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p me the slow of heart to move By some clear, winning word of love; Teach me the wayward feet to stay, And guide them in the homeward way.

1.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2.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갈 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하소서

3. 구주의 귀한 인내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굳건한 믿음 주셔서
늘 승리하게 하소서

4. 장래의 영광 비추사
소망이 되게 하시며
구주와 함께 살면서
참 평강 얻게 하소서
아멘

1. O Master, let me walk with Thee
In lowly paths of service free;
Tell me Thy secret, help me bear
The strain of toil, the fret of care.

2. Help me the slow of heart to move
By some clear, winning word of love;
Teach me the wayward feet to stay,
And guide them in the homeward way.

3. Teach me Thy patience; still with Thee
In closer, dearer company,
In work that keeps faith sweet and strong,
In trust that triumphs over wrong.

4. In hope that sends a shining ray
Far down the future's broad'ning way,
In peace that only Thou canst give,
With Thee, O Master, let me live.
Amen.



마태복음5:7

[현대인의성경]
7.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나님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NASB]
7.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receive mercy.


11월 27일 (월) / 쿠바 (2023 WWL 27위) 1959년 공산주의 혁명 이전에 등록된 쿠바의 소수 교회들 만이 법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대부분의 경우에 다른 지역 단체들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목적을 갖거나 지원자의 활동들이 어떤 방식으로나 공익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되었습니다. 그 결과로서 많은 교회들은 등록이 거부되어 불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미등록 교회들은 반대자로 여겨지고 단체들의 폐쇄로 이어지는 벌금,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박해, 그리고 재산 몰수에 이르는 처벌에 직면합니다. 설교는 끊임없이 감시되고 시민사회의 영향력은 공산주의 정부에 의해 제한됩니다. 쿠바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무슬림에게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도록


긍휼히 여기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엘레에모네스'(* )는 '자비'란 뜻의 '엘레오스'(* )에서 파생한 용어이다. 특히 70인역에서 '엘레오스'는 '사랑'이란 뜻의 히브리어 '헤세드'(* )와 '동정'이란 뜻의 히브리어 '라하밈'(* )의 변역어로 쓰였다. 그중 구약에서 '헤세드'는 주인과 종, 또는 친지들 사이의 관계, 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단지 감정이나 성품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구약에서 이 용어는 주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의미했으며, 신약에서는 언약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들은 바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즉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과 고통을 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를 동정한다는 의미를 포괄(包括)한 것이다. 그리고 시련을 당한 자들의 상황에 깊이 동참하여 그들로 하여금 부담없이 도움을 청하게 하는것을 의미한다. 한편 긍휼히 여길 대상은 바로 이 죄악된 세상이며, 성도는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실천하는 존재가 된다. 즉 성도에게만이 이 세상의 회복자로서의 자질이 주어져 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죄악된 세상을 긍휼히 여기고 세상의 참된 회복을 위해 실천하는 자에게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가 깃든다. 즉 긍휼에 대한 보상은 타인이 베푸는 긍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긍휼인 것이다(클레멘트 1서 13:2).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베푸는 긍휼이 하나님의 긍휼의 필연적 근거(causal ground)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occasional ground)계기가 된다는 의미이다(6:14, 15). 실로 긍휼은 소자에게 한 잔의 물을 대접하는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서부터 이 세상의 죄악된 세상과 투쟁하는 거대한 사역에 이르기까지 성도 안에 있는 일관된 태도인 것이다. 또한 본절은 긍휼하심을 받은 성도가 긍휼을 실천하며(요일 4:19), 그 실천으로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하심을 받는 순환론적인 것이다. 이는 마치 눈덩이가 구르면서 더 큰 눈덩이가 되듯이 긍휼의 풍성함에 성도가 거한다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축복 선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최종적인 보상은 최후의 심판 때 성도에게 주어진다(약 2:13).

 긍휼히 여기는 자. - 여기서 부터 나타나는 네가지 덕은 적극성을 띤다. 먼저  기
록한 네 가지는, 사람이 자기에게 의가 없음을 느끼어 하나님의 높으심을 사모하며 탐
구하는 신앙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제부터 네가지는, 위에 벌써 말한 바와 같이  이미
믿는 자가 남을 위하여 행하는 아름다운 덕을 말하낟. 다시 말하면, 처음  네  가지는
죄인이 반성 통회 신종 득의하는 자신이 구원 받는 계단을 말하고, 다음 네 가지는 그
리스도이 의를 얻은 신자가 남들에게 대하여 가지는 생활에 대한 것이다. 곧,(1) 하나
님의 의를 힘입어 배부른 자가 그 문에서 나설 때에 하나님을 몰는 가련한 자들이  많
이 보이니 공로 없이 의롭다 함을 얻고 있는 그의 마음은 긍휼로 움직일 것이다.(2)그
리고 그는 이미 복음이 말씀으로 깨끗하여졌으나(요15:3), 그 깨끗하게 된 것을  힘써
지키므로 하나님을 더욱 아는 자리로 나가고,(3)그는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여  남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케 하여 영적 평화의 질서를 확립한다.(4)그 뿐 아니라 그는  의
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일에까지 나간다. 그런데 신자가 이렇게 아름다운  덕을  행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상이 따르나 그 살은 보상적 원칙대로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은혜의 법칙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나타난다.  작은 것을 행하여 큰  것을  받는
것이다. 나의 조그마한 긍휼을 행하여 하나님의 긍휼로써 갚음을 얻고(마6:14,15)  땅
위에서 나의 조그마한 마음을 정결케 하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을더욱 밝히 아는 지극히
큰 복을 받고  땅위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여 화평을 이루므로 하나님의 자녀의 자
격을 알리고 땅위에서 잠간 동안 그리스4돌 마위하여 핍박을 받으므로 영원한  내세의
큰 상을 얻는다.

긍휼히 여기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엘레에모네스'(* )는 '자비'란 뜻의 '엘레오스'(* )에서 파생한 용어이다. 특히 70인역에서 '엘레오스'는 '사랑'이란 뜻의 히브리어 '헤세드'(* )와 '동정'이란 뜻의 히브리어 '라하밈'(* )의 변역어로 쓰였다. 그중 구약에서 '헤세드'는 주인과 종, 또는 친지들 사이의 관계, 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단지 감정이나 성품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구약에서 이 용어는 주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의미했으며, 신약에서는 언약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들은 바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즉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과 고통을 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를 동정한다는 의미를 포괄(包括)한 것이다. 그리고 시련을 당한 자들의 상황에 깊이 동참하여 그들로 하여금 부담없이 도움을 청하게 하는것을 의미한다. 한편 긍휼히 여길 대상은 바로 이 죄악된 세상이며, 성도는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실천하는 존재가 된다. 즉 성도에게만이 이 세상의 회복자로서의 자질이 주어져 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죄악된 세상을 긍휼히 여기고 세상의 참된 회복을 위해 실천하는 자에게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가 깃든다. 즉 긍휼에 대한 보상은 타인이 베푸는 긍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긍휼인 것이다(클레멘트 1서 13:2).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베푸는 긍휼이 하나님의 긍휼의 필연적 근거(causal ground)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occasional ground)계기가 된다는 의미이다(6:14, 15). 실로 긍휼은 소자에게 한 잔의 물을 대접하는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서부터 이 세상의 죄악된 세상과 투쟁하는 거대한 사역에 이르기까지 성도 안에 있는 일관된 태도인 것이다. 또한 본절은 긍휼하심을 받은 성도가 긍휼을 실천하며(요일 4:19), 그 실천으로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하심을 받는 순환론적인 것이다. 이는 마치 눈덩이가 구르면서 더 큰 눈덩이가 되듯이 긍휼의 풍성함에 성도가 거한다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축복 선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최종적인 보상은 최후의 심판 때 성도에게 주어진다(약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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