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Sub]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1월 6일 스펄전 저녁 묵상] 종 된 육체는 산기슭에서 기다리고, 주인 된 영혼은 ...

1월 6일(저녁)
제목 : 저녁에 내 입을 여시더니
요절 :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 입을 여시더니"(겔33:22)

그대는 야간에 시련(징계)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징계에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주의하여 그것(징계)에 의하여 유익하도록 애쓰십시오.(노력하십시오.) 주님의 손은 그대의 혼(the Soul)을 강건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대의 영(the Spirit)을 영원한 것들을 향하여 들어 올릴 것입니다.

오, 주께서 나를 후대해 주심을 내가 느끼기를 원합니다.(주1) 

하나님의 임재(臨在)와 내주(內住)의 의식은 내 영혼(the Soul)을 독수리의 날개에 실어 하늘에 올립니다.  그런 때에 우리는 영적 기쁨으로 충만하고 땅(이 세상)의 근심들과 슬픔들을 잊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영적세계)가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세계는 우리에 대한 그의 지배력을 잃습니다. 우리의 종된 몸(Servant-body)은 지옥문(지옥바닥)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된 영(master-spirit)은 주님이 임재하시는 정상(꼭대기)에서 주님을 경배합니다.

오, 오늘 저녁 하나님과의 거룩한 친교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기를 기원합니다.(소원합니다.) 주께서는 내가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나의 마음은 맥빠지고, 나의 믿음은 약해지고, 나의 헌신은 식어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의 치료의 손길이 내 위에 놓여야 할 이유들입니다. 주님의 손길은 뜨거운 나의 이마를 식혀주고, 나의 떨리는 마음의 걱정을 진정시켜 주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 영광스러운 손길은 나의 심령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땅의 거대한 기둥들을 지탱하고 계시는, 그 피곤할 줄을 모르시는 손길은 나의 영혼을 떠받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를 싸신 주님의 사랑의 손은 나를 품으실 수 있습니다. 원수를 이기신 그 강한 손은 나의 죄들을 극복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들은 나의 속죄를 위하여 꿰찔리셨습니다.

옛날에 다니엘을 만지시고, 그가 하나님의 비죤들을 보게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도록 하신, 그 같은 손길이 내 위에 계심을 나는 확실히 느낄 것입니다.(주2)

주1 시116:7

주2 단1:17, 2:19, 6:13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 에스겔 33:22



  심판의 한 방법으로서 여호와의 손이 임할 수 있고, 만일 그렇다면 나는 그 이유를 살펴보고, 그분의 손의 채찍을 맞고, 그렇게 정하신 그분을 기쁘게 맞이하겠습니다. 밤중에 징계를 받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하고, 그 유익을 조심스럽게 취하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손은 또한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영혼에게 힘을 주고 영혼이 영원한 진리들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오, 나는 이런 의미로 나를 다루시는 주님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내주에 대한 의식으로 충만한 영혼은 독수리 날개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신령한 기쁨으로 충만하고, 세속적인 염려와 슬픔들은 잊어 버리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가까이 다가오고, 보이는 것은 힘을 잃습니다. 종 된 육체는 산기슭에서 기다리고, 주인 된 영혼은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산꼭대기에서 그분을 경배합니다. 오 하나님과의 거룩한 친교의 시간이 오늘 밤 나에게 충만하게 허락되기를!

  주님은 내가 그것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나의 은혜는 시들고, 마음은 부패하고, 믿음은 약해지고, 열정은 식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분의 치유의 손길이 저에게 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들입니다. 그분의 손은 불처럼 뜨거운 내 이마의 열을 식혀주고, 떨리는 내 가슴의 고동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을 지으신 그 영광의 의로우신 손은 내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땅의 거대한 기둥들을 지탱시켜온 그분의 지칠 줄 모르는 손은 내 영혼을 얼마든지 지탱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을 따스하게 포용하시는 그분의 사랑하는 손은 얼마든지 나를 어루만져 주실 수 있습니다. 또 원수들을 산산조각 멸하시는 강하신 그분의 손은 내 죄도 그렇게 산산조각 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저녁 저에게 다가오시는 손을 반갑게 느껴서는 안 된단 말입니까?

  내 영혼아, 나아오라, 와서 그대의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여 그대의 구속을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의 손을 강하게 붙들라. 그러면 그대는 과거에 다니엘에게 임하여 그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고 하나님의 환상을 볼 수 있도록 역사하셨던 손과 똑같은 손을 확실히 느끼게 되리라.



“Now the hand of the Lord was upon me in the evening.” Ezekiel 33:22



In the way of judgment this may be the case, and, if so, be it mine to consider the reason of such a visitation, and bear the rod and him that hath appointed it. I am not the only one who is chastened in the night season; let me cheerfully submit to the affliction, and carefully endeavour to be profited thereby. But the hand of the Lord may also be felt in another manner, strengthening the soul and lifting the spirit upward towards eternal things. O that I may in this sense feel the Lord dealing with me! A sense of the divine presence and indwelling bears the soul towards heaven as upon the wings of eagles. At such times we are full to the brim with spiritual joy, and forget the cares and sorrows of earth; the invisible is near, and the visible loses its power over us; servant-body waits at the foot of the hill, and the master-spirit worships upon the summit in the presence of the Lord. O that a hallowed season of divine communion may be vouchsafed to me this evening! The Lord knows that I need it very greatly. My graces languish, my corruptions rage, my faith is weak, my devotion is cold; all these are reasons why his healing hand should be laid upon me. His hand can cool the heat of my burning brow, and stay the tumult of my palpitating heart. That glorious right hand which moulded the world can new-create my mind; the unwearied hand which bears the earth’s huge pillars up can sustain my spirit; the loving hand which incloses all the saints can cherish me; and the mighty hand which breaketh in pieces the enemy can subdue my sins. Why should I not feel that hand touching me this evening? Come, my soul, address thy God with the potent plea, that Jesus’ hands were pierced for thy redemption, and thou shalt surely feel that same hand upon thee which once touched Daniel and set him upon his knees that he might see visions of God.





청소년기의 찰스 스펄전

  장차 영국의 ‘설교의 황태자’로 불리게 될 찰스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1834년 6월 19일 에세스의 캘버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조합교회 목사인 가정에서 그리고 영국 국교회에 반대하던 존 번연의 영국 침례교적 전통 속에서 자라났다. 스펄전은 신앙 속에서 양육되었으며 기도하는 손에 의해 길러 졌으며 예수님에 관한 노래를 들으며 잠들곤 했다. 그의 어머니는 특히 찰스 스펄전을 위해서는 “제 아들이 주님을 위해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신앙의 엄격한 교리와 경건한 칼빈주의자들과 청교도 신학과 신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스펄전은 17세기의 존 폭스의 ‘순교자의 책’과 존 오웬, 리처드 십스, 존 플라벨, 매튜 헨리, 리처드 백스터와 같은 위대한 청교도 작가들의 책을 읽고서 신학적 논의의 의미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그가 죽기 전까지 무려 100번이나 읽었으며, 15살 된 스펄전의 상상력은 풍부했고 기억력이 뛰어 났고 그의 독서량은 엄청나게 많았다.

스펄전의 회심

  15세의 스펄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을 알고 싶어 했다. 어느날 주일 아침 스펄전은 눈보라 때문에 옆길로 빠져 어떤 작은 감리교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본문은 이사야 45:22절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었다. 그는 설교했다.

  “여러분 중에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 속에는 어떤 위안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앙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라, 나는 큰 핏방울들을 흘리고 있다. 나를 보라, 나는 십자가에 달려 있다. 나를 보라, 하늘로 올라간다. 나를 보라, 나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다. 오 가련한 죄인들아, 나를 보라! 나를 보라!”는 메시지가 스펄전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는 어두움으로부터 찬란한 빛으로,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기워 졌고, 절망으로부터 구출되었고,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결국 스펄전은 1850년 1월 6일 회심하였다. 1850년 5월 3일 라크강에서 침례를 받은 후 그는 일생동안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그분의 일을 확장 시키겠다”고 서원한다.

신학적 쇠퇴기였던 19세기의 영적상태 

  비국교도 교파들인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조합교회 등은 18세기에 경험했던 부흥의 열기가 많이 침체되었고, 다소 형식주의가 교회에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1859년의 부흥으로 인해 다시 신앙적 열정이 일어났고, 복음주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교회는 크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기독교 활동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출현하였다. 1840년대에 시작된 현대주의 운동과 1859년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도전과 성경 고등비평 (Higher Criticism)이 들어와 기독교의 기초를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신 신학’ 또는 ‘신 사상’의 공격을 받으면서 칼빈주의적 신학과 신앙이 쇠퇴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 변화는 급속하게 일어났다. 스펄전은 이러한 개혁 신학의 쇠퇴를 지켜 보면서 성경적인 교리가 회복되는 것만이 영국교회 부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워터비치 침례교회 부흥

  스펄전은 1851년 10월 17살 때 워터비치 한 오두막집에서 처음으로 설교를 했다. 캐임브리지 근처 워터비치 (Waterbeach) 침례교회 에 모여든 그곳 주민들이 스펄전의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아 자기네 교회 목사로 초청하여 1852년 1월에 부임했다. 그가 설교하자 사람들이 회심하기 시작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특별히 스펄전은 영적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능력을 보였고, 그 능력은 설교할 때 마다 나타났다. 처음에 40명이던 교인수가 100명으로, 더 나아가 450명으로 급증했다. 교인들은 스펄전을 사랑했고, 그가 대학으로 떠나지 않은 것을 기뻐했다. 스펄전은 워터비치에서 2년간 목사로 사역한 후 “청년 설교자”로서의 그의 명성이 런던에까지 퍼져 나갔다.

런던 부흥 - 메트로폴리탄 성전

  당시 열아홉 살이던 스펄전은 1854년 4월 런던에 있는 침례교회인 New Park Street Baptist 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부임하게 되었다. 스펄전이 런던으로 온 것은 1859-1860년에 이루어진 잉글랜드 부흥의 전조였다. 매우 약해졌던 그의 교회는 시간이 갈수록 많은 성도수로 인해 넘치게 되었다. 주일 예배 때가 되면 교회가 사람들로 가득차게 되어 곧 교회 증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엑서터 홀에서 드린 주일 예배에 매주 4,500명이 몰려왔다. 또 좌석이 부족했다. 이보다 더 넓은 뮤직 홀로 옮겨 예배드린 첫번째 주일에 무려 2만 2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가 설교한 초창기 때 수 백명이 그의 설교를 듣고 복음을 영접했는데 장차 아내가 될 수산나 톰슨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교회는 청중을 사로잡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스펄전의 설교를 들으러 오는 청중들을 수용하기 위해 새 교회를 짓기로 결정했다.

  새로 지은 메트로폴리탄 테버네클 (Metropolitan Tabernacle) 교회는 1861년 3월에 문을 열었다. 당시 국교회에 반대하는 신도들이 예배드리는 장소로는 가장 큰 교회로 5천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 스펄전이 사역하는 동안 평균 출석 교인의 수는 약 5천명 이상 넘었다. 교인들의 수는 꾸준히 늘어나더니 1854년에 232명이던 교인수가 스펄전이 사망할 때 쯤에는 그 수가 5,307명으로 늘어났다. 스펄전이 런던에서 설교한 이후로 거의 매 예배 때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을 찾았다.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

목회자 대학 (The Pastor's College) 설립

  많은 젊은이들이 스펄전의 설교를 듣고 그 영적인 열정에 감동되어 빈민학교나 길 거리에 나가서 설교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복음의 열정이 강하였고 신학 수업을 받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였다. 그래서 스펄전은 이러한 젊은 설교가들을 훈련시키는 목회자 대학 (The Pastor's College)을 설립하게 된다. 이 칼리지에 대한 그의 비전은 학자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설교자와 영혼구원에 열정을 가진 복음주의 사역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스펄전은 2년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교회가 없는 곳으로 가서 교회를 세우게 하였다.

  1866년에 런던에서만 스펄전 칼리지 학생들이 18개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 후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고, 새로운 교회조직이 만들어지고, 오래되고 쇠퇴해가는 교회에 다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스펄전 칼리지를 졸업한 80여명의 사역자들이 영국의 각 지역에서 목회활동을 하며 두각을 나타 내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18명으로 줄어든 교회에 갔는데 몇 년 후 약 800명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스펄전의 기도의 영성 - “스펄전의 기도는 신학적이다”

  스펄전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 말씀, 기도, 교리, 은혜, 성령이다. 그는 평생 동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사도시대 이래로 스펄전의 강단 기도에 비길 만한 기도가 없었다. 그의 강단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교우들을 위한 사랑과 격려, 축복,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표현들이 많다. 스펄전의 기도는 신학적이다. 그리고 그의 기도에는 진지함, 열정, 뜨거움, 창의적, 승리감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과 영원한 언약의 피가 가득하다. 그는 가끔 금식기도 기간을 정하든지 특별기도의 달을 마련하기도 했다. 스펄전은 교회 모든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최선책은 개인 기도훈련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교회에 생명력이 넘치려면 기도회를 살려야 하고 기도회를 살리면 교회와 성도 모두가 부흥한다고 강조했다. 스펄전은 주일 예배가 시작되기 전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개인 기도실로 돌아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실패감을 한탄했다. 스펄전은 설교자의 능력을 얻는 조건은 뜨겁고 끈질긴 기도가 가장 급선무라고 강조하면서 능력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무릎 꿇고 땀을 흘리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스펄전의 설교 핵심 - “복음 설교”

  스펄전의 모든 설교는 복음설교이다.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대속이다. 그의 설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로 가득 채워졌고, 성경과 죄의 타락성, 은혜 교리, 하나님을 향한 사랑, 구원의 영광이었다. 그의 설교는 권위있고, 열정적이며 우렁차고, 독창적이며, 감동적이고, 심오하고, 어휘 선택이 참신하고, 구체적인 적용사례들이 가득했다. 스펄전은 목회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의 사역 기간 동안 예배나 성례전보다는 설교와 회심에 더 큰 강조점을 두었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명하고도 열정적으로 전했다. 그는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핵심 사항들과 복음주의 신앙을 끝까지 사수했으며, 교리적으로는 칼빈주의를 고수하며 굽힐 줄 모르는 신학적 신념들이 강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스펄전에 대해 말하기를 “그는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바로 이 사람인데 그는 칼빈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스펄전은 한 편의 설교를 작성하기 위해 수백 권의 책을 참고했다. 그의 서재에는 1만 2천권 정도 있는데 약 60-70%는 청교도 서적이다.

내리막 논쟁 (Down Grade Controversy)과 생의 마감 

  칼빈주의 신학이 확고한 스펄전은 연합침례교 안에서 자유주의와 논쟁을 하게 된다. 침례교 연맹을 분열시킬 뻔 했던 사건으로 1887년 교리적인 문제인 “내리막 논쟁”이 발생한다. 이 논쟁은 당시 침례교 목사들과 교회 및 신학 대학들 가운데 현대 성경 비판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비난했을 때 발생했다. 스펄전은 새로 나온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권위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할 뿐 아니라 칼빈주의 교리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검과 흙손 월간지에 청교도 입장을 옹호하며 “우리 믿음의 적들”을 공격하는 내용의 글을 발표하면서 그는 침례교 연맹을 탈퇴했다. 비록 침례교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복음주의 연맹 회의가 열려 스펄전을 지지할 뿐 아니라 복음의 기본적인 진리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스펄전은 진리수호를 위해 싸웠고 은혜교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불사했다.

  스펄전은 1892년 1월 31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불타오르는 사역을 마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올리브 나무로 만든 스펄전의 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영원히 사랑하는 찰스 하돈 스펄전 목사를 기억하며, 1834년 6월 19일 캘베던에서 태어나 1892년 1월 31일 멘톤에서 예수님 품에 잠들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갈 길을 마쳤으며 믿음을 지켰노라.’

찰스 스펄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1.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Christ-centredness)' 삶이다.
  스펄전은 스스로 고백하기를 "나는 내 스스로를 칼빈주의자라고 말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본질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한다. 스펄전의 모든 고백과 신학 그리고 교리적인 관점은 그의 예수님 중심적인 생각과 삶에서 비롯되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날 부터 스펄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전부가 되었다. 만약 예수님을 향한 스펄전의 이 헌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스펄전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사고는 곧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으로 이어졌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며 순종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따라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실천하며 설교하였다. 성경은 스펄전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스펄전은 사람의 시선을 인식하지 않고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았다.

3. 스펄전이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주는 또 하나의 도전은 그의 목회자상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 떼들을 참 목자와 같은 마음으로 섬겼다. 스펄전은 어디를 가든 어디서 설교를 하든 늘 목자와 같은 마음으로 설교를 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은 가장 중요하였으며 그 영혼을 먹이고 양육하는 것을 스펄전은 사랑하였다. 스펄전의 설교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영혼을 향한 목자의 마음과 사랑이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살리는 설교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설교의 황태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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