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설교 (2)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그 본체의 형상,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심, 죄를 정결하게 하심, 높은 곳...

히브리서 1장은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1절부터 3절까지는 구약의 선지자들보다도 더 뛰어나심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다(1절),이 부분은 분사구문으로 되어 있어서 이어서 나오는 2절 말씀을 위한 부수적 역할을 한다. 여기 1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지자들은 ‘계시의 도구’이며 하나님이 ‘계시의 주체’라는 사실이다. 구약성경은 선지자들이 자기의 생각과 사상을 적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한 것이다(벧후 1:21). 성경에서 계시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인간만 보고 만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신학자가 아니라 고대 문헌을 연구하는 역사가가 되고 말 것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2절).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아를’()이다. 비록 ‘아들’ 이란 단어에 관사가 붙어 있지 많지만 문맥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아들’을 통한 계시는 그 이전의 선지자들을 통한 모든 계시들의 최종적 완성이다. 이런 면에서 ‘아들’을 통한 계시는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계시라 할 수 있다.
여기의 ‘이 모든 날 마지막에’ ()란 표현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구약성경의 ‘후일에’ 또는 ‘말일에’(be'a arithhayyamim, 창49:1, 민
24:14, 신4:30, 사2:2, 렘 23:20, 겔38:16, 단 10:14, 호3:5, 미 4:1 등)란 표현과 같은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F.F.Bruce, The Epistle to the Hebrews, 1964, p.3). 이 ‘말일’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실 때이며 메시아를 보내실 때이다(F.W.Grosheide, De brief aan de Hebreen, 1927,p.65). 그래서 어떤 사람은 히브리서의 이 표현은 '시작된 종말론'(inaugurated eschatology)을 의미한다고 한다(Bruce, 3 각주 14). 그러나 히브리서의 이 표현을 자세히 보면 구약의 ‘후일에’ 란 표현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 히브리서 1장에서는 ‘이’()라는 지시 대명사가 붙어 있어서 ‘앞에서 말한 날들의’ 마지막 때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해 오시던 ‘계시 역사’의 마지막 때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가 표현하고자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소위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는 여태까지의 모든 계시 행위들의 최종적 완성이요 궁극적 성취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석할 때 멀리 있는 문맥보다도 가까이 있는 문맥, 특히 그 단어나 표현이 속해 있는 문장을 더 중요시해야하며 단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2절 하반절에서는 이 ‘아들’에 대해 총괄적으로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를 ‘만유의 후사’() 곧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셨으며, 그를 통하여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 여기서 ‘세계’라고 번역된 ‘아이오네스’()는 주로 ‘세대’(ages)란 의미로 쓰이지만 ‘우주, 세계’ (worlds)란 의미로도 쓰인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단지 ‘세계’란 의미가 아니라 ‘세계의 역사’ 곧 이 세계와 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를 포함한 개념으로 보기도 하지만(Grosheide,66), 그러나 여기에 ‘지으셨다, 만드셨다’()는 단어가 있으므로 세상 ‘역사’로 보기는 어렵다. 만일 그렇다면 여기에 ‘지으셨다’는 단어뿐만 아니라 ‘주관하신다, 다스리신다’ 는 단어가 왔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의 ‘아이오네스’는 11장 3절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우주, 세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Bruce 4).
3절에서는 이 ‘아들’에 대해 좀 더 설명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여기서 ‘본체’란 단어는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인데 아직 이후의 교의학에서 발전된 바와 같은 ‘위격’(Person)의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다. 여기서는 그 단어의 원래의 의미를 따라 ‘존재’ (existence) 또는 ‘본질’(essence)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Grosheide 67f.). 그리고 ‘형상’()이란 말은 ‘도장을 찍은 인’(印)을 뜻한다. 도장을 찍으면 그 ‘인’(印)은 ‘도장’과 동일하지만 도장과는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위격상으로는 ‘구별된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광채’()가 되신다(Grosheide,67).

II.친사들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4-14절)4절

이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뛰어나심에 대해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논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의 뛰어난 성경지식과 논증의 예리함을 볼 수 있다.

1.더 나은 이름을 얻으심(4,5절)
4절과 5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천사보다 ‘더 나은 아름’을 얻으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말 성경에 ‘아름다운’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비교급으로서 더 나은, 우월한(superior)이란 뜻이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얻으셨지만, 천사는 결코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이다.

2.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심(6,7절)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지만, 천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 불과하다(6,7절). 6절에서는 그리스도를 ‘프로토토코스’()라고 부른다. 이것은 개역판 성경에 ‘맏아들’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뜻은 ‘먼저 나신 자’이다(골
1:15 참조). 그리고 6절에서 ‘경배한다’()는 단어는 ‘...에게 무릎을 꿇는다’ 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7절은 시편104편 4절의 인용인데, 우리 개역판 성경에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의 ‘바람’() 이란 단어는 경우에 따라 ‘영들’로 번역될 수도 있지만, 같은 절 안의 ‘불꽃’과의 대비 관계 때문에 개역판 성경에서처럼 ‘바람’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사역자들’()이란 단어는 ‘섬기는 자들’(servants)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어했든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는 문장은 그 의미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 문장은 가능한 목적어를 두 개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단어를 목적어로 보고 어느 단어를 목적 보어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시편에서처럼 목적어와 목적보어를 바꾸어서 “바람을 그의 천사(天使또는使者)로 삼으시며, 불꽃을 그의 사역자(使役者 또는 섬기는 자)로 삼으시느니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cf. G.W.Buchanan, To the Hebrews. 1981,p.18f.)

3.하나님 되심(8,9절)
8절과 9절에서는 시편 45편 6절과 7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 부분에서 논하고자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논증이 왜 성립하는지는 우리 개역판 성경에서는 분명하지 않다. 그 이유는 8절에서 2인칭 인칭 대명사를 ‘주’(主)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절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이여 너의 보좌가 영영하며 너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너’를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던 여기서 ‘너’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9절에 보면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승[勝)하게 하셨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의 ‘너’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 곧 메시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보통사람들은 지나쳐 버리기 쉬운 인칭 대명사에 주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논증하는 것을 볼 때, 히브리서 기자가 구약성경을 얼마나 자세히 읽고 연구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4.창조자 되심(10-12절)
10절부터 12절까지에서는 시편 102편 25절부터 27절까지를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창조주 되심과 영존하심을 말하고 있다. 10절 초반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주여’라고 부르고 있다. ‘주’()란 만물의 주재자이며 또한 우리의 주관자임을 뜻한다. 그 다음에 나오는 ‘주께서’, ‘주의’,그리고 ‘주는’은 다 원래 2인칭대명사(너, 당신)이다. 그렇다면 여기의 2인칭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구절들과 시편 102편의 전체문맥을 볼 때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구약에서 일차적으로 ‘여호와’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70인역에서 ‘주’로 번역되었고 이것이 신약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예가 많다. 이것은 삼위일체 안에서 위격의 혼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2절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바와 같이 “아들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기” 때문이다(cf. Grosheide, 79).

5.천사의 열등함(13-14절)
그러나 13절에서 천사들에게는 이러한 영광과 권세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곧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시 110:1)는 말씀은 천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시편에 있는 이 구절의 서두(“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를 볼 때, 이 말씀은 메시아에게 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14절에서는 결론적으로 천사란 어떤 존재인가를 말하고 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신 것”이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들’()로서, 그 섬김의 대상은 ‘장차 구원을 상속할 자들’()이다. ‘구원을 상속한다’는 것은 종국적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이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천사들은 구원받은 성도들, 곧 종국적으로 천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는 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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