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superbia] 뭇별 위의 보좌 [자기 높이기/스스로 하나님 되기/교만의 특징-자기기만, 공동체의 분열, 최후까지 남는 죄...

교만에 비하면 다른 죄들은 벼룩에 물린 자국과 같다. C.S. 루이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다. 교만을 의미하는 라틴어 '수페르비아'(superbia)는 자기 자신을 높이 둔다는 의미이다. 교만한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낫게 여기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존재는 하나님께 수종을 들던 광명한 천사였다. 그는  자기 자리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높이려 하다가 땅에 떨어져 사탄이 되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나라와 왕들은 자기를 높이다가 몰락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세상에서 교만했던 자들은  연옥으로 들어가며, 등에 무거운 바위를 지고 느릿느릿 걷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무거운 바위에 눌려 발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세상에서는 마음이 높아져 눈을 아래로 깔고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던 자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고통의 짐에 눌려 아래만 바라보며 지내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교만의 본질은 마음과 눈을 높이고 자신을 우뚝 세우는 것이다.


   성경에서 교만은 단순히 자기를 높이는 것을 넘어선다. 성경에서 교만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태도라고 가르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첫 범죄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서 자신과 세계를 통치하며 살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창 3:1-7).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의 행동도 다르지 않았다(창 11:1-9). 사람들은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라고 했다. 그들은  바벨탑을 쌓고 성을 건설하여 함께 지내면서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땅의 지배자요 주권자로 살려고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교만이란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하나님의 법도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려 한다. 교만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는 교만을 일곱 가지 대죄 중의 하나가 아니라 일곱 가지 대죄의 뿌리라고 말했다. 교만에서 다른 모든 죄가 나온다는 뜻이다.

   교만은 땅속에 깊이 박혀 있는 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거하기 어렵다. 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싹이 트고 가지가 솟아나듯이, 교만은 다른 대죄들이 제거된 후에도 슬그머니 머리를 들고 나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권력이나 명예, 재물을 얻게 되면 교만해지기 쉽다. 그런데 소위 경건한 자들이 빠지기 쉬운 교만이 있는데 바로 영적 교만이다. 카시아누스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사일수록 특히 영적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엄중히 가르쳤다.

   경건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신자일수록 영적 교만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의 일상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쳤으며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문안받기를 좋아했다(눅 20:46).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금식을 할 때는 일부러 초췌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기의 거룩함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레고리우스는 영적 교만을 '화살'에 비유했다. 화살은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영적 체험을 했기 때문에 자신을 특별한 은혜를 받은 거룩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는 영적 교만의 화살을 이미 맞은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높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은 교만을 제거하고 교만을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그런데 사람은 대개 자기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칼뱅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로 인간은 본성적으로 교만해서 자신이 의롭고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세상의 오염된 도덕적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의 행위를 조명해서 별 문제가 없으면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덜 악한 것은 선한 것이라고 판단해 버릴 수 있다.

   따라서 칼뱅은 사람이 자신을 제대로 보려면,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길은 없다. 절대자이며 전능하신 거룩한 하나님을 보면 그분을 통해서 자신을 알 수 있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인간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인간의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낱낱이 밝혀진다. 마치 한 줄기 빛에 어둠 속 먼지가 생생하게 드러나듯이 말이다. 하나님 앞에 서면 인간은 한갓 지렁이와 같이 누추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사 41:14). 자기의 실상을 보고 알면 인간은 한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우리는 어떻게 해야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할 수 있을까?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며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탁월한 것이 있다면 그 영광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지혜를 거두시면 우리는 무지몽매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하시면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다.

   둘째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낮은 자리를 찾아 앉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정직한 실체를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으로 높은 자리를 피하고 뒷자리에 앉으려는 행동도 중요하다. 생각이 행동을 낳지만 행동이 의식을 낳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말구유에 태어나셨다. 몸을 낮춰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이 높이신다.  

1. 교만 (뭇별 위의 보좌)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다.

교만을 의미하는 라틴어 ‘수페르비아’는 자기 자신을 높이 둔다는 의미로, 자신을 실제 상태보다 더 높이는 것을 말한다.

뭇 사람들 가운데서 우뚝 드러나고 싶은, “잘못된 높임에 대한 욕구’라고 할 수 있다.

교만의 본질은 마음과 눈을 높이고 자신을 우뚝 세우는 것이다.


성경은 교만을 단순히 자기를 높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자신과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태도라고 가르친다.

교만은 결국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과 다름없다.


[교만의 특징]

-자기기만

그레고리우스는 사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자신이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우쭐거리는 것, 즉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적 성격이라고 말했다.


[교만을 이기는 길]

악을 버리는 일에 힘쓰는 만큼 그와 동시에 대응하는 덕을 입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덕이 형성됨에 따라 악이 조금씩 힘을 잃고 물러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람이 자기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참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은 교만의 기초를 제거함으로써 교만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칼뱅- 자신을 제대로 보려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을 보게 되면 그분을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정직한 모습을 노출시키는 해심적인 방법인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실제적인 통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이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악을 동시에 보여주는 거울 기능을 한다.(칼뱅)


공동체 훈련- 공동체 생활에는 공동의 질서와 규율과 특정한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전제된다. 이는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겸손을 비롯한 소중한 덕목을 익히는 데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

공동체 훈련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어디일까? 바로 교회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통해 ‘자기 안’의 삶에서 ‘우리 안’의 삶으로 들어간다.


겸손- 헬라어 ‘타페이노스’ 로 마음이 낮음을 의미.

마음을 낮추기 위해...

첫째,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며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낮은 자리를 찾아 앉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빌2:6-8)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이 높이신다.(눅14:11)

겸손이 주는 값진 보상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평안이다. 겸손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창조하고, 우리로 하여금 고요와 평온을 누리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이다!

신원하 "죽음에 이르는7가지 죄 1장"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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