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요약 [창세기 49장, 2020년 8월 23일 자비교회] "야곱의 유언을 비롯한 성경의 예언은 결정론적인 숙명을 강요하기 위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창세기 49:1-2)



죽음을 앞둔 야곱이 유언을 남깁니다. 야곱의 유언은 단순한 개인적인 당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성령의 감동을 허락하셔서, 그가 선지자처럼 예언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야곱의 예언을 구속사적인 전망으로 대해야 하겠습니다. 야곱은 믿음으로, 그리고 주님이 허락하신 영감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과 정착을 미리 내다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가나안 정복보다 더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았습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창세기 49:3-4)


르우벤은 장자답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권리는 요셉과 유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르우벤이 아들 됨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닙니다. 르우벤의 후손은 그의 넘어짐을 타산지석(他山之石)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절제와 인내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베냐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창세기 49:27)


베냐민 지파는 야곱의 교훈을 잘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사기의 말미에서, 베냐민 지파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죄에 동참하고, 민족 간의 전쟁에 연루되어 멸절 직전까지 갔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이 베냐민 지파였고, 교회를 핍박했던 신약의 사울도 베냐민 지파였음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안위와 교훈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유언 중 해석이 어려운 것이 있다 하여도, 본문은 그것을 “축복”이라고 말해 줍니다.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세기 49:28)


야곱의 유언을 비롯한 성경 예언은 결정론적 숙명을 강요하기 위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언의 목적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고, 은사를 잘 활용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는 데 있습니다. 친구여, 기억하십시오. 복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궁극적인 승리와 복을 주십니다. 야곱의 가장 혹독한 유언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들의 속임수와 폭력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26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레위 자손은 이전의 부끄러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그래서 영광스러운 직임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그분을 의지할 때 그분 편에 서게 되며, 역전의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조상들의 헛된 행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 밖에 없습니다(벧전 1:18-19). 친구여, 포기하지 않고 교훈을 주시며, 회복케 하시는 구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지금 손을 뻗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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