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in unfathomable mines Of neverfailing skill He treasures up His bright designs And works His sovereign will.

1. 주 하나님 크신 능력
참 신기하도다
바다와 폭풍 가운데
주 운행하시네

2. 참 슬기로운 그 솜씨
다 측량 못하네
주님 계획한 그 뜻은
다 이뤄지도다

3. 검은 구름 우리들을
뒤덮을 지라도
그 자비하신 은혜로
우리를 지키네

4. 어둠에서 소경같이
나 헤맬지라도
주 나를 불쌍히 보사
앞길을 비추리
아멘

1. God moves in a mysterious way
His wonders to perform
He plants His footsteps in the sea
And rides upon the storm.

2. Deep in unfathomable mines
Of neverfailing skill
He treasures up His bright designs
And works His sovereign will.

3. Ye fearful saints, fresh courage take
The clouds ye so much dread
Are big with mercy, and shall break
In blessings on your head.

4. Blind unbelief is sure to err;
And scan His work in vain;
God is His own interpreter,
And He will make it plain. Amen.


마태복음5:13

[현대인의성경]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런데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런 것은 아무 쓸모가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이다.

[NASB]
13.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has become tastel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 foot by men.


12월 5일 (화)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기독교인 소녀들은 성적 학대, 강제 결혼 등의 문제에 취약한 집단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보호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 그들의 삶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을 그들이 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 소년들은 종종 아버지 없이 자라며 어린 나이에 재정 등 부모의 책임을 떠맡게 됩니다. 그들이 교회의 신실한 남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그들이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아랍에미리트: 규제가 더 심한 나라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 이곳에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산상설교의 새로운 대목으로 3-12절까지에서 그리스도인이 성격을 묘사하고, 13절에서는 그 적용이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그리스도인이 그 사람됨을 어떻게 나타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고립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으나 세상 안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해서 심령이 가난하며, 긍휼하며,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성격을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의 생각과 목적에 따라 이 세상에서 기능과 목적을 생각하는 것으로 옮겨간다. 우리는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그가 사는 세상을 한 마디로 암시하는 말씀이다. 나는 성경의 진리를 이 시대처럼 증명해 보인 시대가 과거에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20세기는 매우 비극적인 시대가 되었다. 19세기 말엽의 시대의 사상가들의 사상은 생물학적 의미에서 뿐 아니라 철학적인 의미에서도 진화론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 중심되는 관념은 인류의 삶이 진화하여 발전하며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20세기는 놀라운 한 세기가 될 것이었다. 대중은 교육을 통하여 음주와 음란과 갖은 악을 중단할 것이며, 대다수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이 사실을 확실히 믿었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 이런 관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말씀은 세상의 부패성을 암시함이 분명하다. 세상은 타락하고 사악하고 부정하다. 세상은 썩고 오염되기 쉬운 고기와 같다. 성경의 견해만이 인간성을 참되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견해이다. 세상은 방부제나 예방제에 의해서만 건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세상이 건전하다고 하는 말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완전하게 창조하셨지만 죄가 세상에 들어왔으므로 이 악하고 오염적인 요소는 즉시 자태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창세기 6장을 보라.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란 말씀을 보게 된다. 불결과 오염이 너무 심하여 하나님께서 홍수를 일으키셔야 했다. 하지만 이 악한 원칙은 여전히 그 정체를 나타내었으며, 거의 상상하기 힘든 죄악으로 더럽혀진 소돔, 고모라에 이르게 된다. 성경이 변함없이 보여 주는 것이 이와 같다. 이렇게 끈덕진 부패 성향은 언제나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세상은 부정하고 사악하고 악랄하다. 세상에 대한 어떤 낙관론도 철저하게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에 의해서도 거짓으로 증명되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세상과 그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에 관하여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본문은 그리스도인은 소금과 같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너희가’ ‘너희, 너희만이 소금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이것은 절대 분명하다. 소금은 접하고 있는 매체와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 매체와 다름으로써 소금의 모든 자질이 발휘하게 된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아무데도 쓸데없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달라야할 뿐 아니라 이렇게 다른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과 명백히 다르셨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분리되고 특이하고 눈에 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속에는 다른 사람과 구분하여 분명하고 명백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소금의 기능은 무엇인가?

 

소금의 기능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다.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금의 주요 기능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기능일 뿐 아니라, 먼저 이 기능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결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방부제 역할을 기본 전제로 소금의 이차적인 기능은 맛을 내는 것이다. 음식이 맛없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 진술에 따르면 기독교 없이는 삶이 무미건조하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무미건조하고 지겨워 여러 가지 쾌락을 향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삶의 맛, 곧 신앙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쾌락과 재미가 필요 없다. 우리 생활에서 기독교를 떼어버려 보라. 우리 삶이 얼마나 무미해지겠는가? 특히 늙거나 임종 시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먼저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소금으로 작용해야 한다. 여기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 개개인과를 구별해야 하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일반적인 상황(정치적, 경제적, 기타 유사한 문제들)에 관한 교회의 선언을 수단으로 해서 소금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탄핵하고 전쟁과 국제 정세와 기타 문제들을 논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형편에 이와 같은 논평을 가함으로써 일반적인 방법으로 세상에서 소금의 기능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견해는 성경을 심각하게 오해한 견해이다. 그들은 ‘구약의 예언에서도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구약시대 교회는 곧 이스라엘 국가였고 교회와 국가 사이에 구별이 없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국가 전체와 국가 전체의 생활을 말해야 했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어느 국가나 민족들과 동일시될 수 없다. 그 결과 사도들은 로마제국 정부를 비평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인 의미에서 소금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접촉하는 모든 영역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렇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양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견해 역시 오류이다. 그리스도인은 한 개인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금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가 하는 일과는 매우 다른 일이다. 교회의 기본 임무는 복음을 전하고 설교하는 일이다. 만일 교회가 사회의 어떤 특정 부면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교회는 그 부면에 대해서 전도의 문을 닫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 공산주의자들도 복음화하는 것이 복음 전도자로서 할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러한 정치, 사회, 경제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는 순간 교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전도의 임무를 방해하고 해치는 것이 된다. 개개인은 한 시민으로서 자기의 역할을 원하는 대로 해야 하며 이것은 개인이 선택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 할 일은 복음을 전파하고 이 구원의 메시지를 만인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다. 교회는 죄와 그 죄의 정체가 드러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원칙이 교회에서 큰 각성과 개혁이 있을 때마다 전체 사회가 그 결과를 거두었다. 위대한 모든 부흥운동의 기록을 보면, 교인들이 부흥되었을 뿐 아니라 교회 밖의 수많은 사람들이 개심하여 교회로 들어 왔다. 그 지역의 사람들의 전체가 영향을 받아 죄와 악과 비행이 통제를 받았던 것이다. 이 일은 질타하는 교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리스도인의 개개인의 영향력에 의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거의 자동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나 청교도 개혁을 보라. 전체가 그 영향을 받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청교들이 통과시킨 법률을 가리켜 말함이 아니고 그들의 일반적인 양태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개인들이 전보다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정세가 영향을 받았고, 19세기에 통과된 큰 법률들은 많은 개개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현재의 사회상과 세계상은 이 원칙에 대한 완전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지난 50여년 동안 교회가 그 이전 수백년 전부를 합친 것보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문제에 대하여 더 직접 주의를 기울였다. 교회 총회와 각 교파 총회가 정부에 보낸 선언문과 결의안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 결과는 50여년 전보다 훨씬 더 음란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악과 불법과 무법이 판을 치고 있다. 문제는 참 그리스도인이 너무 적다는 것과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이 충분히 소금 역할을 못한다는 데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만이 그 영향력을 발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었고,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하는 ‘성도’가 되지 못함으로 우리의 동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일종의 세포 침투의 원칙이다. 소금의 본질 때문에 소금은 모든 것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이것은 이와 같은 시대에 우리의 큰 소명이 된다. 법률을 통과시킴으로써 이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부패와 악취와 비열을 통제할 개개 그리스도인들이 증가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있는 곳에서 이 부패과정을 통제해야 한다. 그래야 온 덩어리 전체가 보존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가 이 단순한 명제에 비추어 자신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은혜를 내리시옵소서. 하나님의 교회가 이 일에 몰두하여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문제에 낭비하지 않게 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들 속에 은사를 불일 듯 일으키시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처럼 함께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찬양: 너 시험을 당해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Yield not to tempt...

주의 곁에 있을 때/주여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빠른 세상 살 동안 주여 인도하소서/Savior lead me lest I stra...

1912년 1월 30일, 프란시스 쉐이퍼(혹은 쉐퍼, Francis August Schaeffer) 출생, "전제가 다른 이들과도 대화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