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성도의 희생 제물(The Holy Suffering of the Saint)" by 오스왈드 챔버스

 성도의 희생 제물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베드로 전서 4:19)


스스로 고난을 선택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난을 의미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선택한다면 이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건강한 성도라도 결코 고난을 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어떤 선택이 하나님이 뜻이라면 그것이 고난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 길을 선택합니다. 다른 성도가 고난의 훈련을 받을 때 참견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성도는 다른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강하고 성숙하도록 돕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들은 우리를 동정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동정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오직 주님께 가장 가까운 성도들 외에는 다른 성도들을 연단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성도들의 동정을 받아들인다면 그로 인해 드는 감정은, ‘이런,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 거칠게 다루시는구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연민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마 16:23). 하나님의 인식에 대해 마음을 넓히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신원하지 않으시고 이에 대해 답변하지 않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깎아내리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생애 가운데 사람들의 동정이 필요하신 적이 없으셨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예수님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셨기에(마 16:23) 사람으로부터의 동정을 거부하셨습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긍휼과 자비를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천사로부터 도움을 얻을 뿐이었습니다.(눅 15:10)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도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헛되게 만드신다는 점을 주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가장 쓸모없는 곳에 성도들을 두십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이곳에서 내가 너무나 필요하기에 주께서 나를 여기에 두셨구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삶을 유용성에 따라 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이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곳에 성도들을 두십니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이든지 맞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The Holy Suffering of the Saint

By Oswald Chambers

Let those who suffer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commit their souls to Him in doing good… —1 Peter 4:19

Choosing to suffer means that there must be something wrong with you, but choosing God’s will— even if it means you will suffer— is something very different. No normal, healthy saint ever chooses suffering; he simply chooses God’s will, just as Jesus did, whether it means suffering or not. And no saint should ever dare to interfere with the lesson of suffering being taught in another saint’s life.


The saint who satisfies the heart of Jesus will make other saints strong and mature for God. But the people used to strengthen us are never those who sympathize with us; in fact, we are hindered by those who give us their sympathy, because sympathy only serves to weaken us. No one better understands a saint than the saint who is as close and as intimate with Jesus as possible. If we accept the sympathy of another saint, our spontaneous feeling is, “God is dealing too harshly with me and making my life too difficult.” That is why Jesus said that self-pity was of the devil (see Matthew 16:21-23). We must be merciful to God’s reputation. It is easy for us to tarnish God’s character because He never argues back; He never tries to defend or vindicate Himself. Beware of thinking that Jesus needed sympathy during His life on earth. He refused the sympathy of people because in His great wisdom He knew that no one on earth understood His purpose (see Matthew 16:23). He accepted only the sympathy of His Father and the angels (see Luke 15:10).


Look at God’s incredible waste of His saints, according to the world’s judgment. God seems to plant His saints in the most useless places. And then we say, “God intends for me to be here because I am so useful to Him.” Yet Jesus never measured His life by how or where He was of the greatest use. God places His saints where they will bring the most glory to Him, and we are totally incapable of judging where that may be.

Better – 1 Peter 4:19 | The Bottom of a Bo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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