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을 향한 거룩인가, 고집인가?(Holiness or Hardness Toward God?)"

 (주님은 나의 최고봉)


3월 30일 하나님을 향한 거룩입니까 강퍅함입니까?


사 59:16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강퍅하여지는 이유는 우리가 기도할 때 감상적인 관심만 가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한다는 말은 듣기 좋습니다. 기도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면 기도가 얼마나 유익한지를 알려 줍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이 평강을 누리며 우리 영혼이 높은 곳으로 들려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잘못된 기도의 개념에 놀라시는 것처럼 암시하고 있습니다.


경배하는 마음과 중보 기도는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있고 다른 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중보 기도란 우리 자신을 사로잡아 우리의 기도의 대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기도 응답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논리를 펴나갑니다. 당신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논쟁합니까? “하나님, 나는 주께서 이 일을 어떻게 하시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지 않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뵙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은 강퍅하여지고 고집이 세어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간청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져두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 분이 하셔야 한다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러한 기도 자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려고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강퍅하여지면 다른 사람을 향하여도 강퍅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대상을 향하여 그리스도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셨는지 그 마음을 갖고 싶어 주님께 예배하는 마음으로 메어 달립니까? 하나님과 거룩한 관계 가운데 살아갑니까? 아니면 마음이 굳고 고집을 부립니까?


“마땅한 중재자가 없음이라.” 당신 자신이 중재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과 거룩한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실제로 중보기도의 사역을 시작하십시오. 중보기도의 사역은 노동이며 당신의 모든 힘을 필요로 하는 사역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함정이 없는 사역입니다. 복음을 외칠 때는 (사람을 의식하거나 인기를 구하는 등의) 덫이 있을 수 있어도, 중보 기도에는 함정이 없습니다. 


3월30일 하나님을 향한 거룩인가, 고집인가? Holiness or Hardness Toward God?

Holiness or Hardness Toward God? By Oswald Chambers

He…wondered that there was no intercessor… —Isaiah 59:16


The reason many of us stop praying and become hard toward God is that we only have an emotional interest in prayer. It sounds good to say that we pray, and we read books on prayer which tell us that prayer is beneficial— that our minds are quieted and our souls are uplifted when we pray. But Isaiah implied in this verse that God is amazed at such thoughts about prayer.


Worship and intercession must go together; one is impossible without the other. Intercession means raising ourselves up to the point of getting the mind of Christ regarding the person for whom we are praying (see Philippians 2:5). Instead of worshiping God, we recite speeches to God about how prayer is supposed to work. Are we worshiping God or disputing Him when we say, “But God, I just don’t see how you are going to do this”? This is a sure sign that we are not worshiping. When we lose sight of God, we become hard and dogmatic. We throw our petitions at His throne and dictate to Him what we want Him to do. We don’t worship God, nor do we seek to conform our minds to the mind of Christ. And if we are hard toward God, we will become hard toward other people.


Are we worshiping God in a way that will raise us up to where we can take hold of Him, having such intimate contact with Him that we know His mind about the ones for whom we pray? Are we living in a holy relationship with God, or have we become hard and dogmatic?


Do you find yourself thinking that there is no one interceding properly? Then be that person yourself. Be a person who worships God and lives in a holy relationship with Him. Get involved in the real work of intercession, remembering that it truly is work— work that demands all your energy, but work which has no hidden pitfalls. Preaching the gospel has its share of pitfalls, but intercessory prayer has none whatsoever.

Isaiah 59:16 And he saw that there was no man, and wondered that there was  no intercessor: therefore his arm brought salvation to him; and his  righteousness, it sustained him.

“자기 백성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을 보시고 놀라셨다. 그러므로 그가 직접 자기 능력과 의로 그들을 구하실 것이다.”(이사야59:16)


많은 사람이 기도를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강퍅해지는 이유는 기도를 감상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기도 한다고 하면 옳게 들리고 기도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유익하며 기도는 우리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며 영혼을 복돋워 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기도에 대한 우리의 이런 생각에 놀라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배와 중보는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배 없는 중보, 중보없는 예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중보는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도록 더욱 분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 기도가 어떻게 응답 되어야 하는지 하나님께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 이 일을 어떻게 하시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말다툼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지 않다는 표시 입니다. 하느님을 보지 못하면 고집스럽고 독단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요구 사항들을 하느님께 말하며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지시합니다. 하나님을 예배 하지도 않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따르려 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완고해진 사람은 다름 사람들에게도 완고하게 굽니다.


주님과 연합하기 위해 더욱 분발하며 하느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가 중보 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까? 혹시 “올바른 중보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당신이 올바른 중보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거룩한 사귐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중보는 노력입니다. 당신이 가진 모든 힘을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함정이 없는 사역임을 기억하십시오. 복음을 선포하는 것에는 함정이 있지만, 중보 기도에는 어떤 함정도 없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찬송: 예수 귀하신 이름 / 성경 읽기: 창세기 23장, 마태복음 22장, 사도행전 22장 / 설교: 사라의 죽음, 성령의 보증 ...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