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바르트와 개혁파 정통주의”

1월 26일 “바르트와 개혁파 정통주의”

1924년 1월 26일,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에밀 부루너(Emil Brunner)에게 답장을 썼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르트는 개혁 신학자들와 그들의 신학을 논거로 제시합니다. 바르트의 편지에는 칼빈과 기독교강요, 멜란히톤과 총론, 제네바신앙고백과 스콜라신학 등의 용어가 등장합니다. 비록 바르트가 이따금씩 개혁파 정통 신학을 비판하긴 했지만, 그가 개혁파 정통 신학자들에게서 교리적 사고의 풍부함을 배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시 유행하던 신학은 성경을 인간의 종교적인 경험의 기록으로 여겼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도덕적 모본을 보인 인간으로 치부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바르트는 슈바이처와 슐라이어마허를 비판했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했습니다. 바르트는 하인리히 헤페가 쓴 개혁파 정통교의학에 추천사를 썼는데, 거기서도 그는 자기가 종교개혁신학에 대해 빚졌음을 밝혔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교의학을 강의해야 하는 임무를 앞에 두고 괴팅겐의 교수실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내가 그때 문제에 봉착했던 것보다 더 심한 고민에 빠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 때……헤페의 책이 최근에 출판되어 내 손 안에 들어왔다……내가 과거에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케케묵은 정통”이라고 비웃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내가 개혁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기에 더 알기 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그와 같은 보상을 받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성경적 계시 중심적 지표들 위에 방향을 설정하고 놀라운 풍요함과 상세함으로 그 길을 추적하는 교의학, 즉 종교개혁의 주요 노선을 채택하고 거기에 충실하면서 초대교회의 교리적 구조를 가치 있게 유지하면서도 중세교회신학과의 연속성을 존중하고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교의학을 발견하였다.[Heinrich Heppe, Reformierte Dogmatik, 이정석 역, 『개혁파 정통교의학』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7), 9-10.]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는 보편구원론을 암시하는 등 모종의 비판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일컬어지는 바르트가 자유주의신학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개신교 정통신학(개신교 스콜라주의)의 유산을 흡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손에 신문을 드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현대적인 것들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 보편교회에 내려주신 풍부한 자원들을 섭취하는 데 인색하지 맙시다. 칼빈과 그 이후의 개혁신학은 성경을 더 풍성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위대한 통합의 시대, 17세기에 귀 기울입시다.

바르트에 의하면,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자연신학을 거절했던 반면 칼빈을 따르는 정통주의 학자들은 자연신학의 ‘해악’(Unfug)을 신학의 무대 중앙으로 복귀시켜 결국 칼빈을 떠나는 치명적인 이탈을 초래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르트는……스콜라주의에 대한 지식 없이는 제대로 학문을 연구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스콜라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거짓 선지자의 표지다. 진정한 선지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검증하기 위해 스콜라주의를 시금석으로 삼을 것이다.”[Willem J. van Asselt, Maarten Wisse, T. Theo J. Pleizier, Pieter L. Rouwendal, Introduction to Reformed Scholasticism, 한병수 역, 『개혁신학과 스콜라주의』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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