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Sub [에스라 1장] 우리말성경 [Ezra 1]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페르시아 왕 고레스...

1:1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았지만 - 본절 초두(初頭)에는 `그리고'라는  뜻의 `우'(*  )가 있다.  이는 본서가 역대기를 쓴 동일 저자에 의하여 기록 되었음을 암시 해준다(W. Rudolph). 바사왕 고레스 - `바사'는 B.C. 3000년 경까지는 셈족 계통의 엘람 사람들이  국민 의 주종을 이뤘던 나라이다.  하지만 B.C. 2000년경 이후로는, 남부 러시아의 스탭 지 역과 인더스강 서쪽에서 이동해 온 아리안족에 의하여 지배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이 나라의 명칭은 이란이며 이 같은 국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레자 샤 팔레비'(1 925-1941)에 의해서였다.  `고레스'는 동부 엘람의 소국(小國)인 안산(Anshan)의 왕이 었던 캄비세스 1세(B.C. 600-539)의 아들로서 부친이 죽자 그 나라를 이어 받았다. 그 는 왕에 오른 즉시 바사의 제국(諸國)들을 통합하였고, 얼마 후인 B.C. 539년에는  대 국 바벨론까지 정복하였다(본장주제 강해, `고레스에 대하여' 참조). 원년에 - 이것은 분명히 B.C. 538년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가 바벨론을  정복한 것은 B.C. 539년이지만 바벨론의 즉위 년도 계산 방식은 즉위 후 처음 맞이하는  니산 월(1월)이 속한 년도를 원년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바사의 왕이된 것은 훨 씬 이전인 B.C. 559년임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저자는 여기서 그가 바벨론을  정복한 때로부터의 즉위 첫 해를 계산하고 있다. 본서의 저자가 이같이 한  까닭은,  그해가 명실공히 당대의 최강국이었던 바벨론을 멸망시킨 때였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 - 이것은 (1) 유대인들이 바벨론  땅에서 70년 동안 포수(捕手) 생활을 하게되며(렘 25:11),  (2) 그런 다음 반드시 팔레스틴 본토로 귀환하게 될 것이라는(렘 29:10) 예언을 가리킨다(대하 36:22).  물론 이 예언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온갖 시련과 고초를 안겨줬던 바벨론이 심판을 받아 멸망될 것이라는 사실도 포함되었다(렘 25:12)). 그 당시 예레미야가 이러한 예언을 한 것은 , 바벨론의 무자비한 압박으로 인하여 고통 당하던 유대인들을 위로하며, 그래서 하나 님을 의지함으로써 결코 낙망치 말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응하게 하시려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라'(*      )는 원래 `마치다'(대하 29:34), `진멸하다'(시 37:20; 겔 13:14)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된 내용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을 뜻한다.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이심을 잘 보여주는 문구이다(대상 5:26; 대하 21:16; 36:22; 렘 51:11; 학 1:14).   결국 이는 여호와께서 고레스가 정책 입안 과정에서 관용적 태도를  취하 도록 성령의 감동을 통해 개입하셨음을 가리킨다(Fensham).  그때 고레스는 이미 예레 미야의 예언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Leon Wood).  우리가 이같은 추측을 할 수 있 는 근거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단 9:1-11) 다니엘이 고레스의 막 료로 일했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단 6:28).  그때 다니엘은 고레스가 이스라엘  민족 에 대하여 유화 정책을 취하도록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이 고레스에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 때 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편, 이사야 선지자가 고레스를 하나님의 `목자'라고 한 것 은, 그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선한도구로 사용될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사 41:25; 43:14; 44:28; 45:1, 13).  한편, `마음'(*      , 루아호)은 원래 `바람', `영', `숨', `호흡' 등의 의미로서,  사람과 관련해서는 인간의 가장  내면적  요소인 `영혼' 혹은 `심령'을 가리킨다(사 30:1, 2).  그리고 `감동시키시매'(*         , 헤 이르)는 `깨다', `분발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우르'(*       )의 사역형이다.  따라 서 이 단어는 당신의 뜻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이방인까지도 강권적으로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잘 보여준다. 저가...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 여기의 `공포도 하고'는 문자적으로 `소리를 내 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말로써 왕의 명령을 하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조 서도 내려'는 왕의 구두 명령이 진짜임을 확증해 줄 수 있는 명령문을 가리킨다.   그 러나 우리는 공포와 조서가 별도의 절차로서 백성들에게 하달되었다고 봐서는 안된다. 한 사자(使者)에 의해서 왕의 명령이 구두로 전달되고 아울러 그것을 문서화 시킨  명 령문도 근거로서 제시되었을 것이다(Willianson, 왕하 19:9-14; 대하 17:9). =====1:2 하늘의 신 여호와 - 이 같은 호칭은 고레스가 여호와께 대한 확고한 신앙을 소유했 었음을 시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늘의 신'이란 표현은 이원론적 종교관을  갖 고 있던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매우 통상적이며 익숙한 호칭이기 때문이다.  추 측컨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하늘의 신'은 흑암을 다스리는신 아리만(Ahr- iman)과 대조되는 광명의 신 오르무즈드(Ormuzd)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고레스는 오 르무즈드 대신 여호와라고 함으로써, 피정복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유하려고 했다.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 분명치는 않으나 다니엘의 영향을 받았을  듯한(1절) 고레스는 자신에게 엄청난 승리가 주어진 것을 이사야 45:1 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 한 여호와의 섭리로 이해했을 것이다(Rawlinson). 이 같은 고레스의 생각은, 그 당시 의 페르시아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신관(神觀)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하늘의 신' 오르무즈드는 세상의 왕들에게 권세를 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 라서 그 당시 고레스는 여호와에 대한 참 지식을 소유하지는 못했으며 다만 자신의 민 족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신관에 따라 여호와를 이해했을 뿐이다. 나를 명하사 -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으나, 히브리 왼문에는 본 구절 앞에  대 명사 `그가'에 해당되는 `후'(*      )가 있다는 점에서 이 구절은 매우 강조적인  표 현이다(요 10:1) 한편 `명하사'(*      , 파카드)는 `위임하다' 혹은 `임명하다'의 의 미로 이해된다(창 39:4; 41:34; 레 6:4; 렘 40:11).  따라서 본 구절은 고레스가 스스 로를 여호와의 대리자로 임명받은 자라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가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다니엘의 영향이 일조(日照)를 했다고 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는 하나님이 그를 강권적으로 감동시키신 결과였다(1절 주석 참조). 유다 예루살렘 - `유다'는 고레스 당시에 페르시아의 여러 `도'(Province) 중의 하 나로서 회복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의 `유다'는 옛적에 일개 국가로 존립했던 지역 으로서의 유다로 이해함이 무난하다(Williamson). 그렇다고  본다면  고레스가  굳이 `유다' 라는 호칭을 여기서 사용한 것은 그 지역이 대적에게 멸망되었던 슬픈  역사를 상기시키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 짐작된다.  `예루샅렘'도 그 당시에는 여전혀  폐허 로 남아 있었다.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고레스에게 있어서 다른 민족들의 성전이나 제단등을 복 구시켜 주는 일은 주된 통치 정책 중의 하나였다(Kidner). 그의 다신론 사상은  근래 에 발견된 한 비문을 통해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그는 바벨론의 주신(主神)이  그 백성들에 의하여 섬겨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 라, 그는 말둑(Marduk) 이외의 다른 신들, 즉 `벨'과 `느보'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으 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 신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부탁했다고 한다(Kidner) 그러나 우리는 고레스가 여호와의 전을 재건할 필요성을 가졌던 사실을 다만 그의  일 관된 통치 정책의 결과로서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즉,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도적 인 섭리가 개재되어 있었고 고레스는 적어도 이사야 44:28의 예언이 자신에 대한 것으 로 알고 그것에 대해 순종했을 수 있다(Schultz). =====1:3 이스라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 문자적으로는 `그분은 예루살렘에 계신 그  하나 님이다'로 번역된다.  그러나 개역 성경과 마찬가지 입장에서, 고레스가 여호와를  다 른 지방신(local god)들과 구분되는 `참신'으로 인식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흠정역은 `he is the God'라 옮겼다.  고레스가 진정 여호와를 유일하고 참된 신으로 깨닫고 섬 겼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길이 없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 님의 섭리가 당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리라는 점이다.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 - `너희'는 고레스의 영토 안에 살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며 `그 백성 된 자' 는 반드시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끌려온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 만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B.C. 722년에 앗수르로 끌려간 북국의 열 지파 사람들도 포함되었음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북쪽 지파 사람들 이 끌려갔던 옛 앗수르의 고토(故土)도 역시 고레스의 정복지(征服地)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귀환시에 타국인인 노비들도 함께 팔레스틴에 왔음을 감안한다면,  북국의  열 지파 사람들의 일부도 귀환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Rawlinson).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 `올라가서'(*    ,야알)는 `알라'(*      )의 재 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스스로의 유익을 위하여 올라가다'의 의미를  갖는 다.  한편 고레스가 여기서 `알라'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바벨론보다 예루살렘이 상 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은 해발 약 830m 높이에 위치해  있 다.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 여호와의 전이 성공적으로 건축되기를 바 라는 고레스의 염원이 반영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염원 뿐 아니라 성전 건축에 필요 한 지원까지도 아끼지 않겠다는 격려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1:4 무릇 그 남아있는 백성 -  이에 대해서는 (1)  본 구절을 본절 전체의 주어로 보고 떠나지 않고 남아 있으려 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견해(Bickermann)  와 (2) 본 구절을 본절 전체의 목적어로 보고 떠나도록 배려된 유대인들이라고 주장하는 견해(Fensham)로 갈린다.  그러나 (1)은 유대인을 모두 보내라고 한 고레스의  조서와 잘 조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2)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레 스가 유대인들을 `남아 있는 백성'이라고 한 까닭은, 그때 바벨론 땅에서 살고있던 유 대인들이 모진 환란과 고초를 견디고 살아남게 되었음을 시사하기 위함인 듯하다(Fen- sham, 대하 36:20).  한편 `남아 있는'(*         , 니쉐아르)은 `남다' 및 `잔류하다 '의 의미를 갖는 `솨아르'의 수동형으로서,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에 따라 그분의 백 성으로서, 또 그 백성답게 보존된 자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Kidner, 사 4:3; 10:20-22; 37:31; 겔 9:8; 17:21; 학 2:3).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 그 당시 유대인 포로들은 주로 유프라테스 강 하류 쪽의 메소포타미아 평야 지대에서 살고 있었다(Aharoni).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곳 외에도 페르시아 제국 내의 각처로 흩어져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Bickermann). 이러한 사실은 에스더와 모르드개 등의 경우로 미루어 보아도 분명해진다(에 2:5) 그곳 사람들이 - 여기서도 앞의 `남아있는 백성'처럼 두 가지 해석이 제시된다. 즉 (1) 팔레스틴으로 돌아가지  않을 유대인이라는 견해(Grosheide) 와 (2) 팔레스틴으로 떠나려는 유대인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던 본토 사람들이라는 견해 (Brockington, NIV) 등이 있다.  그런데 4 절 전체의 문맥상, (2) 의 견해가 보다 자연스럽다. 은과 금과...짐승으로 도와 주고 - 본문의 상황은 (1)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때 의 상황(창 13:1,2),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때의 상황(출 12:35,36) 및 (3)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서 수레에 실려 나올 때의 상황(삼상 6:4, 8)과 유 사하다.  이 같은 여러 상황에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재물을 준 것은  고대 중근동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즉, 그 당시에는 상대의 물건 혹은 사람을 잘못  취 한 것에 대한 사죄의 표시로서 속건 예물(삼상 6:4)을 피해자에게 주었던 것이다.  따 라서 팔레스틴으로 돌아가려던 유대인들에게 재물을 준것은 본토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타국의 백성 이스라엘인들을 불법으로 그들의 땅에 억류하고 있었던데 대한 보 상의 의미에서, 본토로 돌아가려던 유대인들에게 재물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간과치 말아야 할것은 비록 그런 관습이 있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친히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그 관습을 지키도톡 주관하셨다는 사실이다(출  12:36).   이 예물들을 통해 유대인들은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소요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1:5 유다와 베냐민 - 이 둘은 바벨론에 함께 포로로 끌려간 지파들이다. 베냐민 지파는 지리적으로 유다 지파와 가까운 곳에서 살았던 관계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할되었 을 때 유다 지파와 함께 남쪽 유다에 속하게 되었으며(왕상 12:21),  그 결과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걸어야 했다. 족장(* , 로쉬). `머리'(창 3:15), `꼭대기'(창 11:4;  28:12;  민  23:28), `두령'(신 29:10; 33:5)등의 의미이다.  구체적으로는 지파 단위와 가족 단위  사이의 중간 단위의 우두머리를 가리킨다(Williamson). 제사장들 - 이들은 특별히 구별된 신분에 속했다는 점 때문에 다른 지파, 심지어는 레위 지파와도 분리되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둘이 구별되어 언급된  보 다 중요한 이유는, 팔레스틴으로 유대인들이 귀환하는 주요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제 사장의 직분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성전의 건축이기 때문이었다(2, 3절). 레위 사람들 - 성전에서의 봉사가 주된 임무인 이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팔래스틴 으로의 귀환 대열에 끼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하는자 - 문맥상 이는 유다, 베냐민, 레위 지파 사람들과 제사장들 이외의 별도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그렇게 볼 경우 에는, 위에 언급된 자들은 모두(자발적으로) 귀환 대열에 참여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 문이다.  따라서 이 보다는 본문을 앞의 내용과 동격적인 맥락에서 이해하여, 앞에 언 급된 자들 중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팔레스틴으로 행했다고 봄이 낫다(Batten) 한편 `감동을 받고'(*        , 헤이르)는 `일어나다', `일깨우다'의 의미를 갖는 `우 르'(*       )의 사역형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틴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 전적으로 성령의 강권적인 감화의 결과임을 잘 보여준다. 일어나니(*     , 쿰) - 이것은 성경의 여러 문맥에서 특별한 일을  실행하기로 결단하고 그를 위하여 적극적인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삼상 16 :2; 왕하 3:24; 대하 22:10) =====1:6 그 사면 사람들 -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팔래스틴으로 귀환하려던 유대인들 주위의 바벨론 사람들을 가리킨다.  만일 이것이 귀환 의사가 없었던 유대인들이라고 한다면, 본서의 저자는 `아헤이헴'(*           ), 즉 `그들의 동포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Williamson).  이들이 유대인들에게 예물을 준 까닭에 대해서는 4절 주석을 참 조하라. 은 그릇과 황금 - 칠십인역처럼 `은 그릇 과 금그룻'으로 번역함이 더 나을 듯하며 (Grosheide, Brockington), `그릇'(*       , 켈리)은 `패물' 로 번역함이 무난하겠다 (출 3:22; 11:2). 기타 물건 - `물건'(*        , 레코쉬)은 일반적 의미의 `재산' 혹은 `재물'을 뜻 한다(창 12: 5; 14:11; 대하 20:25). 짐승(*   , 베헤마) - 대개 물건을 운반키 위한 짐승과 희생 제사시의  제물 로 쓸 짐승등 이었을 것이다. 보물 - 금.은 외의 귀금속을 통틀어 가리킨다(창 24:53; 대하 21:3; 32:23). 돕고(* , 하자크) - 원래 `강하게 하다', `격려하다'의 의미로서, 특별한 일 을 앞둔 사람들로 하여금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행위를 나타낸다(겔  34:4; 단 10:19; 호 7:15). 즐거이 드렸더라(*        , 히트나데브) - 이는 `자원하다'의 의미인 동사 `나 다브'(*       )의 재귀적 사역형로서 아무런 마음의 걸림이 없이 기꺼이 주는 행동을 말한다.  특히 이 형태의 동사는 하나님께 자원하는 심령으로 예물을  드리는  행동을 표현할때 사용되었다(출 35:21; 삿 5:2; 대상 29:9). =====1:7 고레스 왕이 또 - `또'(*   , 웨)는 일반적으로 `그리고'의 의미이다. 원문에는 이 단어가 본절의 맨 앞부분에 놓여 있다.  개역 성경은 이같이 번역함으로써, 고레스 왕 의 이스라엘에 대한 선행(善行)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 `여호와의 전 기명'은 성전 제사시에 활용되던  각종 그릇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금으로 도금(鍍金)된 놋그릇들이었으나, 그중의 상당수는 바벨론 왕들에 의해서 도금된 금이 벗기워짐에 따라서 보통의 놋그룻이  되고  말았다 (왕하 24:13).  한편, `꺼내니'(*           , 호치이)는 `나오다', `빼내다'의  뜻인 `야차'(*       )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는 깊숙이 보관 되었던것을 명령을 통하여 끄집어 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될 사항은, 이 단어가 구속 등의 상태에 있던 사람이나 물건이 자유롭게 됨을 나타낼 때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Fensham, 출 3:10). 옛적에 - 엄밀히 말하여, 이 말이 히브리 본문에는 없다. 문맥적 의미를 보강키 위 해 번역자가 삽입한 것으로 봄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 은 세 차례였는데, 그 중 두 번째(B.C. 597)와 세 번째(B.C. 586) 때에  포로와  함께 성전의 기명들을 가져갔다. 느부갓네살이...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  군대 와 함께 예루살렘의 제2차 함락 장면을 지켜보았다(왕하 24:10-12).  그러나 그는 제3 차 예루살렘 함락 때에는 예루살렘에 오지 않았었다.  그때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의 기명을 앗아간 사람은 느부갓네살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었다(왕하 25: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서 그 같은 일을했으므로 성전 기명을  가져 간 것은 느부갓네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편, 느부갓네살이  성전의  기명을 가져다가 신당에 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그 물건들에 대한 욕심 과 같은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것들을 가져간 것은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느부갓 네살은 그것들을 신당에 보관해 두지 않고, 그것들을 녹여서 다른 물건을 만들었을 것 이다.  성전 기명들을 자신의 신당에 보관한 것은, 상당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즉 , 느부갓네살은 타민족이 섬기는 신들의 무력함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기명을  자 신의 신당에 둔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할 때, 고대  중 근동 민족에 의해서 흔히 통용되던 관습이었다(Williamson, 삼상 5:2). =====1:8 고지기 미드르닷 - `고지기'는 창고 및 재정 관리를 총괄하던 고위직이었다(Fensh- am).  이 단어는 구약 성경 전체 중 여기서 단 1회 사용되고 있다. 한편  `미드르닷' 은 문자적으로 `미드라에계 주어진 바 된'의 의미로서, 고대 페르시아 인들에게는  매 우 흔했던 이름이었다.  그리고 `미드라'는 초기의 인도 아리안족들에 의해서  숭배되 던 신의 이름이다(Fensham). 유다 목백 세스바살 - `목백'(*        , 나시이)은 팔레스틴으로 옮겨질 유대인의 새로운 공동체를 다스리도록 고레스에 의해서 임명된 총독과 같은 직분이다(Williams- on, Keil, 5:14).  이는 `오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나사'(*       )에서 파생되었으 므로 문자적으로는 `올려진 자'의 의미이다.  한편, `세스바살'(*           )은 바벨 론식 이름으로서 `샤마쉬(태양신)가 그 아들을 보호하신다' 혹은 `신(월신)이 그 아버 지를 보호하신다'의 의미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1) 스룹바벨(3:2)과 동일 인물이 라는 견해(Keil, Rawlinson, Schultz, Kidner). 와 스룹바벨과는  별개의  인물이라는 견해(Williamson, Fensham, Meyer) 등으로 그 해석이 갈린다.  그러나 (1) 본문  이후 로 세스바살이라는 이름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2) 그토록 중요한 기명들은 귀환자들 을 인솔하는 책임자에게 인계되었으리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첫번째 견해가 더  무난 하리라 본다. =====1:9 금반이 삼십 - `금반'의 `반', 즉 `접시'(*             , 아가르텔레이) 는  구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안나온다는 점에서, 페르시아어의 음역임이 분명하다. 칠십인역 은 그 단어를 `프쉬크테레스'(*                 ), 즉 `술 식히는 기구들'로  번역하 였다(Rawlinson).  한편, 벌게이트역에서는 `피알라이'(Phialae), 즉 `항아리들'로 번 역했다. 칼 - KJV 는 우리말 성경처럼 `칼'로 번역하였으나, 차라리 NIV 처럼 `냄비'로  봄 이 더 자연스러울 듯하다. =====1:10 금대접 - `대접'(*        , 케포레이)은 덮개가 있는 잔을 뜻한다(Keil,민 9:15). 그보다 차한 은대접 -  '차한'(*           , 미쉐님)은 `되풀이하다',  `바꾸다'의 의미인 `솨나'(*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2 등급'의 뜻이다. 기타 기명 - `기명'(*         , 켈림)은 일반적 의미의 각종 '그릇' 혹은  `기구' 를 가리킨다(민 4:14; 왕상 19:21; 왕하 4:3). =====1:11 도합이 오천 사백 - 9, 10절에 나열된 것들의 실제 합계는 2,499 에 불과하다.  이 러한 차이에 대해 혹자는 필사자가 각 기명들의 숫자를 잘못 기록했다든지 아니면  합 계를 잘못 필사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본서 저자가 보다  중요하고 가치있는 기명들만을 특별히 계수해 넣은 것이 2,499개이고 총 기명수는 약 5,400 정도였으리라 봄이 더 무난하다(Edwin Yamauchi).  한편 외경 에스드라서는 그 합계를 5,469로 제시 한다. 사로잡힌 자를...데리고 올 때에 - `데리고 올'(*           , 헤알로트)은  `올라 가다'의 의미인 `알라'(*       )의 수동형이다.   이것의 주어는 `사로잡힌 자' 로서 이는 유다 백성들이 세스바살에 의하여 팔레스틴을 향해 인도되어 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위의 `알라'는 모세의 영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때도 사용된 단어이다(출 33:1).  여기서 본서의 저자가 바로 이 같은 단어를 특별히  사용 한 까닭은, 저자가 바벨론에서의 귀환을 제2의 출애굽으로 보려는 신학적 의도 때문이 었음이 분명하다(Willia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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