉 언제 종말이 있을 것인가? 또 그 종말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 두 개가 질문이 여기에서 제기되고 또 답변된다. 어떤 사람은 요 앞구절들에서 서술된 위로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더 많은 위로를 위해서 첨가된 것이다.

Ⅰ.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라는 질문이 천사에 의해서 제시된다(5,6절).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질문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자. 다니엘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 즉 "세마포를 입은 사람의" (10:5) 환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담화는 가브리엘 천사와 한 것이었다. 이제 다니엘은 다른 두 사람을 바라본다(5절). 두 천사는 그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천사였는데, 한 사람은 "강 이편 언덕에 서 있었고 또 한 사람은 강 저편 언덕에 서 있었다." 즉 그들 사이에 강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속삭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 속삭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울라이(ulai)의 언덕 사이의 강물 위에 서 계셨다(6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수행원인 천사들이 양편언덕에 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명령이 있으면 이쪽 천사는 이쪽으로, 저쪽 천사는 저쪽으로 즉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천사들이 나타난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위해서이다.

(1) 환상을 돋보이게 하고 보다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서 또한 인자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 나타났다(히 1:6). 천사들이 거기에 있었지만 그 이전에는 다니엘이 그들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 시작하자 그는 그들을 바라다보았다. 하나님의 일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일과 더 많이 사귈수록 우리는 그 일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을 주목하자. 그리고 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일 그것을 활용한다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 천사들은 다니엘이 본 것을 확증하기 위해 나타났다. 이는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을 증참케 하기 위해서였다(마 18:16). 아브라함에게는 세 명의 천사들이 나타났었다.

(3) 천사들은 그들 자신이 듣고 묻고 통지하기 위하여 나타났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비사는 "천사들도 알고 싶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며(벧전 1:12). 그 하나님 나라의 신비는 교회에 알려 졌기 때문이다.(엡 3:10) 이제 두 천사 가운데 한 천사가 끝이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고 말했다. 아마 두 천사 모두가 물었을 것이다. 한 천사가 먼저 묻고 다른 천사는 그 후에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단 한 천사의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2. 이 질문은 누구에게 말해졌는지 살펴보자. 이 질문은 세마포를 입은 사람에게(그에 대해서는 10장 5절에서 이미 읽은 적이 있다), 즉 강물 위에 있던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향한 물음이었다. 그 동안 가브리엘 천사는 줄곧 그리스도의 대변자, 혹은 해설자로 있었다. 이 강은 힛데겔 강이었다(10:4). 그 강은 예언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티그리스 강이었다. 힛데겔 강은 에덴 동산을 적시는 강 중 하나로서 언급되었다(창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강 위에서 계셔 마땅한 것은 하나님의 낙원 안에 있는 나무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급수를 받기 때문이다. 물은 백성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물 위에 서 계시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백성들을 지배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분은 홍수 위에 좌정하신다(시 29:10). 그분은 바다의 물결을 밟으신다(욥 9:8).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같이 강물 위에 선 자가 자기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육신으로 계셨을 때, 물 위를 걸으셨다(마 14:25). 그리스도는 강물위에 계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강물 위 공중에서 나타나셨다고 말하기도 한다.

3.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자. 그 질문은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묻지 않았으리라. 왜냐하면 다니엘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엿보지도 않았고,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신때와 기한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사 1:7). 그러나 천사는 다니엘이 대답의 만족을 얻도록 하기 위해 그가 듣는 데서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우리 주님 예수는 때때로 그의 제자들이 묻기를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질문에 답변하신다(요 16:19). 천사는 관심을 가진 자답게 "이것은 얼마나 오랠 것입니까? 하나님의 계획안에 놓여진 이 기적의 종말의 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날 이 고난과 시련의 마지막이 언제입니까?" 라고 물었다.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하자.

(1) 교회의 재난은 천사들의 기사이다.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이처럼 고난 당하도록 허용하신다는데 깜짝 놀라며 하나님이 그 재난에 의해서 자기 교회에 무슨 선한 일을 하실지 알고 싶어한다.

(2) 선한 천사들은 장래사에 대해 하나님이 알려 주고자 하시는 것 이상은 알지 못한다. 하물며 악한 천사들이랴!

(3) 하늘에 있는 거룩한 천사들은 지상에 있는 교회에 관심을 가지며 교회의 재난을 명심하고 있다. 하물며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우리야 말해 무엇하랴! 우리는 그들 천사보다 교회의 재난에 더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우리는 교회의 평화에 우리 평화의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4. 참으로 숨겨진 기밀의 계산자시며 장차 있을 일을 알고 계신 분에 의해 어떤 답변이 나오는지 살펴보자.

(1) 이 재난의 연속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계산이 질문한 천사에게 주어진다(7절). 즉 재난의 때는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기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답변이 그것이다. 그것이 일년, 이 년 그리고 반 년을 암시한다(7:25). 그러나 이것은 예언상의 시간 구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기간을 무한한 기간으로 이해한다. 그 것은 한 때(상당한 기간), 두 때(보다 긴 시간 측 당초 예상하던 기간의 두 배) 그리고 반 때(지나고 나면 두려워하던 것의 반도 되지 않을)를 지나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예언상 시간을 볼확정적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정해진 때로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계시록에서도 이런 것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는 때때로 삼일 반의 삼년 반을 나타내기도 하며 때로는 42달, 때로는 1260일로 말할 경우도 있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시간의 결정은 맹세로 확증된다. "세마포를 입은 사람이 양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그렇게 되리라고 맹세하였다." 이와 같이 사도 요한이 보았던 힘센 자는 분명히 이 환상을 가리킨다(계 10:5, 6). 그는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그 왼발은 땅을 밟고 서서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이 일이 지체하지 않으리라" 고 맹세하였다. 그런데 다니엘이 보았던 이 강한 분은 물 위에 두 발로 서 있었고 두 손을 들어 맹세하였다. 맹세는 확신을 주는 데 매우 유익하다는 점을 주목하자. 하나님만이 맹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분만이 우리가 호소해야 할 진정한 재판관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을 드는 것음 엄숙한 서약에 매우 적절한 일이며, 의미있는 표징으로 사용되곤 하는 것이다.

[2] 때의 결정은 한 이유를 들어 설명된다. 하나님은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 그가 이기도록 내버려두실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악화된 순간까지 성도들을 고통받게 하실 것이며, 최대의 거리까지 달리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이 모든 일이 끝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는 때는 그 백성들의 사정이 마지막 곤경에 처했을 때임을 주목하라. 여호와의 산에서 이삭이 희생되기 위해 제단에 누웠을 바로 그때 이삭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이제 사건은 예언과 일치했다. 요세푸스(Josephus)는 유대 전쟁사에서 에피파네스란 별명을 가진 안티오커스가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기습 점령하여 3년 6개월 동안 지배하다가 그 후 하스모니안가 혹은 마카비(Macabees)가에 의해서 예루살렘에서 쫓겨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3년 반동안 계속되었다. 그동안 그리스도는 그를 대적하는 죄인들의 반대를 참았고 가난과 치욕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의 권세가 그의 죽음과 함께 산산히 깨어졌을 때, 그리고 그의 적들이 승리하였을 바로 그때에 그리스도는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었고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2) 이 재난의 계속 시기에 대해 보다 상세한 어떤 것이 첨가된다(11,12절).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안티오커스에 의해서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해지고" 멸망케 할 미운 물건 즉 쥬피터의 신상이 제단 위에 세워지는 사건으로부터 재난의 때가 결정될 것이다. 그들은 공적 규례의 혜택을 빼앗기게 되었을 때, 그들의 재난이 시작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슬픔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가장 마음에 두었던 것이었다.

[2] 그들의 환란의 계속, 그 재난은 1290일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3년 7개월, 혹은 3년 6개월 15일이다. 그 뒤에 매일의 제사가 회복되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제거되었을 것이다. 그 기념으로 봉헌의 축제가 우리 구세주의 때까지 준수될 것이다(요 10:22). 비록 날자까지 정확히 맞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재난의 시작이 셀류커스 왕조(Seleucidae)의 145년째에 있었고, 그 재난의 끝이 148년되는 해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제사의 회복과 우상의 제거가 아주 많은 날이 지난 후였는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이전의 사건들이 두드러졌는지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성서의 예언 가운데서 많은 특정한 때가 나오는데 성속을 불문하고 역사상 사건이 그것과 일치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예언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그대로 응했을 것이다(사 16:14 의 경우처럼).

[3] 그들의 구원의 완성, 혹은 구원을 향한 최소한의 전진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이전의 때보다 45일이 더 경과된다. 어떤 사람들은 안티오커스의 죽음을 지적하면서, 그가 성전을 더럽힌 후 1335일이 지난 때라고 생각한다. "기다려서 1335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다." 안티오커스는 희랍 제국의 149년 되는 해에 죽었다고 말해진다(마카비상 6:16). 그리고 그때에 마카비가 하나님의 지휘로 성전과 도성을 회복하였다고 말해진다(마카비하서 9:28; 1:1). 많은 선한 해석자들은 이것을 예언적 날들(즉 아주 많은해로)로 이해하며, 그것을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괴로부터 계산한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그들에게 임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그 때를 적 그리스도에 의한 복음숭배의 타락으로부터 추정한다. 적 그리스도의 통치는 계시록에서 1260일로 한정된다. 그때의 마지막에 그는 멸망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30년 후, 즉 1290일의 마지막 날에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40년을 더 사는 사람은 누구나, 그래서 1335일까지 사는 사람은 진실로 영광스러운 날을 볼 것이다. 그것이 그토록 멀리까지 가리키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교회의 재난을 종결시킬 때가 결정되어 있다. 그리고 교회의 구원의 때도 있다. 그리고 이 때는 정확하게 하루도 틀리지 않고 준수될 것이다.

둘째, 이 때는 신앙과 인내로 기다려야만 한다.

셋째, 그 때가 올 때, 그 날은 우리의 오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풍부한 보상이 될 것이다. 오래 기다려 마지막까지 온 사람들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 때 그들은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기다렸다" 라고 말할 이유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Ⅱ. "이 모든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읍니까?" 라는 질문이 다니엘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진다. 다음과 같은 점을 더 연구해 보자.

1. 왜 다니엘은 그렇게 물었는가? 그것은 다니엘이 천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긴 했으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8절). 다니엘은 대단히 지혜있는 사람이었고, 환상과 예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니엘은 때의 의미를, 자기가 원한만큼 확실히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도 때때로 신적 일에 대한 물음에서 당혹은 느끼며 이해하지 못할 일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는 데 주목하자. 그러나 그들이 더 훌륭한 것을 그들이 그들 자신의 약함과 무지를 알고 기꺼이 인정한다는 점이다. 또 그것을 알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2. 그 질문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자. "오,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다니엘은 그의 질문을 천사들에게 말하지 않고 바로 그리스도께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 달리 누구에게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가야 하겠는가?" 이 사건들의 회후이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어떤 경향을 나타낼 것입니까? 그들은 결국 어떻게 될 것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사와 세상에 있는 하나님 교회의 일들을 관찰할 때, 우리는 이 일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보기로는 사태가 하나님 나라의 파멸로 줄달음치는 것 같다. 우리가 악덕과 불경건의 성행을, 그리고 종교의 부패, 의인들의 고난, 그리고 불신자들의 승리를 보게 될 때 우리는 이렇게 "내 주여! 이 모든 일들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하고 묻기 쉽다. 그러나 결국 최후에 가서는 만사가 잘 될 것이란 것은 우리를 만족시켜 준다. 진리는 위대하며, 결국은 승리할 것이며 영원히 존귀한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 끝, 그런 결국이 올 것이다.

3. 이 질문에 무슨 답변이 주어졌는지 살펴보자. 때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11,12절). 여기에는 다니엘에게 대한 몇몇 지시가 나온다. 그 지시에 의해서 다니엘은 앞으로의 봉사로부터 물러가게 된다.

(1) 다니엘은 그에게 알려진 것들로 만족해야만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물어서는 안 된다. "다니엘아! 너는 이제 가거라. 미래의 일을 예견하도록 허락된 것에 만족하고 여기에서 그치라! 다시 왕의 사업에 대한 너의 길로 가거라(8:27). 너의 길로 가거라. 그리고 네가 보고들은 것을 후세의 구원을 위해서 기록하라.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으려고 갈망하지 말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 세상에서는 우리들의 계속적인 잔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우리는 때때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거하기 위해서 선택되고, 그래서 "여기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산에서부터 땅으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거기에 영원한 도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많은 것을 아는 사람들도 사실은 "부분밖에"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여전히 캄캄하게 모르는 일이 많으며 휘장이 찢겨지기까지는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지식이 갈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 더 가지는 못할 것이다. "다니엘아 너는 여기서 만족하고 가라."

(2) 다니엘은 자기가 들었던 말씀을 그 성취 시기까지 완전히 이해하려고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이 일들의 끝까지 간수하고 봉함되며 혼란 속에 들어 있다. 아니, 만물의 마지막 때까지 봉해져 있다." 다니엘은 이 책을 마지막 때까지 봉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4절).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오면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라고들 말했다. "그 말씀들은 덮어져서 봉인되었다. 즉 그 말씀으로 발견하도록 의도된 것은 이제 완전히 고정되고 끝이 났다. 아무 것도 거기에 참가되지 않을 것이며 아무 것도 거기에서부터 취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간수되고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후의 일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말라!" Neescire velle qua magister maximus docre non vult erudita inscitia est-즉 위대한 선생이 알리려고 하지 않는 일들을 기꺼이 알려고 하지 않는 자는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이다.

(3) 다니엘은 이 세상이 계속되는 한, 우리가 지금 보는 것처럼 선한 것과 악한 것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했다(10절). 우리는 하나님의 밭에서 가라지는 전혀 못 보고 온통 밀만보며 그의 타작 마당에서 알곡만 보고 겨는 찾아보지 못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추수의 때가 올 때까지, 키질하는 날이 이르기까지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두 가지 모두가 추수할 때까지 같이 자라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러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할 것이나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사도 요한의 계시록은 다른 일에서처럼 여기서도 다니엘과 같이 끝맺고 있다.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 22:11).

[1] 사악한 백성들은 사악하게 행할 수 밖에 딴 방도가 없다. 그리고 그런 백성은 이 세상에 언제나 있는 것이고 또 이 세상의 끝날까지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옛 속담이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고 한다" (삼상 24:13). 현대인들의 관찰도 마찬가지이다. 나쁜 사람은 나쁜 일을 행할 것이다. "썩은 나무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이다." 엉겅퀴에서 포도를 딸 수 잇으며 마음속의 악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꺼낼 수 있겠는가? 아니, 악한 행동은 악한 원리와 악한 성격의 자연적인 산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전 5:8). 우리는 앞에서 "악한 자는 악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악 한자는 아무도 무엇이 악한 일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다음 둘 중 하나이다.
첫째. "이것은 그들이 죄의 일부이다. 그들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빛에 대해서 그들의 눈을 감는 자들이다.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맹인은 없다. 그들은 깨달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사악해지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로 알았었더라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였으리라(시편 82:5). 고의적인 죄는 고의적인 무지의 결과이다. "그들은 악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빛을 미워하며 빛 가운데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행동이 악하기 때문이다." (요 3:19).

둘째, 그것은 그들의 징벌이 일부이다. 그들은 사악하게 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마음의 맹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할 것이라" (마 13:14, 15)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시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악하게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신 29:4).



[2] 그러나 세상이 악하더라도 하나님은 이 세상 안에 남아 있는 선한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다. 세상에는 선한 자들이 다소 남아 있을 것이다. 아니,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섭리와 규례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요, 다른 자들에게는 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고후 2:16).
첫째,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에게 선을 베푸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환란에 의해 (11:35 과 비교)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고 연단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환란이 악인의 부패를 뒤흔들어 악인을 더욱 악하게 만들 것이다. 선한 백성의 환란은 연단을 위해 계획된 것임을 주목하자. 그러나 그들은 이 연단에 의해서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될 것이다. 그들의 부패한 것이 숙청될 것이고 그들의 은혜는 빛날 것이며 이 두 가지가 훨씬 활발해지고 두드러지게 될 것이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다(벧전 1:7). 거룩하고 선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사건이 거룩하게 되며 선을 위해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들이 좋아지도록 돕게 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선을 행할 것이다. 악한 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걸려 넘어질 때, 지혜있는 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 행위가 지혜로운 사람들은 교훈도 지혜롭게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사랑의 영향을 받고 지배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빛에 의해서 조명받게 될 것이다. 만일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이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요 7:17). 지혜로운 사람에게 교훈을 주라. 그리하면 그가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4) 다니엘은 죽음과 심판에서 영원에 이르는 그 자신의 행복을 전망하는 것으로 위로 받아야만 했다(13절). 다니엘은 이제 대단히 늙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늘과의 친숙한 지식에 참여해왔고 또 지상의 많은 공적 사무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현재 상태에 대해 고별을 생각해야만 한다. "마지막 때까지 갈지어다."

[1] 이 세상에서 떠나는 것을 많이 생각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우리는 지금도 가고 있으며 얼마 안 있어 곧 사라져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의 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기쁨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 세상으로 부르시기 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까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네 길을 가라!고 말씀하시기까지 우리는 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너는 네 증언을 끝마쳤고, 고용인으로서 네 날을 성취하였으므로 이제는 너의 길을 가거라. 그리고 네 자리를 다른 사람이 취하도록 비켜 주어라" 라고 말씀하시기까지는 우리의 길을 갈 수 없다.

[2] 선한 사람이 이 세상으로부터 자기 길을 갈 때, 그는 안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너는 현재의 모든 노고와 격동으로부터 평안히 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임할 재앙들을 보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죽음의 순간에 "내 영혼아! 네 평안으로 편히 들어가라" 라고 말하는 것보다 적절한 것은 없으리라.

[3] 시간과 날들은 종결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시간과 날들은 매우 짧게 끝날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과 날들도 결국 종말을 갖게 될 것이다. 잠시 후면 시간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간의 회전도 계산될 것이며 완성될 것이다.

[4] 무덤 속에서의 휴식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평화스러운 안식은 기쁜 부활로 행복한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욥은 죽은 자에 대하여 말했을 때, 이것을 예견했었다.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욥 14:12).

[5] 우리 각자는 끝날에는 자신의 업을 누려야 한다. 우리는 저 큰 날의 심판에는 우리의 인간됨에 따라, 우리의 행위대로 우리의 몫을 받아야 한다. 몸으로 한 일에 따라 우리는 "오라, 복된자여" 또는 "가라, 저주받은 자여" 하는 두 가지 중 한 분깃을 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에 그 업이 어떻든 지간에 끝날에 복된 업을 누리며 택함받은 자 가운데서 분깃을 누린다는 것은 다니엘에게 위로가 되었고 모든 성도들에게도 위로가 될 것이다. 끝날에 복된 업을 확보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현재의 분깃에 만족하고 하나님의 뜻을 환영할 수 있을 것이다.

[6] 끝날에 천상의 가나안에서 누릴 복된 업을 믿음으로 전망하고 소망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갈 때 효과적 도움이 될 것이며 죽음의 순간에도 우리에게 생명의 위로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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