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ter came to him and said, "If you are the Son of God, tell these stones to become bread."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God.'"

마태복음4:3-4

[새번역]
3.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NIV]
3. The tempter came to him and said, "If you are the Son of God, tell these stones to become bread."
4.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God.'"

 시험 자체들, 사탄이 그 모든 시험에서 궁극적으로 노린 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짓도록" 함으로써 영원히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 근본 저의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마귀가 노린 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① 그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실망케 하기 위하여 ② 그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케 하려고 ③ 그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영예를 사탄에게 내어 줌으로써 소원(疏遠)케 하기 위함이었다. 위의 ①과 ②에서 마귀가 그를 "하도록"(to) 시험했던 것은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 같으며 여기에는 시험하는 자의 교활함이 나타나 있다. ③에서 그를 "으로써"(with) 시험했던 것능 그것을 가지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앞의 두 항목(①, ②)이 분별할 수 있는 큰 지혜를 필요로 했던 간교한 시험이라고 한다면, 뒤의 항목 (③)은 저항할 수 있는 큰 결심을 필요로 했던 강한 시험이었다. 그러나 마귀는 이 모든 것에서 실패의 쓴잔을 마시었다.

1. 마귀가 그리스도를 시험한 것은 그로 하여금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실망케 하고 그를 보살피는 아버지의 배려를 불신케 하기 위함이었다.

(1) 이 시험이 어떻게 진척되었는가를 살펴보자(3절).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왔다."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마귀는 "시험하는 자"로서 "사단"(대적자)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마귀는 우리의 철천지 원수로서 우리를 범죄하다록 유혹하며, 또한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그의 일을 하며, 그의 계획을 수행한다. 마귀가 강조적으로 "시험하는 자"로 불리워지는 것은 우리의 첫 조상에게도 이와 같은 일을 행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며, 그 밖의 모든 시험하는 자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역사하고 있다. 시험하는 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나아왔는데, 이것은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할 때와 같이 두려움과 협박을 주던 모습은 아니었다. 일찍이 "자신을 빛의 아들로 가장하였던" 마귀는 지금도 그렇게 가장할 뿐만 아니라 수호신이나 수호천사로 꾸미는 것이다. 이 첫 시험과 이전 것과는 연관하여 그 시험을 더욱 강하게 하려는 "시험하는 자"의 간교함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리스도는 주리셨으므로 그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데 꼭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행동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사탄의 간계들 중의 하나는 우리의 외부적인 조건을 이용하여 그것을 그의 시험의 포대로 세운다는 것이다. 그는 간교할 뿐만 아니라 매우 조심스럽다. 그가 교활하게 우리를 대적하여 이용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부지런하게 그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가 주리셨을 때, 더욱이 그것도 먹을 것이라고는 도무지 않는 "광야에서" 주리셨을 때 마귀는 그를 공격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궁핍과 가난은 불만과 불신앙을 야기시키는 가장 큰 시련으로서 필요에는 법칙이 없다는 격언을 구실로 삼아 우리의 안락을 위해 부당한 수단을 사용하도록 유혹한다는 사실이다. 굶주림이 돌로 된 벽을 깨뜨릴 것이라는 사실은 이것으로 변명되지만 그 변명이 결코 합당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에게 돌로 된 별돌보다 더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굴이 가난에 대해 기도한 것은 그것이 고통이나 비난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시험이 되기 때문이다. "즉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도적질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나이다." 그러므로 궁핍한 처지에 몰리게 된 자들은 그들의 방어를 갑절로 대비해야 하며, 또한 죄로 말미암아 살고 번창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굶주려 죽는 편이 나을 것이다.

[2] 그리스도는 그 즈음에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으며, 여기에서는 마귀가 그로 하여금 이러한 사실을 의심하게 하려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로 유혹하고 있다.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또한 이 예수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추측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리스도가 지금 그의 영광을 덮은 베일을 벗기지 않았거나 또한 마귀가 철면피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말을 감히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첫째, "너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만물의 상속자인 하나님의 아들이 과연 이렇게 궁핍한 처지로 떨어질 수 있을까? 만일 하나님이 네 아버지라면 그는 네가 굶주려 죽는 것을 차마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삼림의 모든 짐승들이 다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시 50:10, 12). 하늘로부터의 소리, 즉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는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망상에 불과하며, 너는 그것에 속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네 아버지가 아니든지 매우 몰인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1. 사탄이 좋은 사람을 시험할 때 크게 노리는 것은 그들과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려 버림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신뢰, 그에게 대한 의무, 그와의 교제를 단절시켜 버리는 것이다. 형제의 위로자로서의 선한 성령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입증하지만, 형제의 고소자로서의 악한 영은 할 수만 있으면 그 증거를 동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2. 사탄은 외부적인 고통이나 궁핍, 무거운 짐 등을 근거로 내세워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의 부성적인 사랑이 참으로 그들과 함께 한다면 고통은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그들의 양자 됨을 의심나게 한다. 그들은 이 시험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으며, 경건한 욥과 같이 "그가 나를 죽일지라도, 그가 나를 굶기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지할 것이며, 그가 비록 원수와 같이 나를 대적하러 나오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그를 친구로 사랑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3.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믿음을 흔들려고 의도하며, 그 말씀의 진리에 대하여 의심나게 한다. 따라서 마귀는 처음부터 우리의 첫 조상에게 "그래,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나?라고 속삭이면서, "정녕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을꺼야"라고 말로 의심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에서도 마귀는 "참으로 하나님이 너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하더냐? 정녕 그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혹 그가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들 중 여하한 진리에 대해서라도 의심할 때는, 바로 그 때가 "마귀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때"임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짓의 아버지인 마귀가 하는 주임무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반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4. 마귀가 그의 계획을 수행할 때는 대부분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하나님은 몰인정하고 불신실 하거나 또는 용감하게 자신들의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잊어버린 것처럼 꾸며 그에 대해 강팍한 생각을 가지게 한다. 마귀는 우리의 첫 조상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지식의 나무를 금하셨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려고 갖은 애를 다 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는 지식의 나무로 말미암아 그들이 이익을 얻게 될 것을 질투하고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귀는 여기에서 우리 주님에게 넌지시 속삭이기를 그의 아버지는 그를 내어던져 버렸으며, 자기 힘으로 모든 일을 꾸려 나가도록 방치해 두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암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며, 또한 어떻게 쉽사리 답변되었는가를 살펴 보라. 만일 그리스도가 시장기를 느끼셨기 때문에 이제 단순한 사람으로 보였다면, "40일을 금식하신 후에"는 사람 그 이상인 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왜 고백하지 않았는가?
둘째, "너는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아마 그 앞에 놓인 돌무더기)이 떡덩이가 되게 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하라(3절). 세례 요한은 언젠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흔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했으니,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능력은 그 자녀들을 위하여 돌들로 떡덩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네가 그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네 자신을 위해 필요한 시기인 바로 지금 그 일을 행하라."

마귀는 "돌들로 떡덩이가 될 수 있도록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고, "그렇게 되라고 명령하라"고 하였다. 즉 네 아버지는 너를 버렸으므로 이제는 네 스스로 자립하여 더 이상 네 아버지의 신세를 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마귀에게는 겸손이라곤 조금도 없으며 하는 일마다 건방지다.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을 그만 두게 할 수만 있다면 자기의 의견을 통하게 하며, 또한 혼자서도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2) 이 시험은 어떻게 격퇴되고 극복되었는가를 살펴보자.

[1] 그리스도는 그것에 응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라고 명령하시지는" 않았으며, 그것은 그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이 시험을 받고 난 후 그리스도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 이러한 그의 능력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왜 그는 이와 같이 하시지 않았는가? 언 듯 보면 이 일은 매우 타당한 듯 보이며, 참으로 시험이 그럴 듯하고 겉으로 아름답게 보이면 보일수록 더 위험하다. 이 일은 논의할 것이었지만, 그리스도는 즉각적으로 풀 속에 도사린 뱀을 알아차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는데, 즉 ① 그가 하늘로부터 들었던 음성에 대한 진리를 의문시하거나 이미 결정된 것을 새로이 시험하려고 하는 듯한 일이나 ② 그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불신하려는 듯하거나 그로 하여금 그를 위해 준비한 한가지 특별한 방법에 제한하려는 듯한 일. ③ 그 자신을 내세우거나 그 자신이 조각사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④ 사탄의 거동에 따라 일을 함으로써 사탄을 만족시키는 듯한 일 등을 도무지 하시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이 마귀에게도 응분의 몫을 주려는 좋은 계획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시종드는" 자가 마귀와 논의하는 것은 응분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셨음에도 에그론 신에게 물었던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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