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이면과 문화의 복음[삶과 인식의 '형식'인 복음/인간적인 문화: 명예로운 미국 문화/비인간적인 문화: 명예롭지 못한 미국 ...

참된 신앙이란, 우리의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표현되고 구체화되는 정의에 의해 구성된다. 당신이 관심을 갖는 문제들은 도덕과 종교의 문제인 동시에 경제와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문제들_군비, 사형 제도, 인종주의 등_역시 정치적인 문제인 동시에 종교적이며 영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정의가 없는 곳에 신앙도 없다. 신앙을 온전히 실천할 때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고, 참된 정의를 실천할 때 당신은 참된 신앙의 삶을 사는 것이다. _ 서문 중에서 내적인 삶을 상실한 문화는 역설적으로 친밀함을 잃은 문화가 된다. 참된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 우리의 자아는 텅 빈 요새가 되고 말았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못한다. 우리는 다른 이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알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와 친밀함의 파괴는 다른 이들에 대한 헌신의 기초를 좀먹는 보이지 않는 벌레와 같아서 무너진 가정생활과 급증하는 이혼율, 거리와 텔레비전 앞에 아이들을 방치해 두는 모습,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유행시킨 ‘혼전’ 계약서가 점점 더 확산되는 현상, ‘시간 부족’(time famine)이라는 신종 질병 등을 통해 드러난다. _ 1장. 소비사회의 삶 읽기 소비사회를 하나의 삶의 형식, 즉 상품으로서의 삶의 형식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그것을 하나의 복음에 비유했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것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행위는 종교적인, 심지어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우리는 우리가 신뢰하는 우상의 모습으로 변화된다. 상품을 숭배하고 상품을 위해 살아가며 상품의 질에 따라 우리 자신을 판단함으로써, 우리는 자유와 인격을 앗아 가는 거짓 신을 창조해 냈다. 모든 형태의 우상숭배는 참된 인간관계를 없애고 인간 세계의 질서를 전복시킨다. 우상숭배는 고통을 안겨 주며, 삶과 목적을 국가나 물질의 소유, 기술, 종교적,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축소시키고 만다. _ 2장. 믿음의 이면과 문화의 복음 십계명을 어기도록 부추기는 경제적 조건이 존재할까? 기존의 경제적,사회적 체계가 개인의 헌신과 기도를 방해하거나 베풀며 사는 삶을 막는 경우가 있을까? 평생의 서약에 따라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문화적 편향이 존재할까? 순결을 지키는 것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것은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일까? 검소함은 어떤가? 평화의 왕은 국가주의를 약화시킬까? 부부간의 정절이나 자녀들과 꾸준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사회 정의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이 다스리지 않거나 다스릴 수 없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역사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역사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성령의 통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_ 3장. 상품 형식: 소비와 마케팅 인간의 성이 대상화되고 관음증을 부추기고 기계화됨에 따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상품에 의해서만 의식이 규정되는 세계, 상품의 형식을 통해서만 인식이 가능한 세계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아의 표현이자 자아에 관한 이야기, 내적인 것의 구현으로서의 성을 상실해 버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탁하는 자동화된 상품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성과 생식과 친밀함을 변형시키고 말았다. 무한 소비사회의 광고가 맹공격을 퍼부어 우리는 우리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었다. 배우자의 몸처럼 우리의 몸은 무력하고, 기분 나쁠 정도로 부적절하며, 부스럼과 여드름으로 손상되어 있고, 튼 자국과 노화성 반점으로 얼룩진 것으로 묘사된다. _ 4장. 인격 상실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유토피아를 찾거나 다른 문화나 국가에 존재하는 어떤 완벽한 삶의 본보기를 발견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에게 은총으로 주어져 있으며 우리가 속하여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는 곳은 바로 이 땅, 이 문화다. 우리가 경제적 우상숭배와 거기에 종속된 우리의 노예 상태에 대해 도전해야 할 곳도 바로 이 사회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경험의 모든 차원에 파고들어간 상품 형식 같은 총체적 ‘삶의 방식’ 또는 복음에 대해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는 소비사회의 프로그램화에 저항하라는 부르심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라는 부르심을 입기도 했다. 우리에게 우리의 참 모습을 계시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죽은 우상에 의해 규정되는 쓰고 버려도 되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대체할 수 없는 인격체임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인간 실존의 인격 형식이다. _ 5장. 상품 형식과 우상숭배 ‘인격 형식’이란, 사람을 언약 관계 속에서 근원적 정체성이 성취되는, 대체할 수 없는 인격체로 인식하고 소중히 여기는 형식을 의미한다.…각 문화마다, 각 시대마다(특정한 사회 구조와 역사적 배경이라는 상이한 조건하에서) 인간은 자신이 불완전하며 완결되지 못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불완전성은 서로 알고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노력과 충동을 통해 표현된다. 조건 지워지고 한정된 목표나 재화는 우리의 욕구를 최종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우리의 욕구는 끝이 없고 결코 만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뿐이다. 의식의 활동과 구조를 통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온전함, ‘지향성’, 장대한 역사적 갈망, 우리의 주어진 한계를 초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존재는 분명 아름다울 때가 많기는 하지만 결코 완전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질문하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난제를 제기한다. 왜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지 못할까? _ 6장. 기독교 철학적 인간학을 향해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자유로운 언약이 예속과 우상숭배로부터 이끌어 내시는 부르심이라면,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새로운 관계의 삶,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정의를 이루라는 부르심은 곧 살아 계신 하나님과 맺는 관계의 구체화이자 표현이다. _ 7장. 구약성경의 하나님: 우상숭배와 언약 복음은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반문화적이며 가장 혁명적인 문서다. 복음은 우리 문화에서 인간을 인식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형식과 절대적으로 반대되는 관점에서 인간 삶의 의미와 목적을 계시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주하고도 계속해서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굶주린 이들, 갇힌 이들, 집을 잃은 이들을 무시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며 교회 다니는 신자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용주의나 빈틈없는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최악의 경우에는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신성모독으로 ‘이들 중 가장 작은 사람’에게 등을 돌린다면, 그들은 바로 자신들이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고, 가장 위대한 계명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다. _ 8장. 그리스도의 삶 읽기 우리 문화에서 우리가 인격 형식 속에서 살고자 한다면, 특히 기독교에 계시된 인격 형식 속에서 살고자 한다면, ‘문화의 복음’이 예수님의 복음을 대체할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세계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세계관으로서, 인간 실현에 관한 이론으로서 문화의 복음은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근원적이며 긴급한 문제를 왜곡시켜 인간성과 하나님에 대해 부인하도록 만들었다. 문화의 복음은 사실상 무신론과 반인본주의를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죄의 전형인 우상숭배다. _ 9장. 자본주의라는 우상과 그리스도 기독교는 그 신앙의 본질과 인간의 부족함에 대한 인식에 뿌리내린 그 신앙의 의미 때문에 자기비판을 위한 근원적이며 영속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다. 이 근거는 기독교가 그 자체의 역사적 관점에 대해, 그 자체의 문화적 구체화에 대해, 그 자체의 이데올로기화에 대해, 그 구성원에 대해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게 해준다. 신앙은 실천되어야만 한다. 실천되지 않는 신앙은 가짜다. _ 10장. 우상숭배의 문화와 기독교적 실천 기도는 사회적,정치적 행위다. 상품 형식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인간의 삶에 관한 사회적,정치적 계시를 생각해 볼 때 기도에 관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상숭배, 언약 거부, 친밀함과 내면성으로부터의 도피, 통제와 조작에 대한 집착, 자유롭게 믿으며 소망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태도에 관해 논의했다. 다른 한편으로, 근본적으로 기도는 다른 인격체_하나님_와의 언약적 관계다. 그리고 기도는 모든 인격적 친밀함에 수반되는 위험, 투쟁, 기쁨, 어두움에 참여하는 행위다. _ 11장. 인격 형식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실천 소비하거나 물건을 사용하는 것에 관해 절제하는 것이 그 자체로 선은 아니다. 인격적 근원_즉 모든 사물은 인간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_으로부터 분리될 때 그런 식의 금욕주의는 차가운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뿐이며, 걷잡을 수 없는 쾌락주의만큼이나 진리와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고독과 관계라는 온전한 경험과 연결될 때 반드시 우리의 인격적 실존을 넓혀 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_ 12장. 인격의 세계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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