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re the Son of God," he said, "throw yourself down. For it is written: " 'He will command his angels concerning you, and they will lift you up in their hands, so that you will not strike your foot against a stone.'"

마태복음4:5-7

[새번역]
5.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7. 예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NIV]
5. Then the devil took him to the holy city and had him stand on the highest point of the temple.
6. "If you are the Son of God," he said, "throw yourself down. For it is written: " 'He will command his angels concerning you, and they will lift you up in their hands, so that you will not strike your foot against a stone.'"
7. Jesus answered him, "It is also written: 'Do not put the Lord your God to the test.'"

마귀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의 능력과 보호하심을 믿도록 유혹하였다. 마귀는 얼마나 끈질기고 지칠 줄 모르는 원수인가! 그가 한 번 공격하여 실패했다면, 또 공격하려고 준비하는 것이다.
이 두 번째의 공격 시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있다.



(1) 그 시험은 어떤 것이었으며, 또한 어떻게 수행되었는가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마귀는 아버지께서 그를 양육하신다는 점에서 그의 돌보심을 매우 확신하고 있다고 알아차린 후 그로 하여금 그를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점에서 그의 돌보심을 믿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는 좌우 양편에서 자칫하면 길을 잃어버릴 위험에 놓일 때가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한편을 피하면 사탄의 간교에 의하여 다른 편으로 달려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 또한 우리의 방탕성을 극복함으로써 탐욕에로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의 영혼 문제에 있어서 실망이나 추측보다 더 위험한 극단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그들을 "죄로부터"(from sins) 구원할 수 있으며, 또한 구원하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그들을 "죄 가운데서"(in sins)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도록 유혹 당할 때가 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열심으로 경건에 힘쓰려고 할 때 사탄은 급히 서둘러 그들을 완고한 신앙과 매서운 더위 속으로 몰아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시험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1] 마귀는 이 시험을 어떻게 진행시켰는가? 그는 그리스도를 억지로나 강압적으로 이끌어간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가게 했고 자신을 따르게 했다. 그리스도가 지면에 가셔서 계단을 거쳐 성전 꼭대기로 가셨는지, 또는 공중으로 가셨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가 "성전의 작은 뽀족탑"(pinnacle 또는 spire)이나 "신전"(fane, 어떤 사람들의 주장), 흉벽(胸壁)(battlements, 어떤 사람들의 주장), 익면(翼面), (wing 단어의 뜻)에 놓여지신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으로 하여금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기 위해 이와 같이 재촉되어 시험을 받는데 그대로 순응하였다. 그렇지만 마귀는 그를 꺼꾸러뜨릴 수 없었다. 여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인내는 후에 그가 고난받고 죽으실 때와 마찬가지로 사탄이나 그의 하수인들의 능력보다 더 크고 놀라운 것이었다. 사탄이나 그의 하수인들은 "위로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것" 이외에는 그리스도를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거스리는 사탄의 능력을 풀어놓아 주지만 우리를 거스리도록 그와 같이 내버려두지는 않으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견제하신다는 이 사실을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인가!

둘째, 마귀는 그의 시험할 장소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매우 교활하였다. 마귀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허영 된 신뢰를 두도록 하기 위하여 인구가 조밀하고 "온 땅의 즐거움"인 예루살렘의 공공연한 장소로 그를 이끌어간 것이다. 세상의 경이 중 하나인 성전은 뭇 사람들의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바로 이 장소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을 드러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임으로써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절호의 장소가 될 수 도 있었다. 즉 이것은 그가 광야의 어둑한 곳에서 겪은 이전의 첫 번째 시험 때에 몰아 부쳐진 것과는 달리 많은 무리들 앞에서 모든 행동이 가장 잘 두드러지게 보이는 곳에서 시험 당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더 자세히 고찰해 본다면,

1. 여기에서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이라고 불리운 것은 이름과 신앙 고백에서 그러하였고, 또한 그 안에는 그 성의 실체였던 "거룩한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알아야할 것은, 이 세상에는 마귀와 그의 시험을 면하거나 그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만큼 "거룩한 성"은 없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아담은 "거룩한 동산"에서 시험받았지만, 두 번째 아담은 "거룩한 성"에서 받으셨다. 그러므로 어떠한 장소에서도 우리의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자. 아니, "거룩한 성"은 마귀가 큰 장점을 가지고 성공리에 사람을 교만하고 건방지게 하도록 유혹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위에 있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어떠한 불결한 것도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영원무궁토록 시험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2. 마귀는 그를 "성전 꼭대기"에 두었는데, 이 꼭대기는(조세푸스가 Antiq. lib. XV. cap. 14에 기록한 것과 같이) 매우 높았으므로 사람이 이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알아야할 것은 성전 꼭대기가 시험의 장소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1) 높은 장소는 다 이와 같다. 즉 높은 장소는 미끄러지기 쉬운 곳이다. 세상의 출세는 사탄으로 하여금 그의 난폭한 화살을 겨냥하여 쏠 수 있는 선명한 표적을 만든다. 하나님은 내려뜨린 후 일으켜 세우지만, 마귀는 일으켜 세운 후 내려뜨린다. 그러므로 넘어질까 조심하는 자들은 기어오르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 "교회에서의" 높은 자리는 특별한 방식에서 위험스럽다. 은사면에서 특별한 사람들이나, 주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들, 또는 큰 명성을 얻은 사람들은 겸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탄은 확실히 그들을 겨냥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만에 부풀게 함으로써, "마귀의 저주 속으로 떨어지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높은 위치에 서 있는"자는 모름지기 "견고히 서 있기를" 유의해야 한다.

[2] 마귀는 어떻게 이 시험을 일으켰는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지금 네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어 보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라. 네 자신이아래로 뛰어내리라. 그리하면, ① "네가 하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는 것으로 뭇 사람들의 존경과 찬탄을 받을 것이다. 네가 이렇게 높은 벼랑에서 떨어질지라도 다치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멜리데의 토인들이 바울에게 말하였던 것 같이), 당신은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박수인 시몬"은 바로 이와 같은 일로 그 자신이 신(神)임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그의 거짓은 이내 탄로나 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거꾸러져 처참하게 찢기웠기 때문이다. ② "네가 하늘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온 것으로 영접을 받을 것이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네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그 이상의 분이라는 것과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실"(말 3:1) 언약의 천사, 즉 사자(使者)라는 것을 알고 깨닫게 될 것이며 또한 그 이후로 거룩한 성의 거리로 퍼질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일을 간단히 끝나 마무리될 것이다."
마귀가 "뛰어내리라"고 말한 것에 유의하라. 비록 사소한 일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마귀는 결코 그를 성전 꼭대기에서 내어 던질 수 없었다. 여기에서 알아야할 것은, 사탄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으며, "이제까지 왔지만 그 이상은 더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만일 마귀가 "그를 내어 던져 떨어지게 했다면," 자기의 주장을 내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마귀에 의해 강제적으로 밀쳐냄을 당하였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어떠한 불행이 우리에게 닥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자신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단지 "뛰어내리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억지로 뛰어내리게 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시험을 받는 것은 그 자신의 정욕에 이끌릴 때이며, 그것은 강제적이 아니라 유혹을 받아 스스로가 이끌릴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해를 입지 말자." 그 누구도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자(잠 9:12).



[3] 그리스도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시험을 물리치셨는가?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라." 그러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는가?" 사탄도 성경 말씀을 재빨리 인용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숙달되었는가? 아마도 그런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마음에 하나님과 모든 선에 대하여 적대심으로 가득찬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머리는 성경 말씀의 개념으로 꽉 차있고, 입으로는 거침없이 성경적인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귀가 성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은 그들의 불행과 고통을 증가시킨다. 마귀는 그리스도에게 "나는 네가 누구인지를 안다"고 말했을 때보다 더 그 자신이 화나게 말하지는 않았다. 마귀가 그리스도에게 "뛰어내리라"고 말한 것은 그 스스로가 자살자가 되어, 그 자신이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리스도와 그의 임무를 끝장나게 하려고 했다. 마귀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권하기 위해 그에게 전혀 위험이 없다는 것과 사자들이 그를 떠받들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으며(시 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속살거렸다. 이 인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여기에는 "옳은 것"이 있었다. 성도의 보호를 위해 천사들의 직무에 대한 이러한 약속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마귀는 경험으로 이와 같은 것들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마귀는 그들에게 대항해 보아야 아무런 소득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두드러지게 말한 욥에 대해 철저한 봉쇄를 감행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에 대해 조바심을 내고 격노하는 것이다. 그가 이 말씀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한 것도 역시 옳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성도 보호에 대한 모든 약속은 원래적으로 또는 두드러지게 그에게 속한 것이며, 또한 그들에게는 그를 통하거나 그 안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뼈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않을 것이라"(시 34:20)는 약속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요 19:36). 천사들은 그리스도를 인하여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것이다(계 12:5, 11).

둘째, 이 성경 말씀의 인용에는 커다란 "잘못"이 있었다. 아마도 마귀는 이 약속을 대항하려는 특별한 흉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그것을 악용하였다. 왜냐하면 이 약속은 그의 길에 훼방을 놓았으며, 성도들을 대적하려는 그의 악랄한 계획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즉,

1. 마귀는 이 성경 구절을 "잘못 인용하였다." 또한 그것은 매우 사악하였다. 그 약속은 그들이 "당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네 모든 길에서" 그 밖의 뜻은 없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길에서" 벗어나 버린다면, 우리의 의무의 길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약속을 잃어버리게 되고, 따라서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시험하는 자를 거스리게 했고, 따라서 마귀는 부지런히 이 말씀을 무시해 버렸던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밑으로 뛰어내리셨다면" 그는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사명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에 따라서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참고로 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무용지물로 만들거나 뒤섞어버리는 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사물들에 신뢰를 두지 않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우리는 매일 성경을 상고하였던 숭고한 베뢰아인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마귀는 성경 말씀을 "잘못 적용하였다." 그것은 더욱 나쁜 일이었다. 성경은 죄를 장려하는 것이 강조될 때에 잘못 악용된다. 따라서 사람이 성경 말씀을 그들 자신의 시험에 맞추어 왜곡시킬 때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하고야 만다"(벧후 3:16). 이 약속은 견고하며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마귀가 신적 배려를 믿도록 격려하는데 이 말씀을 사용할 때는 "그릇되게 사용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릇된 것으로 바꿔지는 것"이나 또는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발견한 것에 근거를 두어 죄 가운데서 격려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은혜가 풍성하기 위하여 죄 가운데 계속 머무를 것이냐?" 천사가 우리를 떠받들게 하기 위하여 뛰어내릴 것이냐? 하나님은 이를 금하시고 계신다.

(2) 그리스도는 어떻게 이 시험을 극복하셨는가? 그는 조금 전에 말씀하신 "기록되었으되"라는 말로 이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셨다. 마귀가 성경을 "악용"한 것이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것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는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즉시로 신명기 6장 16절, 곧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을 힘주어 강조하셨다. 이 의미는 "그러므로 너는 나를 시험하지 말라"가 아니라, "그러므로 나는 내 아버지를 시험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말씀이 인용된 구약 성서에는 "너희는 시험하지 말라"라고 복수로 되어 있으나, 이곳에는 "너는 시험하지 말라"고 단수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알아야할 것은 우리가 각별히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일반적인 약속들을 경청하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탄은 말하기를 "기록되었으되"(역주:개역 성경에는 "기록하였으되"로 되어 있음), 예수님도 똑같이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성경 구절의 서로 배치되지 않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그의 말씀도 하나이며, 또한 하나님은 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나 전자는 약속이며 후자는 계명이다. 그러므로 전자는 후자에 의해 설명되고 적용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성경에 대한 최고의 번역자이기 때문이다. 예언을 하거나 성경을 해설하는 자는 이 일을 믿음의 분수대로(롬 12:6), 계속적으로 실제적인 경건으로 행해야만 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뛰어내렸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1] 이것은 이미 완전히 확인된 것에 대해 "더욱 확실한 확증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이미 자신의 아버지이셨다는 사실과 그를 보살피고 천사로 하여금 자신을 떠받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충분히 확신하고 만족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새로운 경험으로 확인하려는 것은 마치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시험하듯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이미 지상에서 많은 기적 기사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제한하고 있다.

[2] 이것은 할 필요가 없는데도 "특별한 보호를 요청"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의무의 길에서 자신을 뒤따라야만 하며, 우리의 궁핍을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비위를 맞추고 자신의 취미를 즐겁게 해 주어야 하며, 또한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기꺼이 우리 자신을 위험 속으로 뛰어들 수 있으며, 지정된 수단을 사용하지 않아도 소원하는 것은 끝까지 다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한낮 망상에 불과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만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라면 죄악은 더욱 더 악화될 것이며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할 특권을 악용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는 이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를 믿으라고 권고하였지만 우리가 그를 시험한다면 그것은 배은망덕한 일이 될 것이다. 즉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그분에게 마땅히 해야할 의무에도 배치된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영광 돌려야할 분에게 공공연히 모욕을 주는 행동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스스로 약속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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