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7 / He Refines Them / Gal 6:14 / Streams in the Desert by Mrs. Charles Cowman


October 17

He Refines Them

God forbid that I should glory, save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by whom the world is crucified unto me, and I unto the world — Gal 6:14

They were living to themselves; self with its hopes, and promises and dreams, still had hold of them; but the Lord began to fulfill their prayers. They had asked for contrition, and had surrendered for it to be given them at any cost, and He sent them sorrow; they had asked for purity, and He sent them thrilling anguish; they had asked to be meek, and He had broken their hearts; they had asked to be dead to the world, and He slew all their living hopes; they had asked to be made like unto Him, and He placed them in the furnace, sitting by “as a refiner and purifier of silver,” until they should reflect His image; they had asked to lay hold of His cross, and when He had reached it to them it lacerated their hands.

They had asked they knew not what, nor how, but He had taken them at their word, and granted them all their petitions. They were hardly willing to follow Him so far, or to draw so nigh to Him. They had upon them an awe and fear, as Jacob at Bethel, or Eliphaz in the night visions, or as the apostles when they thought that they had seen a spirit, and knew not that it was Jesus. They could almost pray Him to depart from them, or to hide His awfulness. They found it easier to obey than to suffer, to do than to give up, to bear the cross than to hang upon it. But they cannot go back, for they have come too near the unseen cross, and its virtues have pierced too deeply within them. He is fulfilling to them His promise, “And I, if I be lifted up from the earth, will draw all men unto me” (John 12:32).

But now at last their turn has come. Before, they had only heard of the mystery, but now they feel it. He has fastened on them His look of love, as He did on Mary and Peter, and they can but choose to follow.

Little by little, from time to time, by flitting gleams, the mystery of His cross shines out upon them. They behold Him lifted up, they gaze on the glory which rays from the wounds of His holy passion; and as they gaze they advance, and are changed into His likeness, and His name shines out through them, for He dwells in them. They live alone with Him above, in unspeakable fellowship; willing to lack what others own (and what they might have had), and to be unlike all, so that they are only like Him.

Such, are they in all ages, “who follow the Lamb whithersoever he goeth.”

Had they chosen for themselves, or their friends chosen for them, they would have chosen otherwise. They would have been brighter here, but less glorious in His Kingdom. They would have had Lot’s portion, not Abraham’s. If they had halted anywhere — if God had taken off His hand and let them stray back — what would they not have lost? What forfeits in the resurrection?

But He stayed them up, even against themselves. Many a time their foot had well nigh slipped; but He in mercy held them up. Now, even in this life, they know that all He did was done well. It was good to suffer here, that they might reign hereafter; to bear the cross below, for they shall wear the crown above; and that not their will but His was done on them and in them. — Anonymous.


10월 17일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저희들끼리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신들의 희망이며 약속이며 꿈이었지만 주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는 마음을 구하고 어떠한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결심으로 자신들을 드렸습니다. 그분께서는 슬픔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이 깨끗한 마음을 구하자 주께서는 느닷없는 고통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온유한 마음을 구하자 주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대하여 죽기를 구하자 주께서는 그들의 멀쩡한 희망을 모두 꺾어 놓으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처럼 되기를 구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들에게서 그분의 형상이 비칠 수 있도록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같이" (말 3:3) 앉아서 그들을 불속에 던져 넣으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 거들기를 청했습니다. 하지만 주께서 건넨 그 십자가에 베이고 찢겼습니다.

그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구했지만 주께서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으시고 구하는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그렇게 멀리까지 따라가도 되는지 혹은 그분께 그토록 가까이 다가가도 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두려움과 떨림에 사로잡혔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늘까지 닿는 사닥다리의 꿈을 꾸었을 때처럼(창 28:12) 혹은 엘리바스가 한밤에 편치 않은 꿈을 꾸었을 때처럼(욥 4:13) 말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못 알아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눅 24:37). 제자들은 예수께 떠나가시든지 영광을 벗고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시든지 하시라고 부탁하고 싶을 만큼 두려워 떨었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두려움과 떨림에 잡힌 그들은 고난보다는 순종이, 내려놓기보다는 일하기가, 십자가에 달림보다는 그것을 지고 가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 보이지 않는 삶의 십자가에 너무 가까이 다가왔고, 그 십자가의 은혜에 너무 깊이 사로잡혀서 도저히 되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들에게 주신 이 약속을 이제 곧 이루실 참이었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 12:32).

드디어 그들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전에는 귀로 듣기만 했던 그 신비를이 제 직접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마리아와 베드로에게 그러하셨듯이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들여다보셨고, 그들은 그분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점차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들려 올라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거룩한 고난의 상처에서 영광의 빛이 퍼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주님께로 다가섰고, 그분과 닮은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들 안에 사셨으므로 그들을 통해 그분의 이름이 밝게 빛났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의 삶은 위에 계신 그분과만 사귀는 놀라운 삶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 없이 살고자 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가진 것이 많았고 그들 역시 소유할 수 있었지만, 조금 더 그분을 닮기 위해 다른 이들처럼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계 14:4) 모든 사람들에 관한 유구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자신들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선택했거나 친구들의 선택에 따랐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여기 이 세상에서야 그들의 삶이 빛났겠지만 그분의 나라에서는 영광스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롯의 유산을 받기 쉬웠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중도에 멈추거나 하나님께서 손을 거두어 그들을 방황하도록 버려두셨다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었겠습니까? 부활할 때 그 소중한 것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힘을 주시고, 그 자신들에게서조차 그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스스로 미끄러져 넘어지려 할 때마다 그분께서 얼마나 자주 붙들어 주셨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 사는 동안에도 그들은 그분께서 하신 모든 일이 잘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이번 삶에서 고난 받아 다음 삶에서 보좌에 앉는 것이, 아래에서 십자가를 지고 위에서 면류관을 쓰는 것이, 그들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그들을 통해 이루어짐이 좋은 것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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