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9 / Achieving the Victory / 2 Cor 4:17 / Streams in the Desert by Mrs. Charles Cowman


December 9

Achieving the Victory

For this our light and transitory burden of suffering is achieving for us a weight of glory — 2 Cor 4:17

“Is achieving for us,” mark. The question is repeatedly asked — Why is the life of man drenched with so much blood, and blistered with so many tears? The answer is to be found in the word “achieving”; these things are achieving for us something precious. They are teaching us not only the way to victory, but better still the laws of victory. There is a compensation in every sorrow, and the sorrow is working out the compensation.

It is the cry of the dear old hymn: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E’en tho’ it be a cross that raiseth me.”

Joy sometimes needs pain to give it birth. Fanny Crosby could never have written her beautiful hymn, “I shall see Him face to face,” were it not for the fact that she had never looked upon the green fields nor the evening sunset nor the kindly twinkle in her mother’s eye. It was the loss of her own vision that helped her to gain her remarkable spiritual discernment.

It is the tree that suffers that is capable of polish. When the woodman wants some curved lines of beauty in the grain he cuts down some maple that has been gashed by the axe and twisted by the storm. In this way he secures the knots and the hardness that take the gloss.

It is comforting to know that sorrow tarries only for the night; it takes its leave in the morning. A thunderstorm is very brief when put alongside the long summer day. “Weeping may endure for the night but joy cometh in the morning.” — Songs in the Night

“There is a peace that cometh after sorrow,

Of hope surrendered, not of hope fulfilled;

A peace that looketh not upon tomorrow,

But calmly on a tempest that it stilled.

“A peace that lives not now in joy’s excesses,

Nor in the happy life of love secure;

But in the unerring strength the heart possesses,

Of conflicts won while learning to endure.

“A peace there is, in sacrifice secluded,

A life subdued, from will and passion free;

’Tis not the peace that over Eden brooded,

But that which triumphed in Gethsemane.”


12월 9일 고린도후서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빈번한 질문입니다. “왜 인생은 피로 얼룩지고 눈물에 젖어야 합니까?" 대답은 “이루게”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잠시 받는 환난이 우리에게 지극히 귀한 것을 이루게 합니다. 고난은 승리의 길을 가르치고, 더 나아가 승리의 법칙마저 가르치니, 모든 슬픔에는 상급이 있고 또한 슬픔 자체로부터 나오는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뜻을 진실하게 표현한 찬송이 있는데, 1840년에 사라 애덤스가 쓴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이라는 찬송입니다.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갑니다.

십자가에 달려서라도 더 가까이 갑니다.

어떤 기쁨은 고통을 거쳐서 나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미국의 놀라운 작가였습니다. 1820년에서 1915년까지 살았고 2천여 편이 넘는 찬송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푸른 들판도 저녁노을도 볼 수 없었고, 어머니의 빛나는 눈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이러한 신체적 조건에 놓이지 않았다면, '주의 얼굴 뵈오리'와 같은 아름다운 노랫말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시력을 잃고 대신에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슬픔은 밤에만 머물렀다가 아침이면 떠나갑니다. 그리고 천둥 벼락이 치는 폭우는 기나긴 여름날에 비하면 잠시 잠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 30:5).

슬픔이 왔는데 이내 평화가 옵니다.

이룬 희망에서가 아니라 포기한 희망에서 옵니다.

내일을 바라보는 평화 아니라,

폭풍과 싸우고 가라앉힌 그 폭풍 고요히 바라보는 평화입니다.

과도한 기쁨에 이 평화 없고,

저희끼리 사랑하는 행복한 삶에도 없습니다.

견디는 법 배우며 기른, 가슴속의

저 틀림없는 투쟁의 능력에 있습니다.

숨은 희생에 이 평화 있습니다.

밝고 기쁘게 바치는 복종의 삶에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깃들었던 평화 아닙니다.

겟세마네에서 승리한 평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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