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8년 1월 27일, 조나단 에드워즈의 아버지 티모시 에드워즈(Timothy Edwards, 1669-1758) 소천

1월 27일 "티모시 에드워즈의 학생은 시험칠 필요 없다."

오늘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아버지 티모시 에드워즈(Timothy Edwards, 1669-1758)가 소천한 날입니다. 1758년 1월 27일, 티모시는 눈을 감았습니다. 조나단은 약 2개월 후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 티모시는 "코네티컷 강 골짜기의 교황"이라 불리는 솔로몬 스토다드의 둘째 딸 에스더와 결혼했습니다. 티모시는 이스트 윈저 회중교회에서 61년간 사역하면서 6남 1녀를 두었습니다. 그의 외아들이 바로 영적거성 조나단 에드워즈입니다.

티모시는 뛰어난 설교자였다. 그의 아들과 달리 그는 저술가라기보다는 웅변가였다. 이스트 윈저에서 티모시의 설교와 훗날 조나단의 설교를 모두 들어 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에 따르면, "조나단이 더 깊이 있는 설교자였다." 그러나 "티모시가 더 박식한 사람이었으며, 설교 방식에서 훨씬 생명력이 있었다."고 했다. 티모시 에드워즈는 또한 모든 사람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엄격한 교사였다. 학식에 대한 그의 명성은 수많은 영적 고전들로 가득 찬……서재와, 성경에 정통한 지식과, 마을에 사는 많은 소년에게 고전을 가르쳐 대학에 입학하도록 준비시킨 훌륭한 교사라는 점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옛 제자 가운데 한 명은 그가 대학에 응시했을 때 입학 담당관이 에드워즈의 학생들은 시험을 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한동수 역,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6), 65.]

티모시는 군목으로 징집된 기간에도 편지를 통해 가족들을 챙기는 세심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교육의 혜택을 잘 받을 수 없었던 딸들을 가르쳤고, 특별히 아들 조나단의 교육에 신경을 썼습니다. 조나단은 아버지의 목회를 지켜보면서 네다섯 번의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훗날 조나단 에드워즈가 대각성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 티모시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티모시는 명목상의 기독교를 반대했는데 이것은 훗날 조나단의 사역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티모시는 평생 단 한 편의 설교만을 출판했을 뿐이었습니다. 아들과 비교해 볼 때, 턱없이 적은 양의 저술입니다. 하지만 티모시는 에베레스트와 같은 위대한 아들 조나단을 길러낸 복된 아버지였습니다. 높은 산이 되기보다는 오름직한 언덕이 되었던 사람, 티모시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주여,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부모되게 하옵소서.

티모시 에드워즈 역시도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자였고, 이스트 윈저 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 여러 차례의 부흥을 체험하기도 했다……티모시 에드워즈에 의하면 회심에 이르는 첫 단계는 깨달음의 단계로서, 그는 이것을 "영원과 관련하여 자신의 슬픈 상태에 대해 깨닫는 감각"이라고 정의했다……두 번째 단계는 겸비해짐의 단계로서, 죄인이 모든 사람과 특별히 자신 안에 있는 죄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는 것을 느끼는 단계다……티모시 에드워즈는 회심 형태론과 준비론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청교도들처럼 엄격하게 단계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개인이 언제 회심하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밟았는지에 대해서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이상웅,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2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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