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6:6-10 설교 / 다니엘은 왕이 금령 문서에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늘 하듯이 그의 하나님...

다니엘6:6-10

[새번역]
6. 그리하여 총리들과 방백들은 왕에게로 나아가서 아뢰었다. "다리우스 임금님, 만수무강 하시기를 빕니다.
7. 이 나라 정승들과 대신들과 지방장관들과 고문관들과 총독들이 모두 의논한 바가 있습니다. 임금님이 법을 한 가지 만드셔서, 금령으로 내려 주시도록 요청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법은, 앞으로 삼십 일 동안에, 임금님 말고,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집어 넣기로 한다는 것입니다.
8. 바라옵기는, 임금님이 이제 금령을 세우시고, 그 문서에 임금님의 도장을 찍으셔서, 메대와 페르시아의 고치지 못하는 법을 따라서,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9. 그리하여 다리우스 왕은 금령의 문서에 왕의 도장을 찍었다.
10. 다니엘은, 왕이 금령 문서에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 다락방은 예루살렘 쪽으로 창문이 나 있었다. 그는 늘 하듯이, 하루에 세 번씩 그의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

[NIV]
6. So the administrators and the satraps went as a group to the king and said: "O King Darius, live forever!
7. The royal administrators, prefects, satraps, advisers and governors have all agreed that the king should issue an edict and enforce the decree that anyone who prays to any god or man during the next thirty days, except to you, O king, shall be thrown into the lions' den.
8. Now, O king, issue the decree and put it in writing so that it cannot be altered--in accordance with the laws of the Medes and Persians, which cannot be repealed."
9. So King Darius put the decree in writing.
10. Now when Daniel learned that the decree had been published, he went home to his upstairs room where the windows opened toward Jerusalem. Three times a day he got down on his knees and prayed, giving thanks to his God, just as he had done before.

기도를 금하는 포고 (다니엘 6:6-10)

다니엘의 적들은 이미 있는 법을 가지고서는 다니엘을 모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기 위해서 새로운 법을 궁리했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다니엘의 신앙을 더 견고하게 하였다.

Ⅰ. 다리오의 불경한 법령. 나는 그 법령을 "다리오의" 법령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 법령에는 다리오의 어인이 적혔기 때문이다. 달리 해서는 그 법령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는 왕의 법령이 아니었다. 다리오가 그 법령을 궁리하지 않았다. 감언이설로 속아서 그 법령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총리와 방백들은 법령을 초안하였고, 국무회의에서 가결을 보았다. 그리고 이 초안은 충분한 토론의 결과로 꾸미려 했다. 또한 왕국의 모든 총리와 방백들, 그리고 제후들이 서로 그것에 대해서 회합을 가진 것으로 꾸미려 했다. 그래서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했다." 거기에 의견이 일치했을 뿐 아니라, 여러 이유를 붙여 그것을 충언했다. 그들은 "법령을 세우고자"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아니 그들은 왕에게 나아가 그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고 했다-" 모든 총리들도 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세 총리 가운데 우두머리였던 다니엘은 그 법안에 승인하지 않았으며, 또한 많은 방백들은 그 법안이 비합리적이고 애매한 것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국민의 여론으로 된 듯이 내세우는 것도 실은 전혀 그렇지 아니한 것이 있음도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또 별로 신임 할 수도 없는 것을 만장일치인 양 말하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보고 들어야 할 왕이 그렇게 속임을 당한다는 것은 정말 불쌍한 일이다! 왕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왕의 파멸을 도모하는 이 속 검은 사람들은 그 법령을 통과시켜 금령으로 만들 것을 강요했다. 그 금령은 바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 (7절)는 것이었다. 이 법령은 그들이 계획하여 왕에게 내놓고, 금령으로서 통과시킬 것을 요구한 것이다.

1. 그 금령에는 선한 것이라고 모양도 없었다. 다만 왕에 대한 찬양만이 나타나 있을 뿐이었다. 그가 대단히 위대하고 백성에게 자비로운 자인 양 보이게 했다. 그들이 이것이 새로이 즉위한 이 왕에게 대단히 큰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은, 왕이 대단히 부유하므로, 그리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백성들의 불평과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 조금도 애로가 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 30일 동안은 왕에게 대한 모든 청원이 수락되는 기간이었다. 실로 백성에게 귀를 기울이는 왕이 있음은 대단히 존귀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왕들이 유일한 은혜자처럼 자처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주장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의 명예가 아니라 치욕이 된다.

2.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히 악한 것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대한 모든 탄원을 금할 만큼 악한 것이었다. 거지가 동냥을 요구해서도 안 된단 말인가. 또 이웃 사람이 다른사람의 친절을 구할 수도 없단 말인가? 만일 어린이가 빵이 먹고 싶을 때 그의 부모에게 빵을 요구할 수 없던 말인가? 그럴 때는 그를 사자굴에 던져야 하는가? 그 법령은 아주 악한 것이었으며, 모든 종교를 모욕하는 건방진 것이었다. 또한 "어떠한 신" 에게 대한 탄원도 금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구하는 것은 기도에 의해서이다. 또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지속시키는 것도 기도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삼십 일 동안이나 기도를 금하는 것도,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받는 헌신을 빼앗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얻은 만족을 빼앗는 것이다. 자연의 빛이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일을 경룬하고 계심을 가르치는데, 자연의 법은 우리가 기도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막는단 말인가? 하나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그리고 도대체 사람이 기도없이 삼십 일을 살 수 있겠는가? 왕도 과연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할 것인가? 자기에게는 허용되더라도 백성들에게는 그렇게 요구할 것인가? 일찍이 어느 나라도 이렇게 자기들의 신을 경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어리석음이 사람들을 얼마나 악의로 이끌어 가는지를 보라. 그들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들과 자기의 동료들이 기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금하는 일을 하였다. 그들이 유대인들만은 자기네 신에게 기도하지 못한다고 했더라면, 다니엘을 효과적으로 함정에 빠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왕이 그런 법령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법령을 일반화시킨 것이었다. 이 법령이 자기를 신으로 세우는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혔던 다리오왕은 "그의 모자에 깃털" (그러므로 "그의 왕관의 꽃" 은 아니다)을 좋아했고, 메대와 바사에 규례에 따라서 "조서에 어인을 찍었다" (9절). 이것은 변경이나 면제나 위반이 일체 용서되지 않는다는 표시였다.
Ⅱ. 이 조서에 대한 다니엘이 경건한 불순종(10절). 그 법령이 다니엘 자신을 겨냥한 것임을 알았지만, 다니엘은 숨지도 않았고, 도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아주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았을 때" 왕에게서 가서 항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모든 총리들" 이 동의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그것은 그릇된 정보에 입각한 것이므로 철회되어야 한다고 항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집으로 갔다." 이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즐거이 믿고, 자기의 임무에 임했다.

1. 다니엘하여금 끊임없는 기도. 이런 기도는 이 사건 전에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 경건한 유대인의 일상적인 관례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다니엘은 때로는 혼자서, 그리고 때로는 그의 가족과 함께 "그의 집에서 기도했다." 고넬료도 "자기의 집에서 기도했던" 사람이다(행 10:30). 모든 집이 기도하는 집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거처가 있는 곳 어디나 하나님의 제단이 있어야 하며, 그 제단에서 우리는 영적 제사를 드려야 한다.

(2) 모든 기도에서 그는 감사드렸다.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때, 우리는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해 먼저 감사해야 한다. 감사는 모든 기도에 들어가야 한다.

(3) 기도와 감사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서 바라보면서, 계약관계 속에서 생각했고, 그를 향하였다. 다니엘은 "그의 하나님 앞에서, "그를 염두에 두고 기도하였다.

(4) 다니엘은 기도와 감사를 드릴 때 "무릎을 끓었다." 이것은 기도할 때의 가장 적절한 자세이며, 겸손과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자세이다. 무릎 끓음은 구걸하는 자세다. 그리고 우리는 구걸하는 자로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5) 다니엘은 "그의 방의 창문을 열었다" 그래서 앞에 보이는 하늘이 아마도 하늘 위에 계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더욱 가슴을 충만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이제는 파괴되었지만,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을 향해서 창을 열었다." 그것은 날마다의 기도에서 그의 관심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과 예루살렘의 돌 하나 먼지 하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었다(시 102:14). 비록 지금은 바벨론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는 자기의 포로 동료들과 한가지임을 의식하면서, 예루살렘을 기억하고 "큰 즐거움"으로 삼는 것이었다(시 137:5, 6).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지정해 준 곳이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이 봉헌되었을 때, 하나님에 대한 솔로몬의 기도는,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적들의 땅에서" 살지라도 예루살렘, 곧 하나님자신이 선택하신 도성을 향해서 기도할 때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옵소서" 하는 것이었다(왕상 8:48, 49). 다니엘은 지금 그것을 기억하면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6)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씩" 기도하였다. 다니엘은 다윗의 예를 본받아서(시 55:17), "아침과 저녁, 그리고 정오에 기도하였다." 맹목적으로 아닌 의식적(意識的)인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만일 우리의 몸이 하루에 세 끼의 식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는 몇 번이나 시간을 내는 것이 좋겠는가? 이서도 "항상 기도하라" 는 명령에 대한 응답이 되기에 부족한 것이리라.

(7) 다니엘은 모든 사람이 그의 기도를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히 기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다만 그가 기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다니엘은 지위 높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창조주 앞에서 하루 세 번 씩 무릎 끊는 것이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다니엘은 늙은 사람이었지만, 그 자신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늙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다니엘은 공적인 일에 봉사하기 위한 직무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 일이 매일의 헌신을 면제시키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 때문에 자기 영혼과 하나님께 대해 봉사할 수 없다는 사람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니엘은 기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기 때문이었다(겔 14:14). 그리고 그는 기도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기도를 매일의 일과로 삼았다. 그리고 그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니엘을 놀라울 만큼 축복하셨다.

2. 법이 기도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지정하였을 때에도, 다니엘은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는 "법령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았을 때에도 "이전에 하던 것처럼" 기도를 계속했다.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서는 안 될 때라면 삼십 일 동안은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으리라. 그 위험이 지난 후에 더욱 자주 기도할 수도 있었으리라. 또 그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기도함으로써 그의 적들이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을 알 수 없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다니엘은 그의 마음에 만족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할 수 있었으리라. 법을 피해가면서 자기의 일을 다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만일 그가 그렇게 했더라면, 그의 친구와 적들은, 그가 겁이 나서 기도하는 직무를 소홀히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더 큰치욕이 되고 친구들에게 사기를 저하시켰을 것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주의하면서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용기를 가지고 행동해야 했다. 그에게는 수 많은 눈이 있었다. 특별히 그 법령은 다니엘 자신을 목적한 것이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아니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 시련이 올 때에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마 10:32). 그럴 때에 신중을 기한다는 핑계로, 하나님께 대해 비겁관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다니엘의 경우가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이 행동하도록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다니엘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의무 이행에 대한 철저성을 통해 보건대, 그는 결코 기도의 의무를 빼먹을 구실을 붙이는 법이 없었던 것 같다. 만일 그런 구실이 필요하다면, 지금이야말로 좋은 구실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것이 그의 주인 왕이 금했기 때문이요, 또 그 왕을 위해서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사람에게 보다도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2) 그것이 다니엘의 생명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살기 위해서 자기들의 영혼을 내던지는 자들은(기도없이 사는 자들은 분명히 이런 식으로 한다)자신들을 위해서 손해보는 거래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법칙이다. 그리고 두로의 왕처럼, "다니엘보다" 자기들의 "더 현명한" 척해도, 그들은 결국 바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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