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지상에서 가장 미묘한 사명(Maintaining the Proper Relationship)"
3월 25일 이 땅에서 가장 미묘한 사명
요 3:29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선함과 순결은 절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그 자체로 인도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자석과 같아야 합니다. 만일 나의 거룩함이 사람들의 관심을 주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거룩은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에 비정상적인 애착을 유발시켜 그 영혼들로 하여금 곁길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멋진 성도가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그를 위하여 하신 일을 통해 자신만 드러낸다면 그는 예수님께 방해거리일 뿐입니다. 그는 이러한 인상만 남길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정말 멋진 인격을 가졌어.” 이러한 사람은 신랑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다. 이들 마음 속에는 “나는 언제나 계속 흥하여 하고 예수님은 쇠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랑 예수님을 향한 우정과 충성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그 어떤 다른 것 보다도, 심지어 순종할 것을 찾는 것보다도, 주님과 함께 자발적이고 살아있는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가끔 특별하게 순종할 만한 것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때에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주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고 계속 주님과의 활기찬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종종 순종해야 하면 순종하면 됩니다.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대부분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식적인 순종보다 주님과의 관계 유지입니다. – 신랑 예수님과의 친구 관계를 언제나 누리는 것입니다. 종종 기독교 사역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주님께 우리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신랑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대신에 우리는 주의 일을 한답시고 주님의 무기들을 사용하면서 도리어 주님께 대항하여 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3월25일 지상에서 가장 미묘한 사명 Maintaining the Proper Relationship
By Oswald Chambers
…the friend of the bridegroom… —John 3:29
Goodness and purity should never be traits that draw attention to themselves, but should simply be magnets that draw people to Jesus Christ. If my holiness is not drawing others to Him, it is not the right kind of holiness; it is only an influence which awakens undue emotions and evil desires in people and diverts them from heading in the right direction. A person who is a beautiful saint can be a hindrance in leading people to the Lord by presenting only what Christ has done for him, instead of presenting Jesus Christ Himself. Others will be left with this thought— “What a fine person that man is!” That is not being a true “friend of the bridegroom”— I am increasing all the time; He is not.
To maintain this friendship and faithfulness to the Bridegroom, we have to be more careful to have the moral and vital relationship to Him above everything else, including obedience. Sometimes there is nothing to obey and our only task is to maintain a vital connection with Jesus Christ, seeing that nothing interferes with it. Only occasionally is it a matter of obedience. At those times when a crisis arises, we have to find out what God’s will is. Yet most of our life is not spent in trying to be consciously obedient, but in maintaining this relationship— being the “friend of the bridegroom.” Christian work can actually be a means of diverting a person’s focus away from Jesus Christ. Instead of being friends “of the bridegroom,” we may become amateur providences of God to someone else, working against Him while we use His weapons.
“신부를 맞이하는 것은 신랑이지만 신랑의 친구가 곁에 섰다가 그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한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이런 기쁨이 넘치고 있다.”(요한복음3:29)
선함이나 순결은 결코 그 자체가 주의를 끌어서는 안 되며, 단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오는 자석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거룩함이 다른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끌지 않는다면 그것은 순서가 어긋난 성결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온당치 못한 감정과 사악한 바람만 일으켜 다른 목표를 지향하지 못하게 합니다. 믿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않고 그리스도가 그에게 이루신 것만 보여주고 있다면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끄는데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정말 훌륭해 라는 인상만 남깁니다 그것은 참 ‘신랑의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흥하는 것은 그 분이 아니라, 언제나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랑이신 주님께 참된 우정과 충성을 지키려면 양심적이고 살아 있는 주님과의 사귐에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순종을 포함한 다른 모든 일에 우선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히 순종할 일이 없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이 생명력 있는 교제를 유지합니다. 단지 간혹 우리는 순종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위기를 당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삶의 대부분은 순종을 위해 애쓰는 가운데서가 아니라 ‘신랑의 친구’가 되는 교제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일들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빗나갈 수 있습니다. ‘신랑의 친구’가 되는 대신 미숙한 섭리자가 되어, 하나님의 무기를 쓰면서 도리어 하나님을 대항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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