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Sub] 사도행전 2장 [우리말성경] Acts 2 [예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을 따라 내주셨고 여러분은 법...

오순절 날이 - '오순절'이란 말에는 원래 '제50'의 뜻이 있다. 이 날은 유월절 주
간의 안식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유대인의 3대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
막절 ; 신 16 : 1, 10, 13)의 하나이다(레 23 : 15, 16). 오순절은 유월절 기간 동안
처음 익은 보리 곡식단을 제단에 드린 날로부터 시작하여 밀 추수로 끝나는 49일(7주)
간히 추수 기간 다음 날이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한다(출 34 : 22 ; 신 16 :
10).또한 이 날은 처음 수확한 밀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는 절기이므로 '
맥추절'(출23 : 16) 혹은 '초실절'(출 34 : 22)이라고도 향다. 그러나 1세기경부터 오
순절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데
(Jubilees 1 : 1 , 6 : 17 ; TB Pesachim 68b ; Midrash Tanchuma 26c) 출 19:1에 암
시된 연대를 추론해 볼 때 율법을 받은 날이 오순절날임이 분명하다. 이 절기는 대개
유대력 시반(Sivan)월16일에 해당되는데 현재의 태양력으로는 5월말이나 6월 초순
이 된다. 이 날에 흩어져 사는 모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롑에 와서처음 익은 모맥(牟麥)
으로 떡을 만들어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예표
하는 것이라면 오순절은 신약 시대에 교회의 시작으로 영적 의미를 지닌다.
이미 이르매(* , 쉼플레루스다이)- 이 말의 원뜻은 '가
득 채우다'(눅 8:23) 또는'(시간이) 거의 닥쳤다'라는 뜻으로 본절에서는'오순절 날이
거의 가까워'라는 의미이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앞에서 언급뒤 3대절기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에 올라가서 그 절기들을 지켰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미루어보아 많은 사람들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을 것이며 예수의 제자들은 그
혼잡을 피할 뿐만 아니라 예수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곳에 모였을 것이다. 한 곳에 모인 사람은 열두 사도들과 1:13,15에 언급된 무리
들을 포함하여 상당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로 볼 수 있다(Alfor, R. C. H. Lenski).
그러나 그들이 모인장소에 대해 본절에서는 확실히 언급하지 않는다. 1:13에서는 '
다락'으로만 언급되어 있으나 12:12에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언급
되고 있다. 만일 본절과 1:13 및 12:12의 장소가 서로 일치한다면 일반적으로 알려
진 '마가의 다락방'이란 표현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모인 모든 무리들은 주님의 명령
(1 : 4)을 따라열심으로 기도하면서 성령 강림을 기다렸던 것이다.

=====2:2
홀연히 하늘로 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 2-4절에는 성령 강림이
세가지 징표(徵表)로 나타난 것으로 기록한다. 곧'바람'과 '불'(마 3 : 11, 12)과 '방
언'인데 이것들은 모두 유대인들이 전통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표시로
여겨졌다. 본 구절에는'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성령의 임재가 상징적으로 표
현되어 있다. 여기서 '바람'이 성령의 임재하심에 대한 징표로서 나타난 것은 어원적
으로 볼 때 '영'(* , 프뉴마)이라는 단어가 '바람'(* , 프노
에)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음 수 있다.이러한 연관은 예수가 니
고데모에게 중생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도 발견된다(요 3 : 8). 또한 구약 에서도 하나
님의 임재를 '바람'으로 표시한 곳이많이 있는 것을 볼 때(왕상 19 : 11 ; 시 104 :
4)이연관이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사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람 같
은'이라했기 때문에 바람과 성령이 동일하다는 의미는아니다. 다만 '하늘로부터 급하
고 강한 바람 같은소리'는 성령의 능력과 그의 오심의 충만함가리키는 것이다
(Stanley D. Toussaint). 뿐만아니라 이 말은 제자들이 지금까지 체험하였던것보다 더
친밀하고 인격적이며 강력한 방법으로성령께서 임재(臨在)하셨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Richard N. Longenecker).
저희 앉은 온집에 가득하며 - '온 집'은 헬라어 본문상으로 '그온 집'을 말한다.
이것은 이미 한 번 언급된 집을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1 : 13, 15 등에서
말한 집을 지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집'을 혹자가 주장하듯이 성전의 집(성전
안에는 30개의 홀이 있었음)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Bengel, Bruce)세심한 관찰력과 주
의력을 지닌 의사인 누가가 '성전'(* , 히에론)이란말을 왜 언급하지 않았
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따라서 이 '집'은 앞서 언급한(1 : 13, 15)'그 집'을 가
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Alford , Knowling, Hervey, Toussaint).

=====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 '불의 혀'는 성령의 임재를 묘사한다. 이와 괸련
하며 구약에서 여러 번 하나님의 임재를 불로 표현한것을 볼 수 있다(출 3 : 2-5;
13 :21 ; 24 : 17 ; 40 : 38).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은 성령의 오심을 불과 밀접하게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마3 : 11 ;눅 3 :16). 여기이서 '불의 혀'란 실제로 불이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불'구약 시대에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
력과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상징한다(Blaiklock, Ralph
Earle). 그뿐아니라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한다(창 19 : 24 ; 레 10 : 2
; 민 16 : 35 ; 왕하 1 : 9-12 ; 사 47 : 14).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임하여 있더니 - 커다란 불덩어리 같은 것이 불의혀같
이 나타나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했다.이것은 약속된 주의 성령이(1 : 4 ; 요 14 :
16-21,26 ; 15 : 26, 27 ; 16 : 7-15) '각 사람'위에 임했다는 사실로 요엘 선지자
의 예언(욜2: 28-32)과 예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성위되었음을 보여 준다. 구약의
옛 언약하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한정(限
定)되었으나(민 11 : 26-19 ; 삼상 10 : 6-12) 이제는 예수를 믿는 모든 무리 가운데
성령이 임하셨다. 이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각양 은사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것을 암시한다.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성령의 충만함은 성령 세례와는 다른 것이다.
성령의 충만은 여러 번 되풀이 될 수 있어서 구원의때 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일어
날 수 있다(4 : 8, 31 ; 6 : 3,5 ; 9 : 17 ; 13 : 9,52). 그러나성령의 세례는 구원의
순간에 모든 믿는 자들에게 단회적(one for all)으로 일어난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이
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의 경우그의 서신에서 성령의 충만에 대해 꼭 한 번만(엡5
: 18)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그가 성령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는, 이른 바 성령장
이라고 할 수 있는 롬8장 에서도 성령 충만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특
이한 현상이라 할수 있는데 바울은 오히려 성령의 인도나 지배(롬8 : 5, 9, 11, 14 참
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뿐이다. 따라서 그는 성령의 인도나 지배를 받는상태를 성령
의 충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내주하신 성령(롬 8 : 9 ; 고전12: 3)의 지배와 인도함을 받는 어떤 상
태를 말하는 것이지 공간적으로 성령이 채워지거나 다시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하나님은 바벧
탑의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의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흩어버리셨다(창11 : 1-9).
제자들이 성령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말하게 된 이 사건은 혼잡케 되었던 언어가 다시
회복된 것으로서 새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주님의 부활의 소식이
우주적 로 확산(擴散)될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메이어(Meyer)외에 많은 비평학자들은
오순절 체험이 비역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본절과 같은 이적을 저자가 미화시킨 것
으로 주장한다(Bauer, Schnekenburger. De Wette).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본서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누가의 의도적 편집에 의한 것으로 았던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이
견해를 따르게 되면 결국 본서가 바울이라는 인물을 부각시키고 미화시키기 위한 전기
biography)에 불rhk 며 결코 영감받은 책이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비평주의자들의
견해는이런 면에서 배격되어야 한다. 한편 이 구절에서 성령의 세례를 말하지 않고 오
히려 성령의 충만을 말하지만 이미 1 : 5에서 성령의 세례를 예언했고 또 11 : 15,
16에서는 성령 세례가 오순절에 일어났다고 회고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오순절
에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사건이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
사건이 교회가 세워지기 위한 처음의 특수한 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자들
에게 성령세례의 증거는 방언이었다. 그들은 성령을 받고 자신들이 아직 배운 바가 없
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다른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했다. 이것
들은 성령이 그의 경륜에 찬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강림한 증거들일 뿐 일반적이며
영속적인 은사는 아니다.

=====2:5
그 때에 - 이 시점은(1)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을 지칭할 수 있고 (2)성령 강림의
때를 의미할 수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
다.
경건한 유대인이 - 누가가 '경건한'(* , 율라베스)이란 뜻 으로
사용한 이 말은 신약에서 유대인들에게만 사용되고 있다(8 : 2 ; 22 : 12 ;눅
2:25).유대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경건하게 살아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
기 때문에'경건한 유대인'이란 표현은 이방인들을 가리켜 경건하다고 할 때(10 : 2)
사용되었던 말과 전혀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절에서 이표현은 오순절과
그 규례(민 28 : 26-31)를 지키기 위해 모인 유대인 중에서 율법을 잘 준수(遵守)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 유대인 중 다수가 바벧론에 의
해 남쪽 유다가 멸망당한 후(B. C. 586)각국에서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 약 1 : 1 ; 벧전 1: 1)였다.한편 '우거하다'(*
, 카토이쿤테스)는 말은 보통 한곳에 머물러 사는것을 뜻한다. 특히 헬라어 본문
의 9절에서 각 지역에'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이 말이 사용된것을 볼 때.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에 거주했던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De Wette). 그러나 8-11절의 내
용이 외국에 거주하던 '디아스포라'암시하므로 오순절의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일시적
으로 온 나그네였을 것이다(Meyer, Alfoed, Knowling, H. Marshall).

=====2:6
이 소리가 나매 - 이 소리는 바람 소리(2절)인지,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4절)인지
주석가들 간에 견해가 각기 다르다. 그러나 ' 소리 '를 뜻하는 헬라어 '포네'(*
)가 보통 인간의 소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후자가 더 타당하다(Black, Marshall, Lake,
Neil, Bruce).
큰 무리가 모여 - 이는 4절의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큰 무리가 모
여들었던 것을 뜻한다(Robertson).이로 보아 제자들이 머물러 기도헹던 장소가 예루살
렘 성 안에서 많은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 위치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 '듣고'(* , 에
쿠온)란 미완료시상으로서 무리들이 소리를 들은 시각이 한참 방언하고 있을 때였
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제자들이 방언이 다락방에서 처음으로 일어났고 주
변의 골목과 안뜰에서 계속 일어났으며 마지막에는 예루살렘 성전 경계 지역까지 퍼져
나갔던것을 암시하여 주고 있는 듯하다(Richard N. Longenecker). 따라서 제자들의 방
언은 잠시 동안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 되었을것이다.여기에서 '방언'(*
, 디알려토스)은 '자신들의 언어'(NIV, NASB)로서 고전 14장에 언
급된 성령의 은사(恩賜)인 방언은 아니다. 각 사람은 자신들이 거주하던 나라의 언어
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2: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 '놀라'(* , 여시스탄토)란 말의
원뜻은 '어떤 장소에서 떠난다'는 뜻인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놀라움을 의미한다. 또
'기이히 여겨'(* , 에다우마존)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그 놀라움이
점점 커져서 어떤 사건이 뜻하는 바를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표현이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는 제자들이 갈릴리사람(1 : 11)인데다가 또 배우지 못한 자들이면
서도 그와 같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심히 놀란 것이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 이 첫째 질문은 제자들의 출신
에 관한 것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언어 구사력(驅使力)이 없는
무식한 자들로 여겨졌으므로 나다나엘도 빌립에게 갈릴리에 속한 동네 나사렛에서 선
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요1 : 46). 그렇기 때문에 제
자들이 다른 나라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모여든 사람들은 놀라움을 표시
할 수밖에 없었다.

=====2:8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것 - '각 사람의 난 곳'은 9-11절에 기록되어
있는 곳을 가리킨다.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 - 이사람들은 유대의 동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그리고 이들 지역은 과거 앗수르인들이 북쪽 이스라엘의 열 지파로부터 포로로 잡
혀온자들을 이주시켰던 지역으로(왕하 17 : 6) 가장 먼저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
인들이 생겨난 곳이었다. 그 후에도 느부갓네살 시대에 유다의 포로들로 말미암아 그
수는 더욱 증가되었다(단 1 : 1, 2)그들은 나중에 바사 왕국이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팔레스틴으로 귀환(歸還)하지 않고 살던 곳에 머물렀다. 이 지명에 대해서는
서론지도 '1세기의 근동' 을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우리'는 바대와 메대 그리고 엘람
이란 곳에 사는유대인들인지 아니면 그곳에 살면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인지
분병하지 않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곳에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추정한다
(Bruce, Ralph Earle, Hervey, W. Neil). 그러나 10절 하반절의 진술로 미루어 보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뿐 아니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추정된
다.
또 메소보다미아 - 티그리스 강과 유브라데 강 사이의지대로 비옥한 초생달
지역(Crescent)으로 잘알려져 있다. 유대인들은 그 지역에 자리잡고있던 바벧론 제
국에 의해 B. C. 589년 이후에 포로로 잡혀가서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메소보다미아와 그 인접지역에 정착해 살던 유대인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언급하였다.

=====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 아시아와 가바도기아의 중간에 위치한 로마의 행정 구역이
었다.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 유대인들은 B.
C. 6세기초엽부터 계속 애굽에 거주해 왔다. 예수 당시 애굽에는 유대인이 백만 명
가량 살았는데 알렉산드리아의 다섯 구역 중에 두 구역의 전 주민이 유대인이었다고
한다(Philo, on Flaccus 6, 8).애굽의 톨레미 1세(Ptolemy )는 그의 왕권을 안전하
게 지키기 위하여 많은 유대인들을 구레네에 정착시켰는 그때에 구레네에 가까운 리
비야의 여러 지방에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6 : 9 ; 11 : 20 ; 13 : 1).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 '유대인과 유대교
에 들어온 사람들'은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와 동격(同格)으로 봐야 할 것이다(R. C.
H. Lenski). B. C.2세기 경에 로마에는 유대인 거주지역이 있을 정도로 많은 유대인이
있었다. 본문의 사람들은 B. C. 62년에 폼페이(Pompeii)에 의해 포로로 잡혀왔다가 후
에 자유케 되었던 자들로 볼수 잇다. 본절에서 로마에서 왔던 사람들 중에 나면서 부
터 유대인들이었던 사람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둘다'(NVI와 NASB 는 both를 사용함)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로마에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는 유대인의 활동이 상당히
봤발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 이란 곧 재종자로 말하는
데 유대인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고 그들의 의식을 준수한다는 점에서 유대인들과 교
제를 누리도록 허용된 이방인을 가리킨다.

=====2:11
끄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 그레데는 발칸 반도 남방의 섬이고 아라비아는 홍
해에서 유브라데에 이르는 지역, 곧 시리아와 팔레스틴 동쪽 지방에 있는 나바티안 왕
국(the Nabataean)을 가리킨다. 누가는 지금까지 15개국(또는 지방)에서 살던 유대
인 또는 이방인 개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였던 것을 일일이 열거했다. 서론리 지도
를 통혀여 보는 바처럼 열거된 그 나라들은 당시 지중해를 중심한 근동과 유럽지역에
까지 획장되어 있었다. 이것은 앞으로 복음이 이처럼 세계 각국에 각 나라의 말로 전
과될것을 상징하는 것이다(4절 ; 창 11 : 1-9 참조).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 이 말은 8절에서말했던 것을 다시 강조한 말이
다. 그 강조점 소유격 '우리의' 란 말에 있다(R.H.Lenski).'우리'가 각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 모두를 지칭하므로, 본절에서는 그들이 속
한 지역의 방언을 강조하기 위해'우리의'란 소유격이 첨가되었다.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 여기에서 말한 '하나님의 큰일을'(*
, 타 메갈레이아 투데우)이란 그리스도의부활과 같
은 특별한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하셨던 구
원의 전 사역에 관한 것을 말한다(H.Bavinck).사도들은 성령이 부어지자마자 모든 사
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사
도들에게 성령부어주시사 이 큰 일을 깨닫고 자랑하며 하나님께감사하고 찬양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러한 이적(異蹟)은 이미 예수가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것으로(요 16
: 13. 14) 본절에 특별히 언급되어 약속의 성취를 보여준다.

=====2: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 '의혹하여'라는 말은 '완전히 당황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디아포레오'(* )의 미완료형으로 신약성경에서 누가
만 사용한 독특한 용어다(5 : 24 ; 10 : 17 ; 눅 9 : 7 ).이 동사의 시제가 암시하듯
이 그들은 계속해서 놀라고 당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어찐 일이냐 하며 - 모여든 무리들은 사도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의심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보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 조롱하는 어떤 이들이 있었음을 볼 때 부정적인 시각을 사람
들도 상당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13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 '어떤 이들'이 9-11절에 언급된 사람들을 가리
키는지 또는 그외 다른사람들을 가리키는지 명확지않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팔레스
딘 지역에거주하는 유대인들도 그 곳에 많이 왔을 것이다(14절). 따라서 누가는 조롱
한 자들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방언하는 소리를 들은 불특정인임을 지칭하기
위해 단순히 '어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 바울이 아덴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주제로 전
도하는 것을 듣고 기롱한 사람들이 있었다(17:32).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인들이 방언으로 말하면 '미쳤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고건 14 :23). 이처럼 '자연
인은 저들의 무지와수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초자연적인 사실을 자연적인 원인으
로 돌리는 법이다'(Bengel). 한편 '새 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글류코스'(*
)로 '감미로운'을 뜻하는 '글뤼퀴스'(* )에서 파생된 용어다. 본래
'글류코스'는 발효(醱酵)되지 않은 포도즙을 의미했다. 본절에서는 아마 발효되기 시
작한 감미로운 포도즙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2:15
제 삼시니...취한 것이 아니라 - 유대인들은 낮의 시간,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
까지를 열 둘로 나누었다. 제 삼시란 아침 9시로 유대인들의 기도 시간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 시간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살전 5 : 7).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Josephus) 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제 4시까지는 식사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2:16
이는 곧 선지와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 이 구절은 요엘의 예언(욜2 :
28-32)이 성취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요엘서의 예언 부분들을 상세하게
해석 하고자하는 시도가 없이 그 예언 성취 자체에만 모든 강조점을 두고 있다. 또한
베드로는 신약의 모든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전형적인 인용의 기본형태, 곧'이
것이...이다'(* ,투토에스틴)라는 방법을 따라 요엘서를 인용하
고 있다.

=====2:17
하나님이 가라시대 - 베드로 자신이 인용한 구절들의 중요성과 엄숙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기 위하여 이말을 사용했다. 본
구절 이후에 인용된 구절들이 약 800여 년 전에 주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라사대'
란 동사를 현재형으로 표현한 것은 그 예언이 불변(不變)의 진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말세에 - 욜 2:28의 맛소라 본문(MT. ; 욜 3:1)이는 '이후"(* , 아하
레이 켄)로, 70인역(LXX ; 욜 3:1)에는 '이(일)후'(* , 메타 타우
타)로 표기되었으나 베드로는 "말세'라는 표현으로 대체시켰다. 유대인들의 말세란 엄
밀히 말해서 메시야가 오시는 때를 가리킨다(사 2 : 2 ; 미 4 :1).베드로가 이 말을
오순절날에 임한 성령 강림과 관련하여 사용한 것을 볼때 이 말은 그리스도의 초림
에서 재림까지를 지칭하는 종말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종말 개념은 신약 시대에
와서 생겨난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내가 내 영으로 - 이 말은 원래'내 영으로부터'(*
,아포 투 프뉴마토스무)란 의미로 70인역(욜 3 : 1)의 인용구다. 이는 성
령을 각 사람에게 부어 주실 것을 가리킨다(딛 3 : 6).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 "모든 육체'란 '모든 사람'을뜻한다. 모든 사람이
흩어진 유대인들만 가리킨다는 견해(Knowling) 가 있으나 이는 타당하지않다. 그 이유
는 본서의 전체적인 문맥에 비추어볼 때(10 : 45참조) 오순절 성령 강림이 복음의 우
주적인 확산을 상징하는 사건일 뿐 아니라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준다는 말은 이후
에 있게 될 성령의 보편적인 강령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
는 모든 육체란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Meyer).지금
까지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위해서 유대 지역에서 제한적(制限的)으로 활동하셨으
나 오순절 이후부터는 온 세상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셨다.
너희의 자녀들은...꿈을꾸리라 - '예언', '환상', '꿈'은 모두 구약 시대에 어떤
특수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 방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오순절을
기점으로 하여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신약 시대에서는 모든 사람이
성령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는 모든 사람이
믿음을 통하여 성령을 부여받으며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야말로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이며 그것은 모든 교회를 위한 것
이라고 한다(Grosheide).

=====2:18
남종과 여종 - '종'에 해당하는 엘라어 '둘로스'(* )는 히브리어 '에
베드'(* )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말은 구약에서 '사환'(使喚)을 의미하
는 '타아르"(* )와는 달리 주인의 재산 일부로서 간주된 '노예'(slave)에 해당
한다. 그렇기 때문에 '둘로스'는 주인에게 충성과 헌신을 다해야 했다. 본절에서는 하
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성도를 가리킨다. 예언할 것이요. 이 표현이 요앨서에서는 나타
나지 않는다. 아마 베드로가 앞 부분과 문장구조를 맞추기 위해 삽입시킨 것으로 추
정된다.그래서 베자 사본(D)과 터툴리안(Tertullian)은 이 단어를 생략했다.

=====2:19
기사와...징조를...피와 불과 연기론다 - 혹자는 본 구절과 다음 구절에 묘사된
자연계의 기사와 표적들이 베드로가 설교할 당시의상황에서는 무리들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작용될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를 통하여 여러가지 초자연적인
기사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잠시 해가 어두워진 사실을 예
루살렘 사람들이 목격한 지 불과7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F.
F. Bruce) 따라서 이러한 기사와 징조는'여호와의 날'의 도래에 대한 표시이며 이 날
은 심판의 날 곧 "마지막 날'인 동시에 보다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초대 교회 당시를 포함한) 모든 날들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성경 본문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눅21 : 25 - 28)오히려 본절의 표현은 마
지막 날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묘사로 이해됨이 무난하다. 한편 '기사'와 '징조"
란 다같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표시하는데 전자는 주로 하나님의 이적적 권능
(wonders)을 나타내고 후자는 장래 일어날 일이다.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표시(sign)을
가리킨다. 이 '기사'와 '징조'는 '피와 불과 연기'라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설명되고
있다.

=====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 '영화로운'(* , 에피파네)은 그리수
도의 재림에관하여 사용된(살후2 : 8 ; 딤전 6 : 14 ; 딤후4 : 1 ; 딛 2 : 13) '타나
나심'( 8 ,에피파네이아)과 동일한 어근을 갖는다. 따라서 본구절
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표현으로서(고존 1 : 8 ; 고후 1 : 14 ; 빌 1 : 10 ; 살전 5 :
2)심판과 동시에 구원이 완성되는 날을 말한다. 이 '주의날'은 구약에서도(사 13 : 10
; 암 8 : 9 등)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예수께서도 세상의 종
말과 관련해서 언급하신(마 24 : 29)것이다.

=====2:2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 사람이 주의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여기서 '부른다'는 표현을 '기도'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본절에서 '부른다'는 표현은 '믿는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롬 10
: 13, 14).

=====2:23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 '정하신'(* , 호리스메
네)이란 '고정되어진, 결정되어진'의 의미로 하나님의뜻을 영원 속에 두었다는 말이
다. 이는 하나님이 영원 속에서 예수를 통한 구원 계획을 가지셨다는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인간에의해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대인의 악한행위가
하나님의 영원 전에 세우신 계획을 바꿀수 없었던 것이다.
내어준 바 되었거늘 - '내어준바'(* , 에크도톤)는 동사적 형용사
로서 수동분사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이에대해 혹자는 이 표현이 유다에 의하
여 내어준 바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Robertson). 그러나 오혀려 본절에서 베드로는
내어준 자에 단순히 유다만 포함시키지 않고 예수에 대해 거짓 증거하고 조롱했던 유
대인들도 포함시키고 있는듯하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 이표현은 팔레스틴의 로마 당국자들을 가리키
는데 그들은 유대 당국자들에 의하여 선동(煽動)되는그대로 실행하였던 자들이다
(Richard N. Longenecker). 유대교 문헌에서는 이방인들이 '악한자들'(고전9 : 21)로
서 종종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고의로 죄를 짓는다거나 또는 단순히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못박아 죽였으나 - 독자들은 그곳에모인 자들 모두가 예수를 못박아 죽인 것처럼
베드로가 표현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그러나 실제로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
수의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그렇게 표현한 것은 예
수를 죽음에 내어주어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개개인의 죄가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의
죄였기 때문이다.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 본문에서는 예수의 부활이 법 없는
자들의 어떤 행동과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엡 1: 19,20)을 따라 되
어진 일임을밝혀주고 있다. 예수의 부활은 본서에서 핵심되는 주제이다(32절 ; 3 : 15
; 4 : 10 ; 5 : 30 ; 10 : 40 ; 13 : 30-34, 37 ; 17 : 31 ; 26: 23) 여기에서 '사망
의 고통'은 히브리어의 배경에 의하면 사냥꾼들이 포획하기 위하여 놓은 덫과 같은
'죽음의 덫', 혹은 '매는 줄'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나
죄가 없으시므로(히 4 : 15 ; 9 : 28 ; 벧전 2 : 21 ; 요일 3 : 5) 그 사망의 올무에
매여 있지는 않으셨다. 그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것이다(고전 15 : 4-6).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수 없었음이라 - 이 구절은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이다(요 20:9). 사망조차 예수 위에 왕노릇 할수 없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베드로는 예수가 항나님의 아들되신 권위를 입증하고자 했다.

=====2:25-28
베드로는 자신의 주장을 확증하기 위하여 구약의 시편(16: 8-11)을 인용한다.이는
자신이 8절에서 예수에 대하여 말한 바를성경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시 16:
8-11은 대표적인 메시야 예언에 대한 기록 중 하나로서 메시야의 부활(復活)에 대한
내용을 담고있다. 그는 이 예언의 말씀을 들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
사렛 예수가 바로 메시야인 것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베드로의 이와같은 논중은 예수
자신에 의하여 세워진 해석에 기초하고(막12: 35-47 참조), 부활 이후의 기독교 전통
에도 부합되며, 또한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인용되었던 미드라쉬의 제반 해석 방법과
도 일치되게끔 표현된 하나의 논증이다(Richard N. Longenecker). 이 부분의 각절 주
석은 본서의 시편 주석을 참조하라.

=====2:29
형제들아 - 이 말은 헬라어 본문에 따라 직역하면 '사람 형제들아'라는 말이다.
이는'유대인들아'(14절)라는 말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아'(22절)라는 말보다 친근감있
는 표현이다.베드로는 이제까지 인용한 구약의 맡씀에 대한 결론을 말하려고 공손히
청중들의 주의를 끌고있다.
내가 조상 다윗에 대혀여 담대히 말할수 있노니 - 여기에서 "말할 수 있노니'란
헬라어 본문에 따르면 '말하게 허락하면'의 뜻이다. 흠정역(KJV)에서는 이를 잘 반영
하여 '나로 말하게하라'(Let me speak)고 번역했다. 여기서 베드로는 '조상 다윗에 대
하여' 말할 때 자신이 청중들과 형제로서, 이스라엘의 왕통의 선조로서존경받는 다윗
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공손한 태도를 나타냈다.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 다윗의 묘는 실로암
못 남쪽에 있었는데(Bruce)현재는 예루살렘 마가의 기념교회 가까운곳에 다윗의 무덤
으로알려진 유대교의 성기가있다고 전해진다. 다윗은 이처럼 죽어서 그 무덤이 오늘날
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앞서 인용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을을 당치 않게 하실 것'이
란 구절은 자신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었음이 분명하다. 역
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다윗의 묘는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있었으며 그 중에 하
나는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에 의해 3,000달란트의 돈이 도난당했으며 그후 헤
롯에 의해 다른 방도 도굴(盜掘)되어 더 많은 돈이 도난당했다고 전해진다.

=====2:30
그는 선지자라 - 다윗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메시야에 대해 예언했기 때문에 선
지자였다(삼하23:2;마 22:43). 비록 구약에서 그가 예언하는 무리 중에 포함되어 예언
한 적은없으나 자신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을 미리 알고 예언했으므로 영감
받은 선지자 중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하심을 알고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처음 하신약속은
삼하 7:11-16에 기록되어 있다. 그 본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맹세'에 관한 표현은 나
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 89:3,35에서는 '내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나의 거룩
함으로 맹세하였은즉...', 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
하신 말씀들은 하나님 자신의 신실성과 거룩함에 근거하여 영원 불변한 서약으로 맹세
하신것을 알수 잇다.

=====2:31
미리 보는 고로...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 이 구절은 이미 인용된(27절) 시 16:10
에 대한 해석이다. '미리본다'는 것은 선지자로서 계시와 영감을 가지고 행하는 것을
의한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선지자는 예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를 단순히 예언자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윗
은 장래에 될 일을 미리보고 예언한 예언자이면서 영감받은 시(詩)를 많이 써서 하나
님을 찬양한 선지자였다. 다만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과 관
련된 다윗의 선지자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 베드로는 이미 22절에서 '예수'를 언급했으며
그 다음부터 예수에 대해 적용된 예언을 설명했으므로 본절에서 '이(사람을)'(*
,투톤)라는 표현을 사용할수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를 사용함으로써 다윗에 의
해 예언된 메시야가 바로 '예수'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베드로는 자
연스럽게 예수의 부활이 예언의 성취임과 역사적 사실임을 강조했다.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로다 - 본 구절의 헬라어 본문에 관계대명사 '후'(* )
가 사용되어 해석상의 문제를 야기 시킨다. 즉 본 구절은 이 관계대명사의 선행사(先
行詞)가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1)하나님 : 이에 따라 본문을 직역하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증인이다.' 벴겔(Bengel)같은 학자들이 이해석을 지지한다.
(2)앞절 전체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를 받는 것으로 이해하여 개역 성경
처럼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Meyer, Lenski, Bruce, Ralph Earle). 대부분의 영역 성
경도 이번역을 취한다. (3) 예수 : '우리 모두가 예수의 증인이다' 란 의미가 된다
(Alford, Knowling).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강조하여 설교하고 있으므로 '예
수'아 '하나님'을 선행사로 취하는 것보다 앞절 전체를 선행사로 보는것이 가장 무난
하다. 따라서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모든자들이 부활에 대한 증인임을 진술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사도들의 중심 메시지였고, 그들은 본절 외에 네 차
례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들이라고 강조했다(3 : 15 ; 5 : 32 ; 10 : 39-41 ; 13
: 30,31).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것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 여기에서 '오른손으로"란 하나님의 전능
과 그의 권능을 상징하는 말이지(엡 1 : 20 ; 히 1 : 3 ; 8 : 1 ; 10 : 12 ; 12 : 2
벧전 3 : 22 비교)승천한 예수의 위치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다. 물론 허비
(Hervey)는 '오른손으로'를 '오른편에'로 해석하여 예수가 승천하여 하나님의보좌 우
편에 계시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주장은 여격이 장소로의 의미보다는 방법의
의미를 나타내므로 타당하지 않다. 한편 '높이시매'라는 말은(3 :13 ; 빌 2 : 9)그리
스도의 몸의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영광스러움을내포하는 말이다. 이것은
신학적인 용어로 예수의 승귀(昇貴)라 칭한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1 : 5 ; 요 14 :
16 ; 16 : 13)을 아버지께 받아서 보내는 권능을 얻었다'(1 : 8 ; 요 14 : 26 ; 15 :
26 ; 16 : 7)는 표현은 성경의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다.이처럼 성령은 성부께로부터
나와서 성자를 통해오시는 것이다. 여기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는 종교
회의의 결정이 비롯되었다(니케아 신조).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 무리들이 보고 들은 것은 성령이 임했을 때 일어났던 현
상에 대한 것으로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3절)과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2절)와 백이십 명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4절)을가리킨다.
부어주셨느니라 - (* ,여세케엔). 이 말은 '에크케오'(*
,쏟아버리다)의 부정과거형으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셨음을 보여주고 있
다. 동시에 이 말은선지자 요엘에 의하여 사용되어진 표현으로(17절)그의 예언이 여기
에서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 그는 죽어서 장사되었고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당시에 그의 무덤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었다.그리고 그의 육체는 무덤에서 썩었
고 승천하지못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지금 인용할 이 시는다윗 자신에 적용시킬 것
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었다.
주께서 내주에게 - 이 구절은 시 110 : 1의 인용으로 후기 유대교 시대에 유대교
해석자들이 난해한 문제로삼았던 구절이다. 문제는 '내 주'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
제인데 몇몇 고대의 랍비들은 이시편을 아브라함과 관련지어 해석했고, 또 어떤사람들
은 다윗과 관련지어 해석했으며 심지어는 히스기야 왕과 관련지어 해석할 자들도 있었
다.그리고 기원후 약 7년이 될 때까지 랍비 문헌에서 이 시편 110편이 메시야를 의미
하는 것으로 해석된 확실한 중거도 없다(D. M. Hay)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시
110: 1을 메시야에 대한예언으로 해석하여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適用)시킨 적이 있다
(마 22:41-46 ; 막 12 : 35-37 ; 눅 20 : 41-44).베드로는 이 시편이 메시야에 대한
예언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언급했다.

=====2:35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 바울이'모든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2
:10)라고 가르친 적이 있듯이 '발등상 된다"는것은 항복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자세
한 내용은 시 110 : 1 주석을 참조하라.

=====2:36
그런즉 이스리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 베드로는 본문에 이르러 예수를 주와 메
시야로 선포하여 자기 설교의 절정이자 결론에 도달했다. '온 이스라엘'(*
' ,파스 오이코스 이스라엘)이란 문자적으로는 "이
스라엘의 모든 집'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매우 강조적인 표현으로 이스라엘 전
민족 또는 종교적 공동체를 가리킨다.
너희가 십자기에 못박은...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 예수는 자신의 메
시야 직분을 공생애를 통하여 죽기까지하심으로 완전히 성취하셨고 또한 하나님에 의
해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므로 '주와 그리스도'란 칭호
가 그에게 참으로 합당한 것이다. 또한 이 칭호가 그에게 합당한 이유는 신약의 다른
여러 곳에 나타나는 기독론적인 진술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롬 1 : 4 ; 빌 2 : 9-11
; 히 3 : 14 ; 요일 5 : 6).특별히 이 '주와 그리스도'라 는 칭호는 바로 베드로의 메
시지의 제목이요 초대 교회 신앙 고백의 내용이었다(롬 10 : 9 ; 고전 12 : 3). 한편
여기서 그리스도에 적용되는 주(* , 퀴리오스)는 아마 구약의 여호와와
일치되는 표현이다. 즉 34절에 인용된 '주께서'가 시 110 : 1에 서 '여호와께서'로 언
급되었으며 70인역(LXX)에서 '퀴리오스'로 번역되었다. 또한 '여호와'란 표현을 70인
역은 거의 대부분 '퀴리오스'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베드로는 구약의 '여호와'와 '
예수'를상호관련시키고 있는듯하다(Stanley D. Taussaint). 또한 베드로는 설교 속에
서 '주'란 표현을 예수와 하나님께 동시에 적용시키고 있다(21,34,39절). 그러므로 여
기에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강조적인 표현이라 할수
있겠다. 이 ' 주와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최고의
능력과 영광으로 유대 민족을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모든 민족 위에 높여주는 정
치적인 위대한 통치자로서의 주와 그리스도, 곧 메시야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에 따
라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메시야 사상과 부합되지 않게 가르치며 활동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 '찔려'(* , 카테뉘
게산)라는 동사는 '때리다' 혹은 '격하게 찔러 관통하다','실신시키다'의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격심한 마음의 염려와 양심의 가책이 엉켜진 매우 심각한 고통
을 의미한다. 호머(Homer)는 '발굽으로 땅을 옴푹 패게 한다'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
내면적 의미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아무튼 무리들이 '마음에 찔렸다'는 것은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이성적인 죄책감(罪責感)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Alexander). 이처럼 제자들 속에 역사하신 성령은 예수의 예언대로(요 16 : 8-11)그
들의 죄를 책망하는 일을 행하신 것이다. 무리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경청하고 나서 저
희의 유일한 소망이며 오랫동안 고대하던 그 메시야를 스스로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박
아 죽였다는 것을 깨닫자 몸서리치도록 놀라며 '마음에 찔린' 것이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 - 베자사본과 몇몇 서방 본문들에는 '다른 사도들'이란
말에서 '다른'이란 형용사가 생략되어 있는데 이것은 베드로를 사도들과 특별하게
구별하기위한 의도적인 생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다른'이란 표현이 삽입되면 베
드로와 같은 사도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생략될 경우 베드로가 사도들보다 우월한 어떤
권위를 지닌 인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누가가 강조하고있는 것은 초대 교회 안
에서의 사도들의 주도권이지 베드로 자신의 주도권이 아니다(Richard N.Longenecker).
사실상 누가는 그의 복음서와 본서에서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베드로를 사도들 가
운데서 으뜸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도들의 대변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우리가어이할꼬 - 이 물음은 필사적(必死的인 부르짖음이었다(16 : 30). 바울도
회개할 때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22 : 10).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애통하
면서 사도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제 성령의 지시를 기다리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회개하다'는 마음의 완전한 변화와 죄의 고
백을뜻한다. 마음의 변화란 전인격에 대한 것으로 죄와 불신에서 떠나 그리스도에
게 향하는 인격그리고 신앙과그리스도를 통한 성결로 나아가는 인격에로의 변화를 의
미한다. 이러한 회개의 메시지는 본서에 여러 번 반복되었다(3 : 19 ; 5 : 31 ; 8 :
22 ; 11 : 18 ; 13 : 24 ; 17 : 30 : 19 : 4 ; 20 : 21 ; 26 : 20).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 이 말은'너희
들 한 명 한 명이 각각 세례를 받으라'는뜻으로 여기에서 맡하는 세례는 유대교에서
시행해왔던 회개와 사과의 외적 상징으로서의 물세례(13 : 24 ; 18 : 25 ; 19 : 3 ;막
1 : 4)와는 판이하게 구별되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말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으로 받는 세례일 뿐아니라 성령을 받는 일과 관련된 세례이기 때문이다. 한편 '
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은 나머지부분과 연관해서 여러 견해가 나올 수 있다. (1)회개
와 세례가 사죄의 요인(要因)이 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구원을 받기 위해
서는세례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다.
성경은 어디서나 죄사함 곧 구원은 오직 믿음에 기초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요
3 : 16 ;롬 4 : 1-17 ;11 : 6 ; 갈 3 : 8-9 ; 엡 2 : 8, 9). (2) 죄사함의 근거로 세
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이 구절에서 사용되는
전치사(* ,에이스)는 '근거하여'라고 번역된다. 따라서 이 구절을 번역하면 '세
례를 받으라...너의 죄사함의 근거로서'가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여기에서는 '근거하
여'란 의미보다 '의도나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3)'각각...세례를
받고'의 구절을 삽입구로 취하는 견해이다. 따라서 이 견해에 의하면 '회개하여, 죄사
함을 얻으라'고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진다('회개하다'는 동사가 복수이고 '너희 죄사함
을 받으라'의 '너희'도 복수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해석상의 난제를 피하기 위해 헬라
어 본문을 의도적으로 변경할 필요가 없다. 본문을직역하면 '죄사함을 위하여'란 의
미를 지니며 대부분의 영역 성경도 이렇게 번역한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본절에서 단
순히 '세례 받으라'는의미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강조하
여 이 이름과 세례를 연관시켰기때문이다. 즉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세례와는 질적으로
다른 예수의 이름에 따른 세례가 강조된다. 이는 '예수를 믿으라'는 말보다 더 강한
어조이므로 단순히 '세례'라는 문자에 따라 본문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특히 막 1 :
4은 본 구절요약하듯 '죄사함과 세례'를 밀접하게 연관(聯關)시켜 진술하고 있다. 비
록 '세례'가 죄사함이나 구원의 근거는 될 수 없을지라도 본절과같이 '예수만을 믿으
라'는 의미를 지닐 때 그'세례'는 죄사함과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여기서 '그리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
(* )가 어떻게 번역되느냐에 따라 본절의 전체적 의미가 구분된다. (1) '그리고'
이 의미는 '카이'의 일반적인 용법이며 본절에서도 '그리고'로 번역될수있다. 이렇게
번역될 경우 본구절과 앞구절은 단순히 대등적일 뿐 인과 관계가 없다.(2)'그리하면'
: 이 의미는 '카이'의 특별한 용법이다.이 번역을 취하면 앞 구절과 본 구절은 인과관
계에 놓이게 된다. 즉 회개와 죄사함을 위한 세례가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조건이
된다.그런데 앞 문장이 명령문이므로 여기서 "카이'는 두번째 의미로 번역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한편 '성령을 선물로'란 표현을 직역하면 '성령의 선물'(the gift of
the Holy Soirit, NIV ;성령의 은사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전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령 자체이시며, 후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며 그 유익
을 위하여 각 사람 에게 나눠주시는(고전 12 :11)성령의 은사들을 말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개역성경처럼 번역되는 편이 타당하다.

=====2:39
이 약속 - 이것은 예수께서 하신 약속이며(1 : 4) 또한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약
속로서(욜2 : 28-32)죄사함과 성령의 은사(38절)를 포함한 것이다.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 베드로는 이 약속이 자기 설교를 듣는 청중
들(너희)과 그들의 자녀들(너희 자녀) 그리고 모든 먼 지방(나라)에 있는 자들(모든
먼 데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이 구절에서'모든 먼 데 사람'이라는 표현을
장차 태어날유대 자손들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자들도 있다.그러나 '먼 데'(*
, 마크란)라는 단어가 70인역 (LXX)에서나 신약의 어느 곳에서도 시간적인 의미
로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용어는자연히 공간적(空間的)으로 핵석되어야 할 것이
다(Richard N. Lingenecker). 그러나 이렇게 해석할 때 '먼 데'라는 말이 절대적으로
디아스포라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Meyer, Wendt)이 이방인도 포함한 것인지(Bengel,
Alford, Alexander, Knowling)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방인이 조금의 차
별도 없이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을 고려할 때 베드로가 여기에서
유대인만 지칭하고 이방인을 제의시켰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너희'란 표현속에는
팔레스틴에 거주하는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및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포함되므로 '먼 데 사람'은 유대교 밖에 있는 이방인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따라서
누가는 본문의 '먼 데'라는 말을 22 : 21에서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2:40
또 여러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 '여러 말' 이란 누가가 본문에서 기록한
것보다 더 많은 말을 베드로가 하였다는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확증하며'(*
,디아마르틔로마이)란 동사와 '권하여'(*
, 파라칼레오)란 동사에 접두어(prefix) 로 덧붙여진 전치사들(* ,
'디아' * , '파라')은 본래적 의미에서 파생되었으나 강조적으로 사용된다. 곧
이 전치사들은 마르튀레오(* , '증거하다'), 칼레오(* ,
'부르다')라는 원형 동사에 강의적(强意的)인 의미를 부여해 준다(R.N.Lonfenecker).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 당시의 세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
시야를 거역하고 십자가에 못박았기에(눅 11 : 29 ; 17 :25)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
음이없고 패역한 세대'(눅 9 : 41)요 '악한 세대'(마 16: 4; 17: 17)였다. 패역한 세
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구약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되었다(창 7 :22;19 :
24).그러나 그러한 불신앙 가운데서도 유대인들이 회개한다면 그들은 그 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마21 :41 - 44 ; 22 : 7 ; 23 : 24 - 24 : 2)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 이 말은 모든사람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는 베드로의 '말'(* , 톤로곤)에 찬동하여 수긍하는 사람
들을 가리킨다.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 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 혹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확성기(擴聲器)도 없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수 없으며 또한그 당시의 예루
살렘 인구가 통틀어 25,000-30,000명에 불과했으므로 3,000명의 회개 사실을부정했다
(Haenchen). 이에 대해 롱게네커(Richard N.Longenecker)는 다음 두 가지 근거로그
견해를 반박했다.(1) 그는 크라이슬러(B. C. Crisler)가 팔레스틴 지방에서 실험한 결
과를 따른다. 즉 그는 팔레스틴에서는 설교자가 어떤위치에 있을 때 소리의 반항음
에 의해 수많은무리가 들을 수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아마 예수도
이러한 지리적 입지를 고려해서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할수 있었을 것
이다. (2)그는 '더하더라'는 동사가 미완료 과거형으로 사용된 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것은 더해지는 수가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설교의 결과로서 더해지는 과정이 계속
있었음을의미한다. 즉 3,000명의 대중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한꺼번에 반응했다는
의미가 아님을보여준다. 따라서 3,000이라는 수효 자체는 부정될 수 없다. 한편 본 구
절에서 3,000명이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도 학자에 따라 문제시 된다.왜냐하면 3,000명
이나 되는 사람이 세례를 받을수 있는 곳은 요단강뿐인데 베드로의 설교 장소는 예루
살렘으로서 그 만큼의 수효가 세례 받기에는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난제
는 다음두 가지로 해결될 수 있다.(1) 3,000명이 일시에 세례 받은 것이 아니라 분산
되어 12제자에 의해지속적으로 셰례받았을 것이다(H. Marshall, W. Neil). 즉 제자의
수가 점점 더해진 것처럼 세례도 점진적으로 제자들에 의해 행해졌을 것이다.(2) 여기
서 세례를 침례로 이해할필요는 없으며 굳이 약식 세례로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3,000명이예수의 이름을 믿게 된 것을 누가는 보다 실감나는 표현인 '세례'로 언급했
을것이다.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여기에서 '사도의 가르침'은 헬라어 본문에 따르
면 문자적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번역된다.여기서 '사도'는 복수형이지만 '가
르침"은 단수형이다. 이것은 사도들이 주께서 허락하신 권위를 가지고 각기 주어진 바
임무대로 가르침에 전력했지만 그 교훈의 통일성(統一性)을 유지했다는 것을 보여준
다. 그들이 가르친 내용은 예수님의 말씀들(20 : 35)과 행하신 일들이었다.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여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 여기에서 '교제'와 '떡을
떼며 기도하기'사이에 '그리고'란 접속사가 생략되었으므로 이는 떡을 떼며 기도하는
것이 교제와 동격인 것을보여준다. 교제(* , 코이노니아)에 있어서
희생적인 사랑의 정신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며 물질적으로 도와 주는 것과 영혼의 교통
곧 기도하는 일은(Bruce) 필수적이라 하겠다.또한 떡을 뗀다는 것은 성찬과 애찬을 동
시에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46절 ; 20 : 7 ; 고전 10 : 16 ; 11 : 23-25). 그런데 46
절에서 '떡을 떼는것'과 '음식을 먹는 것"이 서로 구분되어 언급되었다. 이것으로 미
루어 보아 본 구절에서 떡을떼는 것은 예수께서 제정하시고 제자들로 하여기념하라고
명령하신 '성찬'(눅 22 : 19)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전혀 힘쓰니라"는동
사는 미완료과거형으로 어떤 행동 방침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지속적(持續的)으로 교제
했음을의미한다(1 : 14 ; 6 : 4 ; 8 : 13 ; 롬 12 : 12 ; 13 : 6 ; 골 4 : 2). 그리고
이 말은 제자들이 '교제'를 매우 중요시했음을 암시한다.

=====2:43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 - '사람마다"라는 말은 44절의 '믿는 사람'과 대비되는
데 여기서는 예루살렘의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수사법상 과장된 표현이다. 본 구
절의 직접적인의미는 '모든 혼에게 두려움이 되고있더라'로 공포가 아니라 존경심과
경외심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의미한다(막 4 : 41 ; 벧전 1 : 17).
사도들로 인혀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 기사와 표적들은 그들이 사도라
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보였다(고후 12 : 12 ; 히 2 : 3-5). 이러한 증명을 위해 사도
들은 성령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들을 많이 행했다(4 : 30 ; 5 : 12 ; 6 : 8 ; 8 : 6,
13 ; 14 : 3 ; 15 : 12). 그것들은 예수께서 지상에있을 때 행하신 기적들이 하나님
나라의 표적들이었던 것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 그들이 각자의 가정을 버리고 한 공동체 생활을 구
성한것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있어'란 미완료 과거형으로 신자들이 늘 함께 모이고
있었다는 것을보여준다. 그들은 이전에는 구약의 규례를 준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
로 모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함께 모이게 되었다. 이처럼 그리
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여러 가지 외적인 요인들을 극복하고 그들을 하나의 몸으로
결속(結束)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영적 백성으로 참된 교제를 했음을 의미한
다. 구약시대에 '언약'(* , 브리트) 언약을 맺는 당사자 곧 하나님과 이스라
엘의 결속을 의미했다. 예수를 통한 신약의 공동체도 그 언약에 기초하여 예수 안에
있음으로써 하나님과 결속될뿐 아니라 공동체간에 또한 공동체를 구성하는각 개인간에
영적 결속이 이루어졌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이 오순절 성령이 강림했을때 성
령을 체험했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지 성도의 수에 가입된 3,000명도 포함되는지 분명
하지 않다. 아마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한 사람외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 예수를
믿게 된 자들이 교제에 참여하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
대인들과 유대교로개종한 이방인들은 오순절 절기 행사가 끝난 후 자기들이 거주하던
나라로 돌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에 이루어진 영적인
일치는 서로 필요한 물건을 공유하는 생활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물건을 서로 통용했
다'는 것은 공산주의와 같은 방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물건을 서로
통용하려고 했고, 모든 재산을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공동체는 또한 토마스 모어(Thomas More)와 캄파넬라
(Campanella)가 꿈꾸던 이상향과도 다르다. 이들에게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성령
이 빠져 있으며 사랑도 강조되지 않는다. 이들의 이상향은 원시 시대의 공동체 생활과
유사한반면, 성령에 의한 공동체는 철저히 사랑이라는 원리와 언약이라는 결속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유지된다는 점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 여기서 묘사된 유무
상통(有無相通)의 현상은 오직 성령의 하나되심을 따라 이루어진 특이한 현상을 보여
주는 일례라 하겠다. 이러한 현상은 성령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신 예루살렘 교회
에 한정되었고 그외 다른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은 구속사적인 관점
에서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큰 일을하도록 하셨는가 를 보여주는 초
대 예루살렘 교회의 특이한 현상이라 하겠다.특히 예루살렘 공동체는 바울을 통해 이
루어진 이방인 공동체와 이 점에서 구별된다. 이방인 공동체에서는 결코 유무 상통의
흔적이 발견되지않고 오히려 사유 재산이 인정되었다(고전 11 : 21, 22).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성령을 받은 초기 예루살렘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는 유대 전통과 관습에따라 행동함으로 그들의 신앙을 표
현하였다. 이는 아직까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아무 불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음을 암시한다.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자주모이는 장소는 성전과 성전 바깥뜰 동편
에 있는 솔로몬 행각이었다(3:11; 5: 12). 그들은 거기서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예배
와 찬양을 드린 것이다.그러면서 또한 성전에 오는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제
자들은 성전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비록 그들이 계속해서 모이기를 힘썼지만
전적으로 유대인들의 방식과는 달랐다. 유대인 들은대부분 율법의 형식과 그에 따른
관습에 의해모였으며 제사를 드렸으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 자발적(自發
的)이요,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모였다(5 : 41 ;8 : 8 ; 11 : 23 ; 12 : 14 ; 13
: 48,52 ; 14: 17 ; 15 : 3, 31 ; 16 : 34 ; 21 : 17).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여기서 누가는 성전에서
의 모임과 집에서의 모임이 구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 구절의 '집에서'가 헬라
어 본문에서 매우 애매한 표현으로 언급되어 있다. 즉 이말의 헬라어 '카트 오이콘(*
)에서 전치사 '카타'(* )를 어떤 의미로 취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의미상 차이가 생긴다.(1) 다른 집으로'로 번역될 수있다(KJV). (2) 선택의의
미 ; '어떤 집들 중에 한 집에서'란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3)장소의 의미 ; '집에서'
란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오이콘"은 단수이면서 관사가 없다. 이 말은 떡을
떼는 집이 특별하게 정해져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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