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축일, "dumb ox, mild synergism"
1월 28일 "온건한 신인협력론"
오늘은 중세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도미니칸 수도사였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축일(feast day)입니다. 1225년경, 토마스는 이탈리아 로카세카(Roccasecca)에서 봉건영주 아퀴노(Landulf of Aquino)의 막내아들로 출생했습니다. 5살 때, 수도원에 봉헌된 토마스는 나폴리대학에서 공부한 후 가족의 반대를 뒤로 한 채 탁발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은사 알베르투스(Albertus)에게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웁니다. 알베르투스는 제자에게 신앙과 윤리에 있어서는 어거스틴을 따르고, 자연의 본성 문제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라고 충고하며 강의했다고 합니다.
아퀴나스는 '은총의 주입'에 대해 말한다. 그러한 표현은, 만일 물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내적인 은총의 본성에 대한 적극적인 기술을 함축하는 것으로 의도되지 않는다면, 은총을 주술적인 어떤 것으로 보는 것과 조화를 이룬다……칭의는……'의롭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아퀴나스에 의해 사용된 칭의는 죄의 제거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영적인 인격적 관계의 경우가 아니라 의로운 인간의 창조이다. 칭의(稱義)는 행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신앙에 의한 것임이 인정된다. 아퀴나스가 구원이 선행에 의해 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을 조금도 견지하지 않았음은 꽤 분명하다. 공로 자체는 전적으로 협력적인 은총의 결과이다.[A. M. Fairweather ed., Aquinas on Nature and Grace, 손은실·박형국 역, 『기독교고전총서 11: 신학대전: 자연과 은총에 관한 주요 문제들』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1), 31-32.]
벙어리 황소(혹은 미련한 황소, dumb ox)라는 별명을 가진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승 알베르투스의 예견대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미련한 황소는 자신의 울음소리로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토마스는 "은총은 자연을 제거하지 않고 완성한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그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복음과의 관계를 이해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어쩔 수 없었던 로마가톨릭의 아들임을 기억하면서 조심스럽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구원론을 읽어봅시다. 토마스가 얼마나 많이 어거스틴의 가르침에 의지하고 있는지 알게될 것입니다.
구원의 본질에 대해, 토마스는 구원을 의화로 이해했다.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작용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협력 은혜의 효과로 공로를 얻는다. 토마스에게서 의화는 죄 용서에 대해 불의의 상태에서 의의 상태로 변화되는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죄책의 상태로부터 의의 상태로 나아가는 운동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의지로 하나님 은혜에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공로가 아니라 공로에 상응하는 공로로 보았다. 토마스는 은혜를 받고 의지가 사랑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가치가 있는 공로를 얻는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토마스의 구원론도 '사랑에 의한 의화'로 요약될 수 있다. 토마스의 구원론은 은혜가 초자연적 덕 즉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제공하면, 인간의 지성과 의지가 이에 응답하여 구원의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는 토마스의 구원론을 은혜가 주도하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협력하는 온건한 신인협력론(mild synergism)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송인설, 『에큐메니칼 구원론: 구원론의 화해가 가능한가?』 (서울: 겨자씨, 2008), 113.]
오늘은 중세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도미니칸 수도사였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축일(feast day)입니다. 1225년경, 토마스는 이탈리아 로카세카(Roccasecca)에서 봉건영주 아퀴노(Landulf of Aquino)의 막내아들로 출생했습니다. 5살 때, 수도원에 봉헌된 토마스는 나폴리대학에서 공부한 후 가족의 반대를 뒤로 한 채 탁발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은사 알베르투스(Albertus)에게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웁니다. 알베르투스는 제자에게 신앙과 윤리에 있어서는 어거스틴을 따르고, 자연의 본성 문제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라고 충고하며 강의했다고 합니다.
아퀴나스는 '은총의 주입'에 대해 말한다. 그러한 표현은, 만일 물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내적인 은총의 본성에 대한 적극적인 기술을 함축하는 것으로 의도되지 않는다면, 은총을 주술적인 어떤 것으로 보는 것과 조화를 이룬다……칭의는……'의롭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아퀴나스에 의해 사용된 칭의는 죄의 제거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영적인 인격적 관계의 경우가 아니라 의로운 인간의 창조이다. 칭의(稱義)는 행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신앙에 의한 것임이 인정된다. 아퀴나스가 구원이 선행에 의해 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을 조금도 견지하지 않았음은 꽤 분명하다. 공로 자체는 전적으로 협력적인 은총의 결과이다.[A. M. Fairweather ed., Aquinas on Nature and Grace, 손은실·박형국 역, 『기독교고전총서 11: 신학대전: 자연과 은총에 관한 주요 문제들』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1), 31-32.]
벙어리 황소(혹은 미련한 황소, dumb ox)라는 별명을 가진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승 알베르투스의 예견대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미련한 황소는 자신의 울음소리로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토마스는 "은총은 자연을 제거하지 않고 완성한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그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복음과의 관계를 이해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어쩔 수 없었던 로마가톨릭의 아들임을 기억하면서 조심스럽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구원론을 읽어봅시다. 토마스가 얼마나 많이 어거스틴의 가르침에 의지하고 있는지 알게될 것입니다.
구원의 본질에 대해, 토마스는 구원을 의화로 이해했다.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작용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협력 은혜의 효과로 공로를 얻는다. 토마스에게서 의화는 죄 용서에 대해 불의의 상태에서 의의 상태로 변화되는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죄책의 상태로부터 의의 상태로 나아가는 운동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의지로 하나님 은혜에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공로가 아니라 공로에 상응하는 공로로 보았다. 토마스는 은혜를 받고 의지가 사랑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가치가 있는 공로를 얻는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토마스의 구원론도 '사랑에 의한 의화'로 요약될 수 있다. 토마스의 구원론은 은혜가 초자연적 덕 즉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제공하면, 인간의 지성과 의지가 이에 응답하여 구원의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는 토마스의 구원론을 은혜가 주도하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협력하는 온건한 신인협력론(mild synergism)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송인설, 『에큐메니칼 구원론: 구원론의 화해가 가능한가?』 (서울: 겨자씨, 2008),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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