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새번역] Genesis 21 [Don’t be afraid, for God has heard the boy cry...



창세기21장
 

I. 사라가 이삭을 낳음 21:1-8

구약에서 이삭처럼 그렇게 큰 기대 가운데에서 태어난 인물은 거의 없다. 그가 그렇게 큰 기대를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얻게 될 탁월한 개인적인 명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랫 동안 약속해 오셨고 경건한 자들이 그렇게 오랫 동안 기다려 왔던 그 후손, 곧 그리스도를 그가 예표하게 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었다.

1. 이삭의 잉태와 출산에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1,2).
(1) 이삭은 약속에 따라 태어났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태어났다(2절).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때를 어김없이 지키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비록 그의 약속하신 자비가 우리가 정한 때에는 오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는 반드시 올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때가 가장 적합한 때이다.
(2) 이삭은 일반적인 섭리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약속의 능력에 의해서 태어났다.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에 의해서 인간 본연의 능력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라. 왜냐하면 그들은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에 참예하기 때문이다(벧후 1:4).
2. 이삭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3-5)
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의 아들의 이름을 '이삭', 곧 '웃음'이라고 지었다(3절). 그렇게 이름을 지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아브라함이 이삭에 관한 약속을 받을 때 기뻐서 웃었기 때문이다(17:17). 둘째, 사라가 약속을 받을 때 불신과 불신앙으로 웃었기 때문이다. 셋째, 후에 이삭 자신이 이스마엘에게 비웃음을 받았기 때문이다(9절). 아마도 이스마엘은 그의 이름 때문에 웃었을 것이다. 넷째, 이삭이 상속받은 약속이 모든 시대에 모든 성도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이 자비가 사라에게 끼친 감명(6,7)
(1) 그 자비는 사라로 하여금 기쁨에 넘치게 해주었다(6절).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곧 하나님이 내게 기뻐할 이유와 기뻐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의미이다. 우리 주의 모친도 이와 같이 마음에 기뻐하였다(눅 1:46,47).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든지 간에 그 기쁨이 '어리석은 자의 웃음'이 아닌 한에는 그 기쁨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어떠한 자비의 위로든 그 위로는 우리의 친구들도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 기뻐하게 한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왜냐하면 기쁨은 쉽게 전파되는 것이 때문이다. 누가복음 1:58을 보라.
(2) 그 자비는 그녀를 놀라움으로 가득 채웠다(7절). "그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말했다면 우리는 믿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그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를 모두 뛰어넘는 것임을 명심하자.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도록 그의 아들을 보내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그의 성령을 보내시며, 우리를 시중들게 하시기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보내시리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처럼 큰 죄가 용서받으리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었겠는가?
4. 이삭의 유아 시절에 관한 짧은 설명(8)
아이가 자랐다. 이제 그는 젖을 먹지 않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서 젖을 떼었다. 히브리서 5:13,14을 보라.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 떼던 날에 잔치를 베풀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그들이 유아 시절의 여러 가지 위험을 무사히 지나도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섭리로써 배려하시고 사랑하신다는 뚜렷한 예증이 되기 때문이다. 시편 22:9,10;호세아11:1을 보라.

#1-8 Few under the Old Testament were brought into the world with such expectations as Isaac.
He was in this a type of Christ, that Seed which the holy God so long promised, and holy men so long expected.
He was born according to the promise, at the set time of which God had spoken.
God's promised mercies will certainly come at the time which He sets, and that is the best time.
Isaac means "laughter," and there was good reason for the name, ch.
#17:17; 18:13|.
When the Sun of comfort is risen upon the soul, it is good to remember how welcome the dawning of the day was.
When Sarah received the promise, she laughed with distrust and doubt.
When God gives us the mercies we began to despair of, we ought to remember with sorrow and shame our sinful distrust of his power and promise, when we were in pursuit of them.
This mercy filled Sarah with joy and wonder.
God's favours to his covenant people are such as surpass their own and others' thoughts and expectations: who could imagine that he should do so much for those that deserve so little, nay, for those that deserve so ill? Who would have said that God should send his Son to die for us, his Spirit to make us holy, his angels to attend us? Who would have said that such great sins should be pardoned, such mean services accepted, and such worthless worms taken into covenant? A short account of Isaac's infancy is given.
God's blessing upon the nursing of children, and the preservation of them through the perils of the infant age, are to be acknowledged as signal instances of the care and tenderness of the Divine providence.
See #Ps 22:9,10; Ho 11:1,2|.

Ⅱ. 이스마엘을 내보낼 것이 논의됨 21:9-13

여기에서는 이스마엘을 내어 보내는 일이 고려되고 결정된다.
(1) 문제는 이스마엘 자신이 그의 어린 동생 이삭에게 행한 무례한 짓으로 인해 야기되었다. 사라가 친히 그 장면을 목격하였다. 이스마엘은 여기서 '애굽 여인의 소생'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애굽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가한 400년 동안의 박해가 여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15:13). 이때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열 네 살이 많았다. 도무지 상대가 될 수 없는 어린 아이에게 그처럼 무례한 짓을 행했다는 것은 이스마엘의 비열한 성품을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2) 사라가 이스마엘을 내어쫓자고 제안하였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10절). 이 말은 다소 화가 난 가운데 말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마치 예언의 영에 의해 말해진 것처럼 인용되고 있다(갈 4:30). 그러므로 그 말은 또한 보이는 교회 안에 이름을 두고 있는 모든 위선자들과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판결이기도 한 것이다.
(3) 아브라함은 그 제안을 싫어하였다. 아브라함에게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11절).
1)이스마엘이 사라로 하여금 그 같은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는 사실이 그를 근심케 만들었다.
2)사라가 그와 같은 처벌을 고집했다는 사실이 그를 근심케 만들었다. "그애를 꾸짖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애를 내어 쫓아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4) 하나님이 그 일을 결정하셨다(12.13절). 아브라함의 언약의 후손은 아주 처음부터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뒤섞이지 않고 구별되는 특별한 백성이어야 했다. 이스마엘이 내어 쫓긴다고 해서 그가 파멸하는 것은 아니었다(13절). 즉 "그도 '네 씨니 한 민족을'이룰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외적인 분배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자비에서도 축출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주제 넘은 짓이다. 비록 그가 교회에서 쫓겨났을지라도 '세상에서까지 쫓겨나지는'않았다.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하자. 첫째,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시고 형성하시며 조정하신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에 대해서는 외인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축복은 충분히 받는다.

#9-13 Let us not overlook the manner in which this family matter instructs us not to rest in outward privileges, or in our own doings.
And let us seek the blessings of the new covenant by faith in its Divine Surety.
Ishmael's conduct was persecution, being done in profane contempt of the covenant and promise, and with malice against Isaac.
God takes notice of what children say and do in their play; and will reckon with them, if they say or do amiss, though their parents do not.
Mocking is a great sin, and very provoking to God.
And the children of promise must expect to be mocked.
Abraham was grieved that Ishmael should misbehave, and Sarah demand so severe a punishment.
But God showed him that Isaac must be the father of the promised Seed; therefore, send Ishmael away, lest he corrupt the manners, or try to take the rights of Isaac.
The covenant seed of Abraham must be a people by themselves, not mingled with those who were out of covenant: Sarah little thought of this; but God turned aright what she said.

Ⅲ. 하갈과 이스마엘이 내오쫓김 21:14-21

(1) 여종과 여종의 아들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쫓겨났다(14절).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은 신속했다. 아침에 일찍이. 그것은 또한 유순한 복종이었다. 그 자신의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자 곧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명령받은 대로 묵묵히 실행하였다.
(2)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정착해 살도록 가르쳐 준 곳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리고 광야에서 방황하였다.
1)그들은 그곳에서 극심한 곤경에 빠졌다. 그들의 양식은 다 떨어졌고 이스마엘은 병에 걸렸다. 하갈은 몹시 슬퍼하며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녀는 구원할 방도를 단념하고 '그 자식의 죽음'만을 기다렸다(15,16절).
2)이 곤경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17절). 하나님은 하갈을 위로하시기 위해 천사를 보내셨다. 그녀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16:13).
①천사는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말하여 그녀를 안심시켰다. 비록 이스마엘이 광야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의 소리를 들으신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거기에는 하늘로 향해 뚫려 있는 길이 있는 법이다.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18절).
②천사는 그녀가 그 아이를 돕기를 분발해야 하는 이유로서 그 아이에 관한 약속, 즉 그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③천사는 그녀에게 당장 필요로 하고 있는 물질에 눈을 돌리게 했다. 즉 그때 '그녀는 샘물을 보았다.' 위로를 받을 충분한 이유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매일 슬픔으로 살아 간다는 사실을 주의 하라. 사람들 곁에는 은혜 언약 안에서 주어진 샘물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열어 그들의 상처를 보게 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의 눈을 열어 그들의 치료제를 보게 하시기까지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요 16:6,7).
3)사도 바울은 하갈과 이스마엘에 관한 일들을 비유(갈 4:24)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 일들은 비유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비유는 다음의 사실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첫째, 유대인들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 약속에 의해서 의를 추구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둘째,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서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언약의 위로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버리는 자들은 만족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지만 결국은 만족을 얻지 못한채 주저 앉아 버리고 만다.
(3) 마침내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에 정착하였다(20,21절). 그 곳은 거친 곳으로서 거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그는 그와 같이 거친 사람이었다(16:12). 여기서 다음 몇 가지를 살펴 보자. 첫째,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몇 가지 증표가 있었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둘째, 그는 활 쏘는 자가 되었다. 셋째, 그는 자기 어머니의 친척들 중에서 한 사람과 결혼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애굽 여인 중에서 그의 아내를 택하였다. 비록 그가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그는 결혼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그의 어머니의 충고와 동의 없이 일을 처리한다면 합당한 배우자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14-21 If Hagar and Ishmael had behaved well in Abraham's family, they might have continued there; but they were justly punished.
By abusing privileges, we forfeit them.
Those who know not when they are well off, will be made to know the worth of mercies by the want of them.
They were brought to distress in the wilderness.
It is not said that the provisions were spent, or that Abraham sent them away without money.
But the water was spent; and having lost their way, in that hot climate Ishmael was soon overcome with fatigue and thirst.
God's readiness to help us when we are in trouble, must not slacken, but quicken our endeavours to help ourselves.
The promise concerning her son is repeated, as a reason why Hagar should bestir herself to help him.
It should engage our care and pains about children and young people, to consider that we know not what great use God has designed them for, and may make of them.
The angel directs her to a present supply.
Many who have reason to be comforted, go mourning from day to day, because they do not see the reason they have for comfort.
There is a well of water near them in the covenant of grace, but they are not aware of it, till the same God that opened their eyes to see their wound, opens them to see their remedy.
Paran was a wild place, fit for a wild man; such as Ishmael.
Those who are born after the flesh, take up with the wilderness of this world, while the children of the promise aim at the heavenly Canaan, and cannot be at rest till they are there.
Yet God was with the lad; his outward welfare was owing to this.

Ⅳ.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동맹 21:22-32

우리는 여기서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사이의 맹약에 관한 기사를 본다. 비록 마음대로 땅을 빌어 쓰기는 했으나 아브라함이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에게 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정은 귀하게 여겨졌고 그들의 호의를 샀다.
(1) 아비멜렉과 그의 국무총리이며 군대 장관인 비골이 동맹을 제안하였다.
1)그 동맹을 맺게 된 원인은 아브라함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이었다(22절).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우리는 이 사실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는 자들과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슥 8:23).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있는 자들과 교제를 가진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요일 1:3).
2)대체로 그 동맹의 취지는 두 부족간에 확고하고 변함없는 우호 관계가 지속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아비멜렉은 그의 아들과 그의 후손 그리고 그의 땅이 그 맹약의 혜택을 받게 하고자 하였다.
(2) 아브라함은 우물에 관한 세부 조항을 첨가하며 그 맹약에 동의하였다. 그 맹약에 관한 아브라함의 이러한 처리에서 다음 몇 가지 점들을 살펴보자.
1)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이 신용과 양심을 존중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즉시 그와 맹약을 맺었다.
2)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비멜렉의 종들과 다투었던 우물에 관한 문제를 아비멜렉에게 부드럽게 말했다(25절). 정직한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자마자 즉시 시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3)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매우 훌륭한 선물을 주었다(27절). 서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사랑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나의 것은 곧 나의 친구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4)아브라함은 맹세로써 그 언약을 조인하였고 그곳에 '브엘세바' 곧 '맹세의 우물'이라는(31절)새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언약을 증거하는 기록으로 삼았다.

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 21:33,34

그는 여러 날, 곧 '히브리인' 혹은 '나그네' 아브라함으로서의 그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기간 동안 머물렀다. 그는 거기에서도 그의 신앙을 변함없이 실천하였을 뿐만 아니라 밝히 고백하기도 하였다.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33절). 필시 그는 그가 심어 놓은 작은 숲을 그의 예배당 혹은 기도처로 삼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작은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여호와를 부를 때 우리는 그를 '영생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아야 한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세계가 있기 전에도 계셨고 시간과 날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계실 것이다(참조, 사 40:28).

#22-34 Abimelech felt sure that the promises of God would be fulfilled to Abraham.
It is wise to connect ourselves with those who are blessed of God; and we ought to requite kindness to those who have been kind to us.
Wells of water are scarce and valuable in eastern countries.
Abraham took care to have his title to the well allowed, to prevent disputes in future.
No more can be expected from an honest man than that he be ready to do right, as soon as he knows he has done wrong.
Abraham, being now in a good neighbourhood, stayed a great while there.
There he made, not only a constant practice, but an open profession of his religion.
There he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as the everlasting God; probably in the grove he planted, which was his place of prayer.
Abraham kept up public worship, in which his neighbours might join.
Good men should do all they can to make others so.
Wherever we sojourn, we must neither neglect nor be ashamed of the worship of Jehov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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